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는 세상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권연자 세실리아 2021. 9. 10. 14:34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매년 9월을 순교자 성월로 정하여,

천주교가 선교사도 없이 우리나라에 전해지던 초기부터

천주교 박해시대까지 순교한 수많은 순교자들을 기리며 기도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의 유해가 발굴되어

순교자의 달에 하느님께서 주신 큰 선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에 전주에 살 때,

어느 해 내가 다니던 본당에서 그 해의 성지순례 장소를

첫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의 고향인 진산(대전교구 소속)으로 정하고,

성지순례 일정의 모든 일을 내가 기획하고

버스 5대로 신자들을 인솔하고 진산성당과 그분들이 갇혀 있던 관아 등...

그분들의 고향 마을을 돌아보고 온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천주교 박해 때, 첫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전주 전동성당).

오래전에 내가 찍은 사진이다.

 

 

[그간 행방이 묘연했던 세 분의 순교복자 유해를 찾았습니다.

지난 2021년 3월 11일, 완주 초남이성지에서 바우배기 일대를 정비하다가

순교복자들로 추정되는 유해를 발견했습니다.

그때 함께 출토된 일부 유물(지석)에는 인적사항이 분명하게 표기되어 있어

그 유해가 순교복자들의 유해임을 거의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구는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여, 교회가 정한 절차에 따라

순교자 유해의 진정성을 확인하고 혹시 있을지 모를 불필요한 의혹이나 논란에

대비하기 위해 유물과 유해에 대한 정밀조사를 의뢰했습니다.

여러 방면에서 면밀하게 검사한 최종 결과,

두 분의 유해는 1791년 신해박해 때 순교하신 한국 최초의 순교자

복자 윤지충 바오로(32세)와 권상연 야고보(40세)로 판명되었고,

또 한 분의 유해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하신 복자 윤지헌 프란치스코(37세)로 밝혀졌습니다.]

(이상은 천주교 전주교구 홈페이지에서 발췌)

 

 

*천주교 전주교구 홈페이지에서 모셔온 사진-

 

 

[진산군 관아의 감옥에서 윤지충과 권상연은

1791년 10월 29일 새벽에 작은 칼을 쓰고 전주까지 130리 길을 걸어 도착했다.

사형 판결문이 전라감영에 하달되자, 전라감사는 집행을 서둘렀다.

두 사람은 옥에서 끌려나와 형장으로 가는데 외교인과 천주교인들이 뒤따라갔다.

권상연은 모진 태형으로 몸이 허물어져 초죽음 상태로

"예수 마리아"만 부르며 걸어갔다고 한다.

윤지충은 권상연보다 몸이 튼튼하여 마치 잔치에 나가는 사람처럼

즐거운 표정으로 죽음을 향해 걸어갔다.

뿐만아니라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의젓한 모습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설교를 장엄하게 하니,

신도들 뿐 아니라 외교인들까지 모두 감탄했다고 한다.

 

사형장에 도착하자 영장(營將)은 두 사람에게

"서양 종교를 버리겠는가."하고 물었으나 두 사람은 한마디로 거절하였다.

윤지충은 사형 선고문을 받아 큰 소리로 당당하게 읽고나서

머리를 자르는 목침 위에 머리를 고이고는 '예수 마리아'를 여러번 부르며,

침착한 태도로 망나니에게 치라는 신호를 하였다.

권상연도 윤지충처럼 목이 잘렸다. 1791년 12월 8일(양) 오후 3시.

윤지충(바오로)의 나이는 33세였고, 권상연(야고보)은 41세였다.

 

한편 정조는 채제공이 상신한 대로 사형을 선고한 것을 후회하고,

사형집행을 유예시키기고 귀양을 보내도록 지시하는 파발꾼을

전라감영으로 급히 보냈으나 이미 두 사람이 순교의 영광을 얻은 후였다.

윤지충 가문의 기록에 보면, "임금은 탄식하기를 '윤고산(尹孤山· 善道)의 후손을

내 손으로 죽였구나.'"라고 했다고 한다.

두 사람의 머리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남문에 장대 끝에 높이 매달아 놓아 천주교를 믿으면

이렇게 처참하게 참형을 받게 된다는 경각심을 주도록 했다.

그후 아흐레째 되던 날 임금은 두 순교자의 가족들에게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허락했다.

 

친척과 친지들은 장례를 치르기 위해 형장에 왔다가 모두 놀라운 일을 목격했다.

처형된지  아흐레가 되었는데 시체가 상하기는커녕

바로 그날 참수를 당한 듯 선혈이 붉었다한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를 고여놓고 자른 목침에는 방금 전에 흐른 듯 선혈에

촉촉히 젖어 있었던 것이다.

이 놀라운 상황을 목격한 외교인들은 경탄하며,

재판관들의 불공정함에 항의하고 두 순교자의 무죄를 주장하였다한다.

이들 중 어떤 사람들은 이 기적에 감동하여 입교까지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거의 죽게 된 사람이 순교자들의 피에 적신 수건을 만지고

병이 낫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했다.

"순교자의 피는 신앙의 씨앗이다."라는 말은 진리였다.

윤지충과 권상연의 모범적인 순교는 초대 신도들에게 놀라운 영향을 끼치게 됬다.]

(위의 괄호 안의 글은 천주교 전주교구 홈페이지에서 발췌하여 모셔옴)

 

 

 *남문(풍남문) 밖 순교터 전주 전동 성당. 우리나라 순교사의 1번지이다. 이 사진도 나의 솜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