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는 세상

30년 동안 등 굽었던 그가 똑바로 섰다

권연자 세실리아 2011. 2. 7. 19:01

강직성 척추염으로 발밑만 보던 김춘광씨의 '기적'
10대 후반부터 증세 나타나… '폴더형 휴대폰'처럼 굳어져
치료 맡았던 김기택 교수팀, 7개월간 7번 대수술로 펴내… 세계적으로도 유례 드물어

 

경북 안동 시골 마을에 살던 김춘광(50)씨는 지난 30년간 척추가 앞으로 휘어 굳어진 상태로 살았다.

그의 머리는 앞으로 고꾸라진 채 배 밑으로까지 떨어져 뒤에서 보면 머리가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얼굴의 턱은 가슴 밑 명치에 닿아 옴짝달싹 못했다. 10대 후반부터 시작된 강직성 척추염을 방치해

후유증이 심각해진 탓이다.

그가 눈으로 보는 세상은 발밑의 한 평 땅이 전부였다. 앞을 보려면 뒤로 돌아서서 가랑이 사이로

봐야 했다. 밥은 옆으로 비스듬히 돌아누워 먹어야 했고, 바로 누워 잘 수도 없었다. '폴더(folder)형

휴대폰'처럼 그의 몸은 반으로 접혔고, 그의 인생도 영영 하늘을 접고 살다 끝나는 듯했다.

강직성 척추염 후유증으로 척추가 반으로 접힌 채 굳어버린 김춘광씨의 수술 전 모습(왼쪽)과 수술 후 허리가 똑바로 펴진 채 김기택 교수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김씨는“수술 후 내 키가 30㎝나 커졌다”며“앞이 시원하게 보이니까 걸을 때 문짝이나 간판에 부딪힐 일이 없어 좋다”고 농담을 건넸다. /강동경희대병원 제공·남강호기자 kangho@chosun.com

 

그런 그가 지금은 똑바로 서서 걸어 다닌다. 강동경희대병원 정형외과 김기택(54) 교수팀이 7개월

동안 7번의 전신마취 수술을 하는 대장정 끝에 '새우 인간' 김씨의 허리를 쭉 편 것이다. 김씨 주변

사람들은 "척추가 아니라 기적을 세웠다"고 말한다.

"수술이 아니라 예술"

지난해 2월 김씨가 병원 진찰실을 처음 들어설 당시 김 교수의 마음은 착잡했다. 김씨는 엉덩이

관절마저 굳어버려 몸 전체를 좌우로 크게 뒤뚱뒤뚱 요동쳐야 겨우 걸을 수 있었다.

25년간 강직성 척추염 교정 수술을 400여 회 시술한 김 교수는 이 분야 국내 최고, 최다의 수술

전문가다. 그런 김 교수도 김씨를 보자마자 손사래를 쳤다.

"전 세계 학술지를 뒤져봐도 이렇게까지 척추가 휜 환자는 없어요.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대수술을

하다 자칫 하반신 마비가 오거나 환자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김씨는 수술받다가 죽어도 좋다며 매달렸다. 김씨는 이판사판 심정이었다. 가난한 집에서

자라 변변한 약물치료 한번 못 받고 지내다 보니 이 지경까지 왔다고 했다. 직장을 가질 수도, 일을

할 수도 없어 주변 도움으로 숙식만 해결하며 근근이 연명해왔다. 보다 못한 형과 친척들이 겨우

수술비를 모아준 덕에 뒤늦게 '한풀이 수술'에 나선 것이었다.

그때부터 척추·관절·미세재건 등을 전공하는 정형외과 전문의 6명이 팀을 짜 대수술이 시작됐다.

먼저 엉덩이 관절에 돌덩이처럼 박힌 대퇴골 상단을 쳐냈다. 척추를 바로 세우기 위해 하체 각(角)을

잡는 수술이다. 대들보를 세우기 위한 정지작업인 셈이다.

척추 교정 수술은 경추(목뼈)부터 시작해 흉추, 요추로 이어졌다. 수술은 휘어진 척추 중심 부위

척추 마디를 쐐기 모양으로 잘라내고, 이를 지렛대 삼아 위·아래 척추를 바로 세우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김 교수는 척추 재건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인 흉추·요추 부위 수술을 맡았다.

"솔직히 수술이 나한테까지 올 거라고는 생각 안 했습니다. 그전에 사단이 나도 날 것이라고

봤습니다. 그런데 앞 단계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면서 내가 수술할 날이 점점 다가왔습니다.

정말 도망치고 싶더군요."

총 10시간에 걸친 김 교수의 척추 수술은 성공리에 끝났다. 허리 세우기 대수술은 김씨의 양쪽

엉덩이 관절에 인공관절을 넣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의 척추에는 대형 나사못이 30개 박혔고,

엉덩이 관절에도 금속 뼈가 들어갔다. 엑스레이를 보면 뼈와 쇠가 절반씩 섞여 '600만불의 사나이'

가 연상된다.

수술 후 재활치료를 거치고 나서 김씨는 작년 9월 30여년 만에 허리를 세우고 걷게 됐다. 그때

소감을 묻자 김씨는 "꿈속을 걷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이후 김씨는 김 교수를 가끔 '엄마'라고

부른다. 김 교수가 자신을 새로 만들었다는 의미다.

"척추재건은 삶의 수술"

지난해 12월 대구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 김 교수가 이 수술 사례를 발표하자, 정형외과의사들로

부터 기립 박수가 나왔다. 심포지엄에 참석한 일본 척추 수술의 한 석학은 "이건 척추 수술이 아니라

척추 예술(spine art)"이라고 했다. 김씨 케이스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물어 국제학술지에 보고될

예정이다.

김 교수는 척추 재건 수술을 '삶의 수술'이라고 말한다. 환자들의 한을 풀어주고 인생을 바꾸는 수술

이라는 뜻이다. 이제까지 그가 수술한 최고령 강직성 척추염 환자는 72세이다.

"그 나이가 되셔서 뭘 수술을 받으시려고 하느냐고 했어요. 그랬더니 이렇게 척추가 굽어서 죽으면

들어갈 관이 없다고 해요. 죽더라도 척추를 펴고 죽겠다는 겁니다. 허허…."

환자 김씨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수술 경과를 보기 위해 안동에서 서울로 올라와 강동경희대병원을

찾는다. 김씨 가족들은 우울해하던 김씨가 이제 농담도 잘하고 주변 사람과도 잘 어울린다며 "우리도

한을 풀었다"고 했다.

 

엎드리지 못하자 앉혀 놓는 새 수술법 고안… 척추 펴기에 첨단기법 동원

 

김춘광씨의 척추 세우기 수술에는 각종 첨단 기법과 아이디어가 총동원됐다.

우선 김씨는 전신마취가 문제였다. 마취를 하려면 턱을 젖히고 입을 통해 산소와 마취가스를 공급

하는 기관지 튜브를 폐 기관지에 삽입해야 한다. 하지만 김씨의 턱은 가슴 밑 명치에 붙어 있으니

넣을 수가 없었다. 이에 의료진은 가느다란 내시경을 콧구멍을 통해 넣어 목 뒤로 지나가게 한 뒤

기관지에 위치시켰다. 기관지 튜브가 이 길을 따라 들어가도록 하여 전신마취에 성공했다.

경추(목뼈)를 교정하는 수술 자세도 난관이었다. 척추 교정 수술을 하려면 환자를 엎어 놓고 해야

한다. 하지만 김씨는 척추가 앞으로 굽어 엎드릴 수가 없다. 이에 의료진은 김씨를 앉혀 놓고 수술

하는 방식을 개발해 문제를 해결했다.

수술 과정에서 위·아래 목뼈를 당겨서 세우려면 김씨의 머리 부분을 잡고 견인해야 한다. 이는 극도로

위험한 순간이다. 자칫 앉아 있는 김씨의 목을 과도하게 뒤로 잡아당겼다가는 그 안에 있던 척추동맥이

끊어지거나 터져서 환자가 수술실에서 사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의료진은 김씨의 머리 전체를

특수 소독 천으로 감싸고 직접 손으로 김씨 머리를 조심스럽게 만져가며 목뼈를 바로 세웠다.

 

☞강직성 척추염

자신의 면역세포가 자기 세포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성질환. 주로 척추와 엉덩이 관절 주변 인대와 관절

활막을 공격한다. 대개 10대 후반~20대 초반에 발병하며, 망가진 척추가 딱딱하게 변하는 변형이 온다고

해서 ‘강직성’이라 부른다. 통증이 극심해 환자는 계속 웅크린 자세를 취하게 되고, 결국 그 자세로

척추가 굳는다.

 

 

원문 : 김철중 의학전문기자(doctor@chosun.com)

출처 : 조선닷컴 와플타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