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차가운 추상’ 그 이전의 나무

권연자 세실리아 2021. 8. 2. 10:28

‘칸딘스키는 뜨거운 추상, 몬드리안은 차가운 추상’이라는 말은

학창 시절 미술 시간에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강렬한 색채가 어지럽게 펼쳐진 칸딘스키의 그림은 화가의 열정적인 성정을 드러낸 것 같고,

화면을 수직선과 수평선으로 나누고, 빨강, 노랑, 파랑의 삼원색만을 사용한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1872~1944)의 추상화를 보면 그는 과연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몬드리안의 빨간 나무는 과연 같은 사람이 그린 게 맞을까 싶게 뜨겁다.

 

나무 한 그루가 파란 하늘 아래 석양을 받아 빨갛게 빛난다.

가지 끝에 매달린 노란 이파리 몇 개를 빼고는 낙엽마저 모두 떨군 겨울나무지만,

틀을 뚫고 나갈 기세로 사방을 향해 뻗어 나간 나뭇가지는

지금 막 새로 태어나 기지개를 켜는 것처럼 힘차게 꿈틀거린다.

이는 몬드리안이 본격적인 추상화를 시작하기 이전의 작품이지만, 이미 색채는 삼원색만 쓰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몬드리안은 일찍부터 풍차와 모래언덕, 나무와 꽃 등

주위의 풍경을 주로 그렸는데, 이는 네덜란드 화가들의 전통적인 화재(畫材)이기도 했지만,

몬드리안 자신이 자연의 풍광으로부터 영적인 에너지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신지학(神智學)을 신봉하면서, 여러 종교의 대립을 초월한 근원적인 신의 계시를 추구했고,

이를 깨닫기 위해 예술가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미(美)를 찾아낼 사명이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서로 다른 나무들을 그릴 때도 늘 그 안에서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본질을 찾아내려던 화가는

마침내 극도로 단순화한 조형 요소만을 남긴 추상화로 나아갔던 것이다.

몬드리안도 처음부터 차가웠던 건 아니었다.

 

                  피에트 몬드리안, 저녁: 빨간 나무, 1908~10년, 캔버스에 유채, 70x99㎝, 헤이그 미술관 소장.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