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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아버지와 함께한 가장 행복한 추억들

권연자 세실리아 2013. 7. 9. 17:52

 

엊그제 아버지의 기일에 산소를 다녀왔다.

참 이상한 일이다. 시간이 흐르면 잊히는 게 자연스러운데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오히려 더 분명해지니까.

벌써 삽십년이 훌쩍 지났다. 청량리 바오로 병원에 동생과 같이 들렀을 때는 길가의 플라타너스 나뭇잎이

큰 손수건만 해졌던 더운 초여름의 토요일 오후였다.

짧은 병문안을 마치고 막 나오려는데 아버지께서 몸을 일으키셨다. 아버진 동생과 나를 더 자세히 보려고

하셨던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랬는지 아버지를 보지 않고 서둘러 병원 문을 나섰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나는 한동안 그 순간이 후회되어 항상 마음이 아팠다.

난 요즘도 가끔 그때를 상상한다. 난 아버지가 누운 침대 곁으로 돌아가서 힘없는 손도 잡아 드린다.

그리고 헝클어진 머리카락도 곱게 빗어 드린다. 그러면 어느새 아버지는 곤히 잠이 드신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새 내 눈에 이슬이 맺힌다.

마지막으로 병문안을 다녀오고 그다음 주 수요일 아침. 신학교 학장 신부님은 나와 동생을 부르셨다.

그때 동생과 나는 혜화동 신학교의 학생이었다. 학장 신부님은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많이 아프셨느냐고.

"네, 아프셔서 병원에 입원하셨는데요."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대답했다.

"자네들 아버님이 조금 전에 운명하셨다고 하네." 그때 마치 나의 두 다리가 땅속으로 쑥 들어가는 것 같았다.

부모님을 여의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는 말을 실감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동생의 얼굴을 살폈다.

아버지가 유난히 사랑하셨던 동생은 큰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있었다.

그날이 벌써 오래전의 일인데도 어제처럼 생생하다.

그리고 또 하나 결코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아마도 내가 여덟 살 되던 어느 여름날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누나들과 함께 할머니 댁에 가셨고 집에는 아버지와 동생만 있었다.

나는 그날 아침부터 열이 오르면서 먹은 것을 모두 토해냈다. 온종일 방바닥에 엎드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끙끙 앓았다.

저녁때가 되자 아버지는 나를 업고 시장으로 나가셔서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손으로 집게 하셨다.

나는 과자, 과일, 통조림 등을 한 아름 안고 돌아왔지만 결국 입에는 대지 못하고 다시 잠들었다.

한참 후에 잠에서 깨어보니 내 머리맡에서 동생이 음식들을 모두 맛있게 먹고 있었다. 나는 너무 아파서

다시 잠이 들었다.

그러나 그날 아버지 등에서 느꼈던 따뜻한 체온은 내 인생의 어떤 평화보다도 더 감미롭고 포근한 기억이다.

나는 지금도 가슴으로 아버지 등의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 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나는 갑자기 닥쳤던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장례식을 마치고도 한동안은 아버지와 함께 다녔던 장소를 찾았다.

부활이나 성탄 대축일마다 나와 동생을 데리고 명동대성당에서 고해성사를 보고 미사를 보셨던

아버지의 흔적을 따라 성당 이곳저곳을 걸었다.

유난히 영화를 좋아하셨던 아버지 손에 이끌려 무슨 영화인지 알지도 못해도 즐겁고 신이 났던 극장도 찾아갔다.

아버지가 처음으로 소설책 '삼국지'를 사주셨던 청계천의 헌책방, 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었던 충무로 골목,

자주 놀러 갔던 장충단 공원 등 아버지와 추억이 서린 곳을 모두 찾아다녔다.

아버지와 함께 앉았던 수표교 근처의 벤치에도 온종일 앉아 있기도 했다.

특히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를 여러 번 찾아갔다.

어릴 적엔 그렇게 넓어 보이던 운동장이 이상하게도 아주 좁아 보였다. 학교 곳곳에 아버지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운동회 날 내 손을 잡고 뛰시던 모습이며,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들고 교문 앞에서 서 계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소풍 날 내가 아픈 바람에 아버지 등에 업혀 돌아왔던 길도 걸어보았다.

내 생각에는 아버지가 묻혀 계신 산소보다 추억이 서려 있는 장소에 가면 아버지를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석양이 지는 저녁 무렵 지쳐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정말 그리우면 만난다고 했던가? 아버지의 생생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얘야, 어디를 그렇게 헤매고 다니니? 난 늘 곁에 있는데…"

나는 한동안 길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부터 내 마음은 편해졌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거리를 헤매지 않았다.

얼마 전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에게 사회자가 질문을 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한 시간만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아버지와 무얼 하겠습니까?"

그때 나도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아버지와 함께 늘 산책하러 갔던 장충단 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도란도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다시 만나면 꼭 할 말이 있다. 한 번도 아버지에게 해보지 못한 말이다.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아버지와 함께할 때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행운은 아버지를 만난 것입니다."

 

 

허영엽 신부 · 천주교 서울대교구 비서실장

출처:Chosun.com 사외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