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인상파 후원자이자 화가였던 카유보트

권연자 세실리아 2021. 9. 23. 12:21

귀스타브 카유보트, 예르: 비의 효과, 1875년, 캔버스에 유채, 80.3x59.1cm, 인디애나대 에스케나지 미술관 소장.

 

 

화면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른 강둑과 빗물이 그려내는 크고 작은 동심원의 파장이

시야를 가득 채운 수면을 지나, 강 건너로 천천히 눈을 옮기면 작은 배 한 척이 기슭에 올라 있다.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날, 물가를 걷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우산을 들어 내다본 것 같은 이 그림 속에는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귀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1848~1894)가 특히 좋아했던 것들,

비, 강물, 배, 그리고 예르가 있다.

 

예르는 파리 남동쪽 외곽의 소도시다.

카유보트는 어린 시절부터 예르의 대저택에서 가족과 함께 여름을 보내곤 했다.

그가 파리에서 그린 도시 정경이 회색 건물 일색이었다면,

예르에서 그린 그림들은 온통 신록이 우거진 정원에서 산책하거나

눈부시게 빛나는 물결을 가르며 카누를 타고 수영을 즐기는 여가 장면으로 가득하다.

르누아르나 모네 같은 동료 인상주의자들의 작품 주제와 비슷하기는 하나,

카유보트의 차이점은 그 모든 풍경이 다 자기 소유였다는 것.

정원을 관통해 강이 흘렀으니 카유보트가(家)의 규모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부유한 집 자손이던 카유보트가 고된 삶을 살아가는 동료 화가들의 작품을

터무니없이 비싼 값에 사주고 필요하면 월세까지 내주던 컬렉터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전통적 회화 구도에서 벗어나 마치 사진기로 스냅샷을 찍듯

비대칭적 공간을 조성했던 파격적이고 신선한 그의 작품이 뒤늦게 평론가들의 인정을 받았던 건

어쩌면 부잣집 도련님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이 그림은 1875년, 카유보트의 부친이 세상을 뜬 바로 다음 해에 그렸다.

그래서인지 강 저편의 빈 배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