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롱나무 꽃이 울었다 >
어떻게 말해야 할까,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배롱나무 꽃이 피었느냐고 아직도 나는 묻지를 못하는데
도요에 든 항아리처럼
잎과 살은 타버리고 정신의 뼈만 오롯이 남아
네가 수도원으로 깊이 숨어버린 그날
배롱나무 꽃이 울었다
그때 너를 본 건 TV뉴스 카메라에 잡혀 화면 가득 클로즈업 된 얼굴,
시위대 속에 섞여 구호를 외치는 너무도 낯익어 낯선 얼굴
불끈 쥔 앳된 주먹이 허공에서 맴돌고 있었지
너를 찾아 주말이면 서울로 오르내리던 막막한 길
마음이 온통 가시밭이던 그길
밖에는 배롱나무 꽃이 눈물처럼 피는데 꽃이 보이지 않는 그 아득함을 세상 어미 아비들은 아느니
그늘진 데 하나 없던 어디에 세상을 향한 그리 단단한 옹이가 박혔던 걸까
친구들을 버릴 수 없다고 뒤에서 지키게만 해달라고
애원하는 네가 참으로 서러웠다
빈손만 남긴 채 손가락사이로 흘러내린 물처럼
네가 만져지지 않았다
배롱나무 꽃이 구름처럼 피던 날 바닷가 수도원에서 어렵게 너를 찾았을 때
바람 잔 나무처럼 네 가지는 흔들리지 않고 네 우듬지는 무섭도록 고요했다
누가 너를 도요 속으로 밀어 넣은 건지
한 시대가 할퀴고 간 상처는 사람에게서 어른거려야 할 삶의 무늬를 너에게서 지워버렸다
그 거친 물살 건너며 잃은 것과 얻은 건 무얼까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우리가 슬퍼할 때 얻은 것을 감추는 사람은 누굴까
너에게서 흔들리던 그 빛나는 잎들은 이제 사라지고 없는데
만져지지 않는 영혼보다 바람에 몸을 뒤집던 너의 잎들을 우리는 다시 보고 싶은 것이니
어떻게 말해야 할까
상처란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내는 것이라는 걸,
잊은 것 같다가도 어느 날 문득 예리한 통증으로 살아난다는 걸
배롱나무 꽃이 피었느냐고 아직도 나는 묻지를 못하는데
[권귀순 시인]
----------------------------------------------------------
순아, 네가 나를 생각하며 썼다는 시를 읽으며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단다.
까마득한 뒤안으로 떠밀어버린 기억들
그러나 살짝 어루만지니,
흘러내릴 눈물이 아직 남았음이 놀랍구나.
오랫만에 참으로 오랫만에,
네가 밝혀준 빛으로
숨겨두었던 나를 찬찬히 바라보았지....
너의 시를 곰곰이
오래오래 씹어먹 듯 읽었단다.
오래된 상처같은 내 딸.....
시로 승화시켜 바라보니,
쓸데없는 눈물만 대책없이 흐르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