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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의 수도 파리에서 박세은 ‘★’이 되다

권연자 세실리아 2021. 6. 1. 12:10

6월 유럽 공연계는 ‘코리아’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습 중인 발레리나 박세은. 손에 단검을 쥐고 있다.

                     박세은은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은 감미롭거나 웅장한 대목도 있지만 어느 구간에선

                     끊어질 듯 흐느낀다”며 “슬픔이 묻어나는 음악”이라고 했다. /agathe poupeney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POB)에서 활약하는 박세은(32)이 ‘발코니 파드되(2인무)’를 춘다.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유명한 그 발코니다. 걷잡을 수 없는 비극의 여주인공으로 처음 호명된 것이다.

           박세은은 6월 10~29일 파리 바스티유 극장에서 공연하는 이 전막 발레에서 16일과 19일,

           23일 줄리엣이 돼 무대에 오른다.

           “모든 발레리나가 꿈꾸는 배역이에요. 줄리엣은 춤 못지않게 드라마가 중요해 액팅(연기)에

           더 집중하고 있어요. 클래식 발레를 많이 해 온몸이 반듯하게 정리돼 있었는데 요즘엔 거꾸로

           힘을 푸는 연습을 많이 합니다. 줄리엣을 준비하면서 무용수로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에요.”

           이번에 줄리엣으로 춤추는 발레리나는 모두 5명.

           박세은을 뺀 4명은 모두 에투알(étoile·수석 무용수)이다. 프르미에 당쇠르(premier danseur·제1 무용수)인

           박세은이 명실상부 세계 최정상인 POB에서 동양인 최초로 에투알을 예약했다는 신호로 읽힌다.

           인터뷰는 며칠 동안 이메일과 전화로 진행됐다.

          -캐스팅을 보면 박세은은 에투알과 동급입니다.

           “에투알은 발레단의 얼굴이에요. 책임감이 크고 모범을 보여야 하는 자리라 

           ‘내가 자격이 될까’ 돌아보게 됩니다. 언젠가 이루고 싶은 꿈이지만 마음은 지금이 더 편해요.

           동경하며 살 수 있다는 데 감사하고요.”

          -전설적인 안무가 루돌프 누레예프(1938~1993)가 해석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특징이라면.

          “누레예프 작품은 무용수들에게 악명(?)이 높아요. 처음엔 힘들어서 ‘발레 하다 죽는구나’ 겁이 납니다.

          그런데 공연을 올릴 때쯤이면 성취감에 휩싸여요. 어떤 한계를 견디고 몸이 단련된 느낌을 받는 거예요.

          누레예프의 줄리엣은 아름답고 순수한 캐릭터가 아닙니다. 로미오를 끌고 갈 만큼 강하고 확신에 차 있어요.”

        -줄리엣이 로미오를 이끄나요?

          “이 작품에서는 모든 운명을 줄리엣이 결정합니다.

          14세 소녀의 감정이 1막부터 3막까지 어떻게 변하는지 보는 재미도 있어요.

          줄리엣 춤을 가르칠 때 누레예프가 가장 자주 한 말이 ‘남자아이처럼!’이래요.

          줄리엣은 여성스럽기보다는 밝고 장난기 많고 로미오만큼 대범해요.”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은 어떤가요.

         “이렇게 완벽한 발레 음악이 있나 싶습니다. 대화하듯이 이야기를 잘 묘사하는 식이에요.

         감미롭거나 웅장한 대목도 있지만 어느 구간에선 끊어질 듯 흐느껴요.

         ‘로미오 음악’과 ‘줄리엣 음악’이 사뭇 다른 색깔입니다. 줄거리는 다 알잖아요. 음악 자체에 슬픔이 묻어나요.”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활약 중인 발레리나 박세은.

          "신체의 아름다운 비율, '끼'에다 기술까지 두루 갖춘 무용수"(한국예술종합학교 김선희 교수)라는

          평을 받는다.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앞둔 박세은은 “슬픔이나 고통은 얼굴이 아닌 몸에 담아야 더 잘

          전달된다는 것을 배웠다”며 “관객이 있는 무대에 오를 생각을 하니 설렌다”고 했다. /박세은 제공

          국제 콩쿠르를 휩쓸던 박세은은 외국인이 5%에 불과하고 경쟁이 심한 POB에 2011년 한국 발레리나 최초로

          입단했다. 2018년 발레 무용수 최고의 영예인 ‘브누아 드 라 당스’를 수상했고 지난해엔 ‘빈사의 백조’ 독무(獨舞)

          로 호평받았다.

          -코로나로 공연장이 닫혔던 지난 1년은 어떤 시간이었나요.

          “식당도 카페도 문을 닫았지만 저는 월요일마다 코로나 테스트(음성 확인)를 받고 발레단으로 출근했어요.

          연습을 다 끝낸 공연이 줄줄이 무산돼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좋은 배역은 기회가 쉽게 오지 않으니까요.

          POB는 레퍼토리가 많아 ‘로미오와 줄리엣’도 5년 만의 무대예요. 몇 개월씩 준비하는 이 시간이 참 소중해요.”

         -발레단에서 ‘새(sae)’라는 애칭으로 불린다던데 ‘새(bird)’로도 들릴 것 같아요.

          “하하. 프랑스어에 은(eun) 발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짜 친한 친구들은 저를 ‘키키(kiki)’라 불러요. 

          장난치다가 웃음소리를 포착한 애칭입니다.”

         -POB에서 언젠가 춤추고 싶은 작품이라면.

          “에투알도 아닌 제가 ‘백조의 호수’의 오데트,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을 맡았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에요.

          수많은 감정으로 충일한 무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누레예프는 POB의 가장 큰 자산이자 심장입니다.

          그의 모든 클래식 안무작을 다 경험하고 싶어요. 파업 때문에 기회를 놓쳤던 ‘레이몬다’, 코로나로 무산된

          ‘라 바야데르’도.”

         -박세은에게 발레란 무엇인가요.

          “(골똘히 생각하다) ‘꿈’인 것 같아요. 어떤 발레단에 가고 싶다, 어떤 배역을 맡고 싶다, 어떤 위치에 가고 싶다,

          어떤 춤을 추고 싶다···. 발레를 시작한 지 20년, POB 입단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꿈이 많아요.

          그래서 하루하루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파리오페라발레단이 공연한 '백조의 호수'에서 여주인공 오데트를 연기한 박세은.

          그녀는 "공부가 몸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때까지 연습한다"고 했다. 에투알은 예술감독과 이사회 논의를 거쳐

          지명된다. /박세은 제공

 

 

조선일보 문화.라이프 : 박돈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