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글, 저런 글

엄마는 느림보

권연자 세실리아 2013. 3. 21. 11:31

 

              이십 대 시인의 시선

 

               김재현:2013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자

 

 

 

어머니와 나의 속도는 늘 달랐다. 천천히 좀 가자. 앞서가는 나를 보며, 어머니는 늘 그렇게 말했다.

대답도 않고 훌쩍 걸어가는 아들이 야속했을 법도 한데, 그래도 그녀는 묵묵히 뒤를 좇았다.

60년생과 89년생은, 30여년의 세월만큼이나 길고 긴 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느린 게 싫었다.

엄마가 느려서 미안하다. 그러나 미안해하는 건 늘 당신이었다.

내가 소년이었을 때 어머니는 중년이었다. 그러나 내가 청년이 되어서도, 어머니는 중년이었다.

나는 빠르게 자라는데, 어머니는 천천히 늙는 게 이상했다.

그때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다 걸어버렸구나. 비로소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더 이상 그녀에겐 걸을 길이 없었다. 그러므로 달려오는 이들만 지켜보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단 하나, 오직 자식만을 말이다.

세상의 한 귀퉁이에서 지금도 어머니는 나를 지켜보고만 있다.

바람도, 야속함도 없이 그저, 대견하다는 표정만을 지으며. 그리고 언제나처럼

내 속도를 늦추는 것들을 물어본다. 밥은 먹었니? 약은 챙겼니?

"바빠요 엄마, 나중에 전화할게요"라는 말로 먼저 가버릴 자식을 알면서도 말이다.

얼마 전, 당신께서 스마트폰을 장만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숫자버튼이 없는 핸드폰이라니. 이 역시 그녀에겐 감당하기 힘든 '속도'다.

그럼에도 그녀는 매일 아침, 내게 메시지를 보내온다. 자식과 소통하고 싶어서

버거운 속도를 좇아가고 계신 걸까.

번개처럼 답장을 보내다가 힘겨운 그녀의 '터치'가 생각나서 코끝이 아련해진다.

그리고 나 역시 손끝의 속도를 조금 늦춘다.

 

 

 

    -Chosun.com/오피니언/일사일언-    (옮겨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