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는 세상

일본 지하철서 시민 구하고 사라진 의인

권연자 세실리아 2010. 11. 11. 11:02

 

                            

                               이준씨

 

 

지난달 22일 오후 9시 30분쯤 일본 도쿄 지하철 네즈(根津)역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유학생

이준(32·도쿄대 박사과정 1년)씨는 60대 남자가 "퍽"하는 소리를 내며 승강장 아래 선로에 떨어지는

모습을 목격했다. 마침 승강장에는 이씨만 있었다.

교통공학을 전공하는 이씨는 능숙하게 지하철 비상벨을 찾아 눌렀고, 망설임 없이 선로로 뛰어 내려가

쓰러진 사람의 호흡부터 확인했다.

이씨는 있는 힘을 다해 쓰러진 사람을 옮기려 했으나 혼자 힘으론 역부족이었다. 2분쯤 지나 40대

일본인 남자가 선로에 떨어진 사람과 이씨를 발견하고 선로로 내려왔다. 그때 지하철이 승강장 안으로

들어왔지만, 이씨가 비상벨을 눌렀기 때문에 서행하다 멈췄고 쓰러진 사람을 구할 수 있었다.

지하철 승무원은 이씨에게 연락처를 물었지만 경황이 없던 이씨는 대답하지 않고 손에 묻은 피를 닦고

귀가했다.

3일 뒤인 25일 다시 네즈역에 간 이씨는 벽에 못 보던 전단이 붙어 있는 것을 봤다. 전단에는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한 시각과 경찰서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그를 찾는 전단이었던 것이다.

유학 간 지 3주밖에 되지 않아 일본어가 서툰 그는 '혹시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경찰이 찾나'하는

생각에 휴대전화 카메라로 전단을 찍고 학교에 갔다.


 

10월 25일자 아사히신문에 소개된 ‘네즈역 선로에 추락한 시민 구조’ 기사. /아사히신문

 

도쿄대 친구들에게 전단을 보여줬더니 '선로에 떨어진 시민을 구한 의인(義人)을 찾는다'는 내용이라고

했다. 이씨는 그제야 25일자 아사히신문에 '선로에 떨어진 시민을 구조한 의인이 연락처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찾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고, 도쿄지하철이 그를 애타게 찾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가 찾는 사람이 자기라고 말하자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학과 사람들이 "대단한 일을 했다"며 경찰과

도쿄지하철에 연락했다.

도쿄지하철과 도쿄소방서는 오는 19일 이씨에게 감사패를 전달할 예정이다.

이씨는 "내가 용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 사람을 도왔을 것"이라고 담담

하게 말했다.

그의 연구소 동료는 "이준씨의 선행은 지난 2001년 도쿄 신오쿠보(新大久保)역에서 일본 시민을 구하려다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고(故) 이수현씨의 선행과 닮았다"며 "특히 이번에는 결과가 좋아 다행"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씨를 지도해온 연세대 도시공학과 정진혁(45) 교수는 "일본 정부 초청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돼 일본에

갔을 정도로 이씨는 학업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고, 무엇보다 남을 배려할 줄 아는 훌륭한 제자"라고 말했다.

 

 

 원문 : 디지틀 조선일보 (스크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