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는 세상

꿈을 이룬 34세 '야식 배달부'

권연자 세실리아 2011. 4. 25. 16:57

 

 
음악회를 준비 중인 김승일씨. /조선일보DB

24일 오후 경기도문화의전당. 무대에 조명이 들어오고 오케스트라의 ‘오 솔레미오’ 연주가

흐르기 시작하자, 객석을 가득 메운 1600명의 관객은 기대에 가득 찬 얼굴로 가수의 노래를

 기다렸다. 그러나 가사 도입부가 지나가는 가운데서도 무대에 선 청년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는 뒤돌아선 채 말없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고 있었다.
 
잠시 뒤 마침내 청년이 관객을 향해 돌아서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6곡의 노래를 잇달아 불렀고, 마지막 곡은 모든 관객이 기다리던 바로 그 노래, 오페라

투란도트의 주제곡인 '네순도르마(Nessun dorma)'였다.

무대 위에 선 청년은 ‘감동의 목소리’를 갖고도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아 항상 음악과는 다른

인생길을 걸어야 했던 김승일(34)씨였다.
 
“제 노래를 듣기 위해 객석을 채워주신 관객들 앞에 서니까 갑자기 목이 메어서 노래가 나오질

않았어요. 뒤돌아서서 훌쩍거렸죠. 다시는 음악을 못할 줄 알았는데.”
 
마지막 곡이 끝났을 때 객석에서는 박수갈채, 휘파람 소리가 터져 나왔고, 앙코르 요청이

쇄도했다. 무대는 청년이 두 곡을 더 부르고서야 막을 내렸다.
 
하지만 뜨거운 분위기는 무대가 끝나고도 이어졌다. 김씨가 옷을 갈아입고 로비로 나갔을 때,

그를 기다리고 있던 남녀노소 수많은 관객이 그를 둘러쌌다. 사람들은 그의 손을 잡아끌기도

하고 “얼굴 한번 보자”며 그의 몸을 돌리기도 했다. 사인 요청도 쏟아졌다.

김씨는 “내가 아이돌이 된 기분이었다”고 했다.
 
이날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김씨의 직업은 ‘야식 배달부’였다.
 
실업계 고등학생이던 김씨는 그의 노래 실력을 알아본 선생님을 만나 한양대 성악과에 진학

했다. 그러나 김씨는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동기들 사이에서 이질감을 느꼈고, 그 무렵

어머니마저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노래에 대한 꿈을 서서히 잃어갔다. 대신 그는 택배,

나이트클럽 호객, 인력시장 잡역, 야식배달 등으로 삶을 꾸려갔다.
 
그러나 우연히 김씨가 일하던 야식집 사장이 김씨의 노래를 들으면서 김씨 인생의 반전(反轉)이

시작됐다. 노래 실력이 아깝다고 생각한 야식집 사장은 방송사에 김씨의 사연을 소개한 것.

사연이 방송사 예능프로그램에 채택되면서 김씨는 지난해 말 방송에 출연했고, 당시 방송에서

열창해 대중의 큰 호응을 받았던 노래가 바로 이날의 마지막 곡인 ‘네순도르마’였다.
 
막혔던 물꼬가 한 번 터지자, 운명은 거침없이 김씨를 가수의 길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방송을 본 조재현 경기도문화의전당 이사장은 김씨에게 무대에 설 기회를 줬고, 성악가

배재철씨가 그의 멘토를 자청하고 나섰다. 그리고 이날, 김씨는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건

‘생애 첫 번째 콘서트’를 가졌다. 이 음악회의 1600좌석은 예매 시작 사흘 만에 매진됐다.

오케스트라와 다른 출연진도 아무 대가 없이 참여해 김씨를 응원했다.
 
김씨는 “성악을 시작한 이후 제 이름을 걸고 이렇게 큰 무대에서 단독공연을 해본 건 처음”

이라며 “오랫동안 마음에 쌓여 있던 무거운 뭔가가 내려간 듯한 후련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야식배달을 끝낸 건 아니지만, 이번 음악회를 인생의 전환점으로 삼아 앞으로는 음악에

매진할 생각입니다. 제 음악을 사랑해 주시는 분들께 더 좋은 노래를 들려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원문 : 장상진 기자

출처 : 조선닷컴 와플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