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이야기

물푸레마을 14층의 '해 지는 방'

권연자 세실리아 2020. 12. 18. 11:49

이곳 물푸레마을로 옮겨 온 후,

나는 의식의 나락으로 깊이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늘 우울하고...

아무것도 생기를 주는 일이 없었다.

아파트 14층에 갇혀 좀처럼 땅으로 내려가는 일 없이

일년이 가고 반 년이 또 가고....

 

그렇게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내가 살고있는 집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내듯

해가 지는 이 방을 사랑하게 되었다.

날마다 서산 너머로 숨어드는 해와 석양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온갖 상념에 잠기게 된다.

슬픔과 그리움 같은,

촉촉한 감정들을 뒤적이다보면

어느새 가슴은 한없이 맑아지곤 했다.

 

아파트가 정남향인데,

어쩌다 이 방은 서쪽 산을 바라보고 있어

'해 지는 방'이라 이름까지 붙이고

나는 사철 이 방을 드나든다.

소중한 책들과 컴퓨터가 차지하고 있는 방...

그리고 마치 예식을 행하 듯,

고단한 하루를 마친 해가

산 너머로 숨어드는 모습을 손 흔들며 배웅하곤 한다.

 

이렇게, 한 가지 두 가지

사랑 할 수 있는 것들을 발견해 가며

나는 물푸레마을 14층에 있는 이 집에 정을 붙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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