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삶의 매 순간 기도를 한 선지자 사무엘

권연자 세실리아 2021. 12. 31. 12:20

조슈아 레이놀즈, 어린 사무엘, 1776년, 캔버스에 유채, 89×70cm, 몽펠리에 파브르 미술관 소장.

 

 

 

잠옷 바람의 어린아이가 무릎을 꿇고 고사리 같은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이 그림을 보면 바로 떠오르는 글귀가 있다.

‘오늘도 무사히.’ 버스나 택시 운전석에 흔히 매달려 있던 이 그림과 글귀는

종일 운전하는 기사님의 안전을 기원하는 가족의 마음을 담고 있었을 것이다.

 

화가 조슈아 레이놀즈(Joshua Reynolds·1723~1792)는

18세기 영국 미술계를 이끈 최고의 초상화가이자 교육자였다.

1768년, 영국 왕립미술학교가 설립됐을 때부터 초대 원장을 맡았던 레이놀즈는

화가로서는 드물게 기사 작위를 받았고, 세상을 뜰 때까지 무려 24년간 원장직을 유지했다.

장기 집권은 물론 능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지만,

한편으로는 딱히 모난 데가 없이 심심했던 성격도 한몫했다.

 

레이놀즈의 초상화는 그의 성격처럼 모든 게 적당하다.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거장들을 폭넓게 연구하고 고전적 걸작을 성실히 모사했던 그는

아무리 평범한 인물이라 할지라도 우아하고 품격 있고 위대하고 장엄하게 그려내면서,

파격이나 혁신과는 거리가 먼 안전한 양식을 이뤘다.

한마디로 귀족 취향에 딱 맞는 격식 있는 초상화로 성공을 거뒀다.

그런 레이놀즈도 아이들을 그릴 때는 느슨하게 풀어져서,

순수하고 천진한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사무엘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스라엘 지도자이자 선지자로,

이름 자체가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뜻이다.

실제로 그의 삶은 매 순간 기도가 필요한 고민의 연속이었지만,

그중 제일 골칫거리는 아버지와 달리 부도덕한 아들들이었다.

‘오늘도 무사히’ 지나길 바라는 기도는 나중에 부모로서 사무엘의 마음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