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고싶은 詩

그거 안 먹으면

권연자 세실리아 2020. 12. 24. 11:54

아침저녁 한 움큼씩

약을 먹는다 약 먹는 걸

더러 잊는다고 했더니

의사선생은 벌컥 화를 내면서

그게 목숨 걸린 일이란다

꼬박꼬박 챙기며 깜박 잊으며

약에 걸린 목숨이 하릴없이 늙는다

약 먹는 일 말고도

꾸역꾸역 마지못해 하고 사는 게

깜박 잊고 사는 게 어디 한두 가지랴

쭈글거리는 내 몰골이 안돼 보였던지

제자 하나가 날더러 제발

나이 좀 먹지 말라는데

그거 안 먹으면 깜박 죽는다는 걸

녀석도 깜박 잊었나보다

 

―정양(1942~ )

('시와 정신', 2016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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