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는 세상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

권연자 세실리아 2021. 3. 3. 13:47

                              [허영엽 신부의 하루의 단상(斷想)(104) 중에서]

 

솔뫼 성지의 십자가(모셔온 사진)

                                                                        

 

 

지난 2월 구정 연휴가 지나고

정진석 추기경님은 며칠동안 몸에

통증이 심해 밤에 잠도 못이루시자

주변에서 병원에 입원하시기를 권유했어요.

그런데 처음에 추기경님은

입원하시기를 고사하셨지요.

그런데 21일 주일 오후가 되자

통증이 점점 심해져 어쩔 수 없이

서울성모병원에 입원을 하셨어요.

그런데 입원 직후부터

혈압이나 산소포화도, 맥박등 수치가

위험한 상황이되자

밤중이었지만

의료진은 교구청에 연락을 했어요.

2월22일 오전 1시반에 전화가 울렸어요.

염추기경님의 전화였어요.

“ 정추기경님이 위독하신 것 같아,

빨리 병원에 가야할 것 같은데~”

황급히 교구청마당에 나와

다른 신부님들과 함께

병원에 도착했어요.

나는 먼저 병실에 들어갔어요.

힘겹게 눈을 뜨시고 나는 손을 잡었어요.

정 추기경님께서 말씀하셨어요.

“미안해”

“아~ 그런 말씀 마세요”

밖의 의사선생님이 그래요.

추기경님의 증세가 너무 고통스러우실텐데

너무 잘 참으시고 내색을 안하시니

마음이 더 아파요.

그리고 당신을 찾은 분들에게

힘겹지만 천천히 분명하게

말씀을 남기셨어요.

마치 마지막처럼~~

대략 이런 내용이었어요.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이들이 많은데

빨리 그 고통을 벗어나도록 기도하자.

주로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굳건히 해야한다.

힘들고 어려울 때 더욱 더 하느님께 다가가야 한다.

그리고 모든 이가 행복하길 바란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 바로 하느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부족함으로 알게모르게 상처받은 이들에게

부디 용서해주시기를 바란다고 하셨어요.

그러자 염 추기경님께서

“추기경님,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탁하세요”

하시면서 이마에 기름을 발라 병자성사를 주시고

교황님의 전대사를 주셨어요.

정추기경님은 기도 끝에 “아멘!”이라 하셨어요.

두 눈에 이슬이 맺혔어요.

그 모습을 보자 늘 정추기경님이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어요.

“ 인생은 각자 자신의 역할을 가지고 무대에 올라

공연을 마치고 역할이 끝나면

무대뒤로 사라지는 거야”

“ 젊은 시절 세 번의 죽음을 가까스로 모면한 체험이

나를 완전히 변화시켰어. 하느님은 왜 나를 살려두셨을까?

어쩌면 내 인생은 덤으로 사는거지.”

그 말씀을 나는 여러번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갈수록 추기경님이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조금 특별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평화신문에 기고한 정 추기경님의 일대기를

“추기경 정진석”을 묶어 책으로 출판했어요.

그리고 질문을 드린 적이 있어요.

그 회고록을 읽으시면 어떤생각이 드세요?

“ 그 회고록을 읽다보면 마치 내가 무덤에 있는데

사람들이 찾아와 그 무덤앞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 하는 것 같이 들려”

입원 전에 이미 정 추기경은 스스로 고령임을

감안해 주변에 많은 걱정을 끼친다며

많은 위험을 안고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자신의 입장을 밝히신 상태였습니다.

정 추기경은 오래전부터 노환으로

맞게되는 자신의 죽음을 잘 준비하고 싶다면서

2018년 9월 27일에 연명 의료계획서에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서명했어요.

만약 나이로 인해 장기기증이 효과가 없다면

안구라도 기증해서 연구용으로 사용해주실 것을

연명계획서에 직접 글을 써서 청원했어요.

정추기경님이 각막기증에 특별히 신경을 쓰는 것은

아마도 어머니의 영향이라 생각해요.

아들이 사제가 되고 훗날 주교가 되었을 때도

정 추기경의 어머니는 오롯이 젊은 날부터

말년까지 생계를 위해

부평에서 삯바느질을 쉬지 않으셨지요.

그리고 틈틈이 본당의 연령회원으로 봉사하며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위해 염을 하고

기도하는 것이 어머니에게 유일한 낙이었어요.

어머니는 외아들을 사제로 키운 후에도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사제관에서 함께 생활하지 않고 홀로 지냈어요.

아들이 사제품을 받은 이후부터는

한 번도 아들에게 “보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요.

혹여 홀어머니를 둔 외아들이

사제의 길을 걷는 데 다른 생각을 하게 될까

노심초사하신 것이지요.

어머니는 죽어서도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며

당신의 안구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지요.

어머니는 본명이 루치아인데 루치아 성녀는

로마 시대 두 눈을 잃고 순교하여

눈이 아픈 사람들의 수호성인이죠.

의사의 사망선고 직후

정추기경은 주변의 만류에도

어머니의 수술을 곁에서 끝까지 지켜보았어요.

평생을 남에게 나누며 사셨던 어머니의 모습을

마음에 새기고 싶었기 때문이었지요.

어머니의 장례를 마친 후 정추기경은

어머니의 유산을 모두 정리해

충북 증평군 증평읍 초중리에 땅을 사고

이를 청주교구에 기증했어요.

이곳에 청주교구는 초중성당을 건립했고

본당의 수호 성녀는

‘성녀 루치아’를 모셨어요.

그러나 정작 정추기경은 서울대교구장으로 발령이나서

10년이 지난후에야 이곳을 방문했지요.

지난 2월 25일에는 자신의 통장에 있는

잔액도 모두 필요한 곳에 봉헌하셨어요.

정추기경님은 본래 전에도

당신통장에 어느정도 돈이 쌓이면

비공개로 교구관리국에 기증하거나

도움이 꼭 필요한 곳에

돈을 보내 도와주었어요.

아마도 이번에는 당신의 삶을

정리하는 차원에서인지

몇 곳을 직접 지정하여

도와주도록 하셨어요.

그리고 나머지 얼마간의 돈은

고생한 의료진과

간호사들, 봉사자들에게

써달라고 부탁하셨어요.

당신의 장례비를 남기겠다고 하셔서

모든 사제가 평생 일한 교구에서 당연히

해야할 일이니

그건 안된다고 했어요.

어제 그리고 오늘도 정추기경님이 선종을 하셨다는

잘못된 뉴스도 떠도네요.

현재 정진석 추기경은

연명치료도 거부한 채

힘들게 투병중이십니다.

정추기경님은 이 세상에서 인생의 소풍을 끝내고

하늘나라로 돌아가려 하십니다.

마지막 순간이 가장 힘든 순간이라고 해요.

정 추기경님을 위한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