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곱슬곱슬한 개털을 세차게 휘날리며 이리 뛰고 저리 뛰다 주인이 부르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숨을 할딱대며 멈칫한 이 개 이름은 ‘밥’이다.
혹시 그 이름을 모를세라 화가는 화면 상단에 빨간 물감으로 잘 보이게 써놨다.
밥은 빛나는 갈색 털이 풍성한 작은 견종이다.
보는 이에 따라, 그리폰이라는 사람도 있고, 테리어라는 사람도 있지만,
정작 견주에게 밥은 종과는 무관하게 세상에 단 한 마리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였을 것이다.
오죽하면 ‘인상주의의 아버지’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1832~ 1883)가 그린 초상화가 다 있을까.
사실 마네가 그린 개 초상은 몇 점이 더 있다.
정작 마네는 애견인이 아니라 애묘인이었지만, 성격이 섬세한 그가
반려견을 애지중지하는 가까운 이들에게 그림을 그려 준 것으로 보인다.
뛰어난 초상화가였던 마네는,
인물은 자세를 섬세하게 조정해서 수차례 앉혀 놓고 그렸지만,
개들은 화가 앞에 가만히 앉아 있었을 리 없다.
꽤 많은 스케치가 있는 걸 보면, 마네가 개들을 따라다니며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산발이 된 밥의 털만큼이나 붓을 놀린 마네의 손놀림도 거침없이 자유분방하고,
두껍게 바른 물감에 과감하게 덧칠한 흰색은 생동감 있는 개의 활달한 움직임을 잘 보여준다.
밥의 주인이자 이 그림의 주인은
당대 오페라계를 호령했던 유명 바리톤 장 밥티스트 포르였다.
포르는 열렬한 인상주의 지지자로 마네 작품만 67점을 소장하고 있었고,
그 유명한 ‘풀밭 위의 점심’을 최초로 사들인 이도 포르였다.
밥은 인상주의 그림 사이를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살았을 것이다.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게 틀림없다.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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