이런 글, 저런 글

..그건 치매가 아니라 고독이다!

권연자 세실리아 2010. 8. 20. 17:40

 

이 바보들아,
그건 치매가 아니라 고독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섬을 갖고 삽니다.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
도에서 표류생활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나의 교토생활 역시 그런
표류도에서의 삶이었고 그 섬을 통해서 조금씩 영성의 키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높은 마루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면서 키가 컷듯이 영성의 키는 죽음의
심연으로 추락하는 악몽을 통해서 성장해 가는가 봅니다.

'올 이도 갈 이도 없는 밤이란 또 어찌하리오'라는 고려 때의 노래 청산별곡이
생각나는 밤입니다. 낮에는 연구실에서 그럭저럭 지내지만 밤에는 혼자 누워 찬장만
쳐다봅니다.
 
온종일 혼자 방에 있을 때도 있습니다. 내 이웃들을 모두가 인사도 변변히 나누지
않고 지내는 외국인들이지만 그래도 이따금 누가 내 방문을 노크하는 것 같은
인기척을 느끼고 놀라 일어나 방문을 열어본 적도 있습니다.
 
물론 어둠 뿐이었지요. 그 어둠이 더욱 짙어지만 새파랗게 변하면서 절해고도의
파도소리가 들려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혼자말을 하는 일이 잦아지지요.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그래 맞아 그렇게 해야지" 마치 누가 옆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독백하는 버릇이
생긴 겁니다.
 
그리고 또 보지도 않는 텔레비전을 켜 놓은 채 책을 읽는 이상한 버릇도 생겼습니다.
사람의 소리가 그리웠던가 봅니다.

어떤 때에는 옆방에서 아버지의 헛기침소리가 들려오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다시 들을 수 없게 된 아버지의 기침소리인 그 환청에 놀란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식구들이 많았는데도 백수연까지 치르신 아버지의 곁에는 텔레비전만 있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저녁뉴스 시간마다 아나운서가 나와 인사를 하면 아버지도
텔레비전 화면에 대고
"안녕하슈"라고 인사를 나누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리를 비웠다 다시 텔레비전 앞에
돌아와 앉으시면 "미안하우 "라고 또 인사를 하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젊은 애들은 치매에 걸리셨나 보다고 수근대기도 합니다.

"이 바보들아, 그것은 치매가 아니라 고독이라는 거다."

이제서야 나는 큰 소리로 외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
어리석은 녀석들을
꾸짖습니다. 외로움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들을 대신해서 아버지에게 죄송하다는
사과를 드립니다. 그리고 나도 텔레비전 앞에 혼자 앉아서 아나운서와 눈을 맞춰
인사를 하시던 아버지와 똑같은 심심한 시간들을 함께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심심하시고 답답하셨으면 TV화면과 말씀을 나누셨겠습니까. 그것을
모른척한 나의 불효를 오늘에서야 이렇게 뉘우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령 / 지성에서 영성으로 p3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