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이야기 12

그리운 봄의 전령사들...

*2018년 3월 29일에 이런 글을 올렸다고, 페이스북이 알려주니 아련하게 떠오르는 아름다운 그 집의 봄을 그리워해본다.* 참, 별 일이다. 산 밑에 있는 우리집은 도심보다 기온이 낮은 탓으로 봄 꽃들이 항상 늦게 피곤했었다. 그러나 금년 봄은 정말 이상하다. 미처 꽃맞이 준비도 못하고 있었는데 순서도 무시한채, 지금 다섯 종류의 꽃들이 앞다투며 한꺼번에 활짝 피어버렸다. 매화, 개나리, 수선화, 체리, 목련..... 목련만해도 예년같으면 4월에 피었었고, 중순경에 예외없이 비 바람 몰아치는 꽃샘 추위가 찾아와 하얀 꽃잎이 시꺼멓게 멍들어 처참하게 쏟아져내리듯 져버리곤 해서 안타까움으로 가슴이 아렸었는데... 아직 삼월이건만 요며칠 사이에 깜짝 쇼 하듯이 꽃망울들이 모두 열리고 난리다. 사실 나는 아직..

우리집 이야기 2021.03.29

꽃들과 함께...

물푸레마을 14층으로 옮겨온 후 삭막하고 우울한 겨울을 보낸 어느날, 창 밖으로 보이는 산 자락의 빛갈이 연록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순간, 그리운 나의 정원에서도 가장 먼저 얼었던 땅을 비집고 올라오고 있을 수선화가 떠오르자 울컥 그리움이 꿈틀거렸다. 이 14층에는 꽃을 가꿀 땅 한뼘도 없다는게 서글프다. 그러나, 어떻게든 해봐야지... 우울은 떨쳐버리고 꽃을 사러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꽃 시장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처지라 대형 마트나, 자그마한 꽃집이나 어디서든 꽃을 발견하면 집으로 데려왔다. 화사하고 아름다운 꽃들과 함께하는 날들은 무척 행복했다. 이제 겨울도 끝이 보이고 있는데 기약없이 집에 머무는 나날들이 지루하지 않았던 건, 종일 볓 잘드는 베란다를 풍성하게 채우고 있는 이 꽃들과 함께하는 기쁨..

우리집 이야기 2021.03.13

숲길을 걷는 행복

숲길을 걸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산 자락에 서 있는 아파트를 나서서 숲 사이 오솔길을 걸어 내려간다. 그리고 으슥한 숲길로 들어서면 여름엔 시원한 그늘이 싱그럽다. 풍요로운 초록의 향연이 끝나고... 잎새를 털고 있는 계절이 올 때 앙상한 나무들 사이로 사라지는 햇님을 따라 걸어가노라면 어느새 나는 외로운 순례자가 된다. -물푸레마을에서-

우리집 이야기 2020.12.23

물푸레마을 14층의 '해 지는 방'

이곳 물푸레마을로 옮겨 온 후, 나는 의식의 나락으로 깊이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늘 우울하고... 아무것도 생기를 주는 일이 없었다. 아파트 14층에 갇혀 좀처럼 땅으로 내려가는 일 없이 일년이 가고 반 년이 또 가고.... 그렇게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내가 살고있는 집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내듯 해가 지는 이 방을 사랑하게 되었다. 날마다 서산 너머로 숨어드는 해와 석양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온갖 상념에 잠기게 된다. 슬픔과 그리움 같은, 촉촉한 감정들을 뒤적이다보면 어느새 가슴은 한없이 맑아지곤 했다. 아파트가 정남향인데, 어쩌다 이 방은 서쪽 산을 바라보고 있어 '해 지는 방'이라 이름까지 붙이고 나는 사철 이 방을 드나든다. 소중한 책들과 컴퓨터가 차지하고 있는 방... 그리고 마치 예식을 행하 듯,..

우리집 이야기 2020.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