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는 세상

아내 아닌 여인과 한번의 데이트

권연자 세실리아 2021. 7. 11. 15:15

얼마 전에 나는 아내가 아닌 다른 여인을 만나러 갔다. 실은 내 아내의 권유였지만...

 

어느 날 아내가 내게 말했다.

"당신은 그녀를 사랑하잖아요. 인생은 짧아요. 당신은 그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해요."

아내의 말은 정말 뜻밖이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했다

"여보! 난 당신을 사랑해."

그러나 나의 말에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알아요. 하지만 당신은 그녀도 사랑하잖아요."

내 아내가 만나라고 한 다른 여자는 실은 내 어머니다. 미망인이 되신지 벌써 몇 년...

일과 애들 핑계로 자주 찾아 뵙지 못했다.

 

그날 밤 나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같이 영화도 보고 저녁식사도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의아해하면서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냐? 혹시 나쁜 일은 아니지?"

알다시피 어머니의 세대는 저녁 7시가 지나서 걸려오는 전화는 모두 나쁜 소식일 거라고 믿는 세대다.

“그냥 엄마하고 단 둘이 저녁도 먹고 영화도 보고 싶어서요. 괜찮겠어요?”

잠시 후 어머니가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러자꾸나."

 

다음 날 저녁, 일을 마친 후 차를 몰고 어머니를 모시러 갔다.

금요일이었고 나는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한 기분에 휩싸였다.

첫 데이트를 하기 전에 갖게 되는 가슴 두근거림이라고나 할까?

도착하니 어머니도 다소 들떠 있는 표정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미리 집앞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근사한 옛 코트를 걸치고 머리도 다듬은 모양이었다.

코트 안의 옷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두분의 마지막 결혼기념일에 입었던 옷이다.

어머니의 얼굴이 애인을 기다리는 소녀 같이 환한 미소로 활짝 피어있었다.

"친구들에게 오늘 밤에 아들과 데이트한다고 했더니 모두 자기 일인 양 들떠 있지 뭐냐."

 

어머니와 함께 간 식당은 최고로 멋진 곳은 아니지만 종업원들은 기대 이상으로 친절했다.

어머니가 살며시 내 팔을 끼고 마치 대통령 영부인이라도 된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자리에 앉자 어머니가..

"내 눈이 옛날 같지가 않구나."

하면서 메뉴를 읽어 달라고 했다.

메뉴를 반 쯤 보다 눈을 들어보니 어머니가 향수에 젖은 미소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네가 어렸을 때는 내가 네게 메뉴를 읽어 줬는데.."

그 말을 듣고 내가 말했다.

"오늘은 내가 읽어 드릴게요. 엄마."

 

그날 밤 우리는 특별한 주제도 아니고 그저 일상적인 이야기였지만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어머니와 끊임없이 옛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마침내 대화의 밑천이 바닥났다.

빙긋이 웃으며 어머니가 말했다.

"다음에 또 오자꾸나. 단 다음은 내가 낸다는 조건이야."

어머니를 다시 댁에 모셔다드리고 헤어지려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머니를 안고 볼에 키스하며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했다. 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감사하며 말했다.

"멋진 저녁이었어. 그렇게 할 수 있게 말해줘서 고마워."

"어머니와 좋은 시간이었던가 봐요?"

"정말이지. 기대 이상이었어."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어머니는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그것은 너무 순식간이어서 나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조금 시간이 흐른 후에 어머니와 내가 함께 저녁식사를 했던 식당에서 편지가 도착했다.

편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ㅡ아무래도 다음 데이트 약속은 지킬 수 없을 것 같구나. 정말 그럴 것 같다.

그러니 이번엔 너와 네 처가 너와 내가 했던 것처럼 함께 즐겼으면 한다. 식사비용은 내가 미리 지불했다.

그리고 너와 내가 함께 했던 그날 밤의 시간들이 내겐 얼마나 뜻 깊은 일이었는지 네가 꼭 알아주면 좋겠다.

사랑한다. 엄마가...ㅡ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하는 것이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오랜 동안 우리와 함께 할 것인지 모르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만약 님의 어머니가 아직 살아계시다면 어머니에게 감사하고 만약 계시지 않다면

오늘의 당신을 있게 한 어머니를 기억하길 바랍니다.

*네 자식이 해주길 바라는 것과 똑같이 네 부모에게 행하라. -소크라테스-

-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