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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나를 위한 여행

권연자 세실리아 2014. 5. 28. 11:17

여행자의 글쓰기라는 테마로 강연할 때마다 많이 받는 질문이다.

"가장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는 어디예요?"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니 절대적 추천 장소는 없다.

다만 여행 경험 정도에 따라 추천해드리고 싶은 여행 방법은 있다.

첫째, 유럽 여행이 처음인 분이라면 런던·파리·로마 정도가 무난하다.

어딜 가도 여행자와 편의 시설도 많고, '유럽이란 이런 곳이구나' 하는 특유의 장소감을 익힐 수 있다.

패키지여행이 아닌 자유 여행에 도전해보자.

관광 상품이 기획한 남의 매뉴얼이 아닌 진짜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는 비결이다.

여행 기간이 짧다면 한 도시에 일주일 정도 머물러보자. 더 깊고 더 진하게 여행지의 매력을 흠씬 느끼는 길이다.

둘째, 유럽에 몇 번 다녀온 분이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테마를 잡아 떠나 보면 좋겠다.

준비된 코스를 수동적으로 따라잡는 여행이 아니라

'나를 위한 여행'의 스토리텔링을 적극적으로 짜보는 것이다.

독일의 로만틱 가도나 고성(古城) 가도를 따라 중세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거나,

프라하에서 카프카의 흔적을 더듬는 작가 기행을 해보자.

신기한 볼거리나 쇼핑에 치중하는 관광이 아니라, 인생에 창조적인 영감을 주는 마음 여행에 도전해보자.

셋째, 자타가 공인하는 여행 마니아라면, 낯선 장소에서 한 달쯤 '그들처럼 살아보기'를.

유학생이나 현지인의 방을 빌려 지내보자.

현지인들처럼 장을 보고, 요리도 직접 해 먹고, 동네 주민과 수다도 떨며.

나는 베를린에서 한 달 남짓 살면서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도 얼마든지 씩씩하게 잘 살아갈 수 있는 또 다른 나를 발견했다.

'우리 가족은 나 없으면 큰일 나.' '우리 회사는 나 없으면 안 돌아가지.'

이런 생각 때문에 떠나지 못하는 분들께는 더더욱 멀리,

누군가 전화로 독촉해도 쉽게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타인의 도움을 받기 전에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망가진 영혼을 수리할 기회를 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좋다.

당신의 슬픔, 당신의 외로움이 잠시 지친 날개를 접고 쉴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바로 지상의 샹그릴라이므로.

진정한 마음의 여행은 나다운 것을 철저하게 알아내고,

나답지 않은 것을 기꺼이 단념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단련시킨다.

 

 

출처 : chosun.com 일사일언

글쓴이 : 정여울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 저자.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