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는 세상

쾰른 대성당이 불을 끈 이유

권연자 세실리아 2015. 1. 8. 12:04

                             

 

 

지난 5일 저녁 독일 쾰른 대성당 주변 구(舊)시가지는 평상시와 달리 어두웠다.

여느 때는 성당 뒤편 호엔촐레른 다리 위까지 환하게 조명등이 켜져 낮보다 더 화려한 야경(夜景)을

연출하는 곳이다.

그런데 왜 유독 이날 밤에는 도시의 대표 관광 명소인 성당 주변에서 불빛이 사라졌을까.

이날 독일 극우(極右) 단체가 쾰른·베를린·드레스덴 등 주요 도시에서 이슬람교와 이슬람권 이민자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 소식을 들은 독일 가톨릭 지도자 라이너 마리아 뵐키 추기경이 집회에 대한 항의 표시로서

성당을 비롯해 주변 건물의 조명까지 모조리 불을 끄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인종·종교 차별 주의자들은 (빛이 아닌) 어둠 속에 갇혀 있으라'는 메시지가 담긴 무언의 항의였다.

쾰른 대성당의 노르베르트 펠트호프 주임신부도 '도이칠란트 라디오'에 출연해서 "이슬람교를 포함해

모든 종교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며 이슬람교 신자들의 권리를 옹호했다.

가톨릭과 이슬람교는 중세 이후 약 1000년간 갈등과 대립을 반복해 왔다.

그럼에도 쾰른 대성당이 반(反)이슬람 집회에 대한 항의 표시로 소등(消燈)한 것은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배척과 증오가 사회의 다양성과 포용 능력을 해친다는 이유에서였다.

며칠 전 갑자기 세상을 뜬 독일의 세계적인 사회학자 울리히 베크가 저서 '자기만의 신(神)'에서 지적한 것처럼

우리는 타인에게 관용을 베풀 때 흔히 '나와 얼마나 같은가'를 기준으로 삼는다.

나와 판이하게 다른 대상을 향해 베푸는 '관용'은 그저 불편한 것을 참고 견디는 것일 뿐 다름 그 자체를

인정하는 것은 아닐 때가 많다.

물론 이질적이고 낯선 대상을 있는 자체로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쾰른 대성당이 보기 드문 포용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주체가 '박애' '평등'처럼 이상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종교 집단이었기에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다름'을 끌어안는 포용성은 이상 세계가 아닌 현실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가치고

사회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18세기의 네덜란드가 작지만 강한 나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비결은

한 세기 전부터 주류(主流)와 다른 생각까지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풍토가 조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는 "근대의 정신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명저 '방법서설'을 자기 나라가 아니라

네덜란드에서 출판했다. 1685년 프랑스에서 가톨릭과 개신교 신도의 차별을 금지한 낭트칙령이 폐지되자

프랑스의 신교도 기술자와 상인들은 대거 종교와 사상의 자유가 보장된 네덜란드로 이주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나와 다른 가치, 다른 생각에 얼마나 열려 있을까.

인종적·민족적·종교적·문화적 다양성이 점점 더 늘어나는 한국 사회도 다름을 인정하고

나와 다른 존재를 위해 불을 꺼줄 수 있는 쾰른 대성당 같은 곳이 많아진다면 조금 더 밝아질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기자의 시각] : 오윤희 국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