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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로 '신과의 서약' 고치려는 스위스인들

권연자 세실리아 2010. 10. 25. 21:56

 

'신이시여, 이제껏 빙하가 커지는 것을 막아주셨는데, 앞으로는 작아지는 것을 막아주소서...'

지구 온난화로 인한 빙하 축소는 전세계적인 걱정거리인데요, 최근 유럽 최대 규모인 스위스 

알레취 빙하를 지키기 위해 지역 주민들이 교황 알현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이유인 즉, 빙하에 대해 신에게 올린 서약(sacred vow)의 내용을 반대로 바꾸기 위해서라는군요.

독실한 카톨릭 교도가 대부분인 피에쉬와 피에셔틀(Fiesch and Fieschertal)은 알레취 빙하 인근

고립된 지역입니다.

1678년 주민들은 "독실하고 순결한 삶을 살아가겠으니, 빙하가 더 이상 커지지 않도록 보호해

주소서"라는 내용의 종교적 서약을 맺었다고 합니다.

19세기 중반까지 유럽의 겨울 기온은 '짧은 빙하기'라 할 정도로 낮았는데, 빙하가 커지면서

생활의 터전까지 위협받고 있었던 것이지요.

눈이 많이 내려 빙하가 계곡을 가로 막으면, 주민들은 꼼짝 없이 마을에 갖혀 있어야 했습니다.

이러하다보니, 신앙에 의지하여 빙하의 위협을 이겨보려 했던 겁니다.

빙하가 최대 크기로 불어났던 1862년부터는 매년 7월 31일 특별예배를 열어 빙하가 더 커지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로 신에게 서약을 상기시켰다고 합니다. 
                          
그러나, 20세기 이후부터 이같은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지요.

21세기에 접어들어서는 오히려 정반대의 우려가 제기되기 시작합니다. 온난화로 지구의

평균 온도는 19세기보다 0.7도 이상 상승했고, 알레취 빙하는 2년에 100m의 속도로 줄어

들고 있습니다.

비대해진 빙하로 고통받던 주민들은 반대로 빙하가 녹아 발생하는 침수를 걱정하게 됐습

니다. 물부족 현상도 최근 들어 심해지고 있고요.

빙하를 자극할까 두려워 오늘날에도 독실한 여성 신자들은 색깔있는 속옷 착용을 피하고

있는 지역이다보니, 1678년의 서약이 마음에 걸릴 수 밖에 없겠지요.

이곳 교회와 신자들은 지역 주교를 통해 교황에게 서약의 내용을

"빙하가 더 커지지 않도록"에서 "작아지지 않도록" 으로 바꾸는 것을 허락해달라고 요청할

계획입니다. 오는 9월이나 10월 교황을 알현하여 허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는군요. 

스위스에는 약 1800여개의 빙하가 있지만, 지난 10년간 급격한 기온상승으로 그 크기가 

12%나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빙하와 만년설이 사라진 것 때문에 이탈리아와의 국경선을

변경하는 작업까지 추진되고 있다는군요.

스위스와 이탈리아는 1861년, 알프스 마터호른봉의 빙하와 만년설을 기준으로 국경선을

확정했는데, 온난화 때문에 빙하의 최고 위치가 변해 국경선의 기준이 애매해졌기 때문입니다.

지구 온난화에 대해 위험도가 상상 이상이다, 자연적 기온 변화를 과장한 것 뿐이다 등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데요, 어찌됐건 피에쉬 주민들의 '반대로 바꾼' 기도가 아름다운

알레취 빙하의 풍경이 사라지는 일을 막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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