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

전주 / 치명자산 성지

권연자 세실리아 2010. 11. 3. 14:47

 

전북 전주시 완산구 대성동 산 11-1 번지.

이곳은 조선 왕조인,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유항검(아우구스티노)의 가족 일곱 분의

유해를 합장한 묘소가 있는 곳으로, 치명자(순교자)들이 묻혀있는 산이기에 '치명자 산'

이라고 불리게 된 곳이다.

 

이 순교자들의 합장묘에는, 호남의 첫 사도였던 유항검과 그의 부인 신희, 둘 째 아들 유문석,

조카 유중성, 제수 이육희 그리고 동정부부 순교자 유중철 요한(유항검의 장남)과 이순이

루갈다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이들은 치명한 후 김제군 재남리(현 용진면 남정리)에 가매장 됬다가, 전동 성당 초대 신부인

'보두네' 신부를 비롯한 신자들이 1914년 4월 19일에 이곳으로 옮겨 모셨다.

 

이분들 중, 혼인을 하였지만 끝까지 동정을 지키며 살았던 '이순이 루갈다'와 '유중철 요한'은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동정 부부'로서 유명하여 '동방의 진주' 혹은 '세계의 진주'라고

불리운다.

이순이 루갈다(1782~1802)는 서울의 이윤하 마태오의 딸로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했다.

그녀의 부친은 이익의 외손으로 학문이 높은 분이셨으며, 권철신과 권일신이 이루갈다의

외삼촌이셨다.

 

그녀는 1795년 주문모 신부로부터 첫영성체를 하면서 예수님을 위해 동정을 지키기로 굳게

결심한다. 주신부는 그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전주의 유중철 요한을 기억하고 이들의

혼인을 주선했다.

1779년 전주 초남이에서 태어난 유중철 요한은 부유한 양반 집안의 장남이었다. 1801년에

순교한 유항검 아우구스티노가 그의 부친이다.

그는 16세가 되던 1795년 첫 영성체 때 동정 생활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되고, 주신부의

주선으로 혼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1798년 10월 이 루갈다는 시부모님 앞에서 남편 유중철 요한과 동정 서약을 하였다. 남편이

유혹에 빠지려 할 때마다 그들은 기도와 묵상으로 여러차례의 위기를 잘 넘겼으며 오누이

처럼 살았다.

 

1801년 9월에 체포된 그녀는 함께 갇혀 있는 가족을 위로하며 순교의 길로 나아가자고 권면

하였다. 그녀의 옥중 편지에서 '순교할 결심을 한 후 모든 걱정이 사라지고 날이 갈 수록

하느님의 은총이 쌓여 마음 속에 기쁨이 더해졌다'고 말한다.

 

1802년 1월 31일 그녀의 나이 20세 때 친척들과 함께 숲정이라고 불리는 전주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유중철 요한은 1801년 11월 14일 그의 나이 22세 때, 동생 유문석 요한과 함께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나는 누이를 격려하고 권고하며 위로하오.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라는 그의 마지막 유언이

오늘날 까지 전해진다.

 

 

              치명자산 아래 산책 길 

 

 

 

 

 

 

             치명자산 광장. 이곳에서 이 루갈다제를 비롯한 큰 행사들이 열린다.

               

 

 

 

 

 

 

 

 

             광장 옆에 있는 '옹기 가마 경당'. 이 곳에서 미사가 봉헌되는데, 사순시기와

             대림시기에는 새벽 미사가 매일 봉헌되고 있다.

 

 

 

 

 

 

 

 

 

 

             경당 옆에 있는 여기서는 기도를 할 수 있다.

 

 

 

  

 

 

 

 

 

 

 

 

 

 

             휴식 할 수 있는 몽마르트 광장.

 

 

 

 

             여기서부터 치명자산 성지로 오른다.

 

  

 

 

 

 

 

 

             두 갈래길. 왼 쪽으로 오르면 십자가의 길 '십 사처'가 이어지고, 오른 쪽은 등산로.             

 

 

 

 

 

 

             교구 신부님들의 묘지

 

 

 

 

 

<이 순이 루갈다가 옥중에서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홀로 계신 어머니께 머리 숙여 글을 올립니다.

  제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도 없는 다급한 때를 당해 어머니께 제 심정을 아뢰려 하옵니다.

다 아뢸 수는 없사오나, 제 손으로 몇 자 적어 올려 어머니 곁을 떠나 4년 동안 지내온 심정을

말씀드리옵니다.

  어머니, 비록 제가 죽게 되더라도 너무 마음 상해하시다가 주님께서 정말 특별히 베풀어주신

은혜로운 분부를 거스르지 마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주님 뜻을 따르셔요. 다행히 제가 주님께

저버림을 당하지 않는 은혜를 받게 되거든 주님 은혜에 감사드리셔요.

 

 

 

  길지도 않은 한 평생, 참으로 변변하지 못한 자식이었고 못난 자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순교의 열매를 맺는 날이면, 어머니께서도 자랑스러운 자식을

두었다고 여기실 것이고, 저 또한 어머니의 떳떳한 자식이 될 것입니다.

 

 

 

  순교는, 부족하고 못난 자식을 참되고 보배로운 자식이 되게 하는 것이에요. 어머니, 간절히

바라오니, 제발 너무 마음 상하지 마시고 마음 다잡으셔서 슬픔을 억누르셔요. 이 세상을 꿈같이

여기시고, 하늘나라를 우리가 돌아가야 할 본 고향으로 아셔서 조심조심하여 주님 뜻에 따르셔요.

이 세상 삶을 다 마치시면, 못난 자식이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영광을 받아, 가이

없이 행복한 모습으로 손을 마주잡고 하늘나라로 모셔들여 함께 영원한 행복을 누리렵니다.

 

 

 

  어머니 곁을 떠난 지 4 년에 이 지경을 당하여 그 동안의 심정을 다 아뢰지 못하니 그지없이

애달픈 제 마음이야 오죽하겠어요? 이 모두가 주님 뜻이에요. 우리를 세상에 나게 하심도 주님

뜻이요, 우리의 생명을 거두어 가심도 주님 뜻이니, 죽고 삶에 얽매이는 것은 도리어 웃음을 살

일이옵니다.

  어머니, 엎드려 정말 간절히 바라오니, 제발 마음을 너그러이 가지시고 자식 잃은 슬픔을

이겨내세요. 하늘나라에서 우리 모녀의 정을 다시 이어 영원히 함께 살아요.

 

 

 

  전주로 시집온 후, 그 전부터 항상 근심하던 일을 이루었어요. 9월에 시댁에 와서 10월에 우리 두

사람은 동정(童貞)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4년을 오누이처럼 지냈습니다. 그런 중에 육체적인 유혹을

근 십여 차례 받아 하마터면 동정서약을 깰 뻔했어요. 그 때마다 저희는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겪으신 고통과 피를 흘리신 사랑에 의지하여 무사히 그 유혹을 이겨내었답니다.

제 사정을 몰라 답답하게 여기실 것 같아 이 일을 말씀드리는 것이니, 이 편지를 살아 있는 저 보듯이

반겨 주셔요.

 

 

 

  제가 순교의 열매를 맺기도 전에 이렇게 붓을 드는 것이 정말 경솔한 짓입니다. 어머니께 제 걱정을

풀어 드리고 마음놓으시게 하려는 것이오니 이 편지로 위로를 삼으셔요.

  주 야고보(주문모) 신부님께서 살아 계실 적에, 친정과 시댁이 겪는 고난을 자세히 기록하여 두라

하셨습니다. 감옥에 들어온 후 시동생 요한(유문석) 편에 기록한 글을 보내드렸는데 어찌하셨는지요?

  어머니, 정말 간절히 바라고 바라오니, 제발 마음을 너그러이 가지시고 자식 잃은 슬픔을 이겨내셔요.

이 세상은 헛되고 거짓된 세상으로 생각하셔요.

  드릴 말씀은 한도 끝도 없지만, 이 편지로는 다 아뢸 수 없으니 대강 이만 아룁니다.

  신유 구월 스무이렛날 딸이 머리 숙여 글을 올립니다.

 

 

 

             성당 내부. 이순이 루갈다와 유중철 요한이 양 쪽에 있는 모자이크로 된 그림이다.

 

 

             이 루갈다의 편지도 모자이크로...

 

 

 

 

 

 

             성당 지붕 위에서 묘지로 가는 계단을 바라본다.

 

 

 

 

 

 

 

 

 

 

 

 

             내려올 때 십사처가 있는 '십자가의 길'로 내려왔다.

             (올라갈 때 그 길로 올라갔더라면 더 좋았을껄...)

 

 

 

 

 

 

 

 

 

 

 

 

 

 

 

 

 

 

 

 

 

 

 

 

 

 

 

 

             치명자산 아래 산책로.

 

 

             전주천 저 다리를 건너 왼 쪽의 산이 치명자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