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 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 가는 길 3 / 우리나라 젊은이들과 함께...

권연자 세실리아 2013. 1. 3. 14:59

             

         10월 7일 /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  →  수비리(Zubiri) / 23km

                              (론세스바예스→부르게떼→에스삐날→비스까렛→린소아인→수비리)

 

              시설이 깨끗하고 침대도 깨끗해서 기분좋게 하루 밤을 보냈다.

              그러나 많은 순례자들이 묵는 알베르게에서 처음으로 자는 밤이어서인지

              긴장감이 없을 수 없었다. 

              새벽에 깨어보니 어느새 떠날 준비들을 하고 있는 순례자들이 조용조용 움직이고 있다.

        

          ▼ 밖은 캄캄한데 어차피 아침식사를 할 곳도 없는 곳이니 준비가 되는대로 떠난다.

              아래층 복도에서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는 순례자들.

              벽 옆에 있는 상위에 옷 가지며 그 외의 여러가지 물건들이 놓여있기에 무슨 일인가 살펴보니

              전 날 피레네 산맥을 넘으며 등에 메고 온 짐 때문에 죽을 고생을 한 순례자들이

              과감하게(?) 덜어내고 떠난 물건들이다. 이렇게 덜어내도 걷다보면 또 덜어내게 된다^^.

 

 

 

 

 

           캄캄한 새벽 길을 걷는 일이 아직은 익숙하지 않고,

           해발 952m나 되는 론세스바예스의 새벽은 추웠다.

           그러나 랜턴으로 비추며 노란 화살표를 찾아 걷다보면 어느새 모든것을 잊고

           길에만 집중하게 된다.

 

            

            3km 걸으면 부르게떼(Burguete)라는 마을이 나타난다.

            조용하고 신비스런 분위기의 부르게떼는,

            이베리아반도(현재의 스페인)와 프랑스를 연결하는 나바라의 역사가 있는 곳으로

            나바라 왕국의 여러가지 역사적이고 전설적인 사건들과 함께 통행로 역할을 했던 곳인 듯 하다.

 

             특히 이곳은 유명한 작가들도 찾아와 머물었던 곳으로 우리가 잘 알고있는 

             빅토르 위고,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이 머물었다는데, 헤밍웨이팜플로냐의 소음을 피해

             이곳에 와서 그의 대표작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집필했다고 한다. 

              

         ▼ 날은 완전히 밝았고, 아침식사를 못하고 떠난 순례자들이 이 마을 bar에서 식사를 한다.

             예쁜 마을길로 접어들어 bar를 찾아다니는데, 이른 아침이라 마을 사람들은 그림자도 볼 수 없고

             bar를 찾는 순례자들만 보인다.

 

 

 

 

            ▼ 마을 길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찾아낸 bar.

                이 곳에서 많은 순례자들이 아침식사를 했는데,

                옆에 보이는 건물이 바리의 산 니콜라스 성당(lglesia de San Nicolas de Bari)이다.

                이 성당은 16세기에 짓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언제 완성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바로크 양식의 창문이 아름다웠다. 

 

                  

 

 

            ▼ 따끈한 까페 콘 레체(카페 라떼)와 샌드위치 하나면 만족한 아침식사다.

                까미노를 걷다보면 식사를 bar에서 해결하는 일이 많은데,

                이런 샌드위치가 없어서(지금 보니 너무 훌륭한 아침식사다!)

                보잘것 없는 빵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더 많았었다ㅠㅠ

                그 길에서 지나게 되는 마을들이 대부분 오지 마을들이니까.....

                이 bar에서 점심에 먹을 빵과 과일 몇개 그리고 물을 샀다.

 

 

 

                ▼ 넓은 농장지대를 지나고....

 

 

               ▼ 가리비 표지석이 가리키는 숲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 다시 예쁜 마을을 만나는 까미노 길....

                     에스삐날(Espinal)이라는 마을로, 나바라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에 있어서

                     피레네의 풍경을 즐길 수 있는 마을이라고 한다.

                    

          하지만 산티아고 길을 걷는 초보자였던 나는 이런저런 풍경을 즐기고 유적을 찾아보고...할만큼

          여유롭지 못했고, 그저 이 길을 충실히 걷고있다는데 만족 할 뿐이었다.

          저 아래 왼쪽으로 보이는 뾰족한 지붕의 집이 산 바르톨로메 성당(lglesia de San Bartolome)인데

          1961년에 세워진 현대적인 성당이다.

 

 

 

 

                ▼ 차도를 건너 캄캄한 숲길로 들어가기도 한다.

 

 

            ▼ 어느 마을인지 기억이 나지않는데...

                마을에 무슨 축제가 있는 듯 했다. 마을 사람들이 많이 작은 광장에 모여있었고

                남자들은 마라톤 대회가 있는지 우리가 걷고있는 순례길을  힘겹게 뛰어오르고 있었다.

 

 

 

               ▼ 이 사람들은, 뛰기를 포기하고 걷고있다^^

 

 

 

 

      ▼ 이 순례길을 걷다보면 종종, camino를 걷다가 생을 마감한 사람들의 자리를 볼 수 있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생명까지 잃게됬을까... 현재 힘든 상황에서 이런 장소를 만나면 눈물이 나더라.....

        

         이 길을 걷다 생을 마감하는 순례자가 생기면 근처에 있는 성당에서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미사를 드려준다고 한다.

         아래는 2002년에 이곳에서 죽은 어느 일본 분의 묘지다.(시신이 여기 묻혔는지는 모르지만,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표지가 있다)

         지나는 순례자들이 명복을 비는 표시로 솔방울이며, 꽃이나 나무가지 등을 놓고 간다.

         나도 그분의 명복을 빌며 예쁘게 물든 나뭇잎을 놓고 왔는데.....

         이 길에서 죽을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숙연해졌었다. 

           

 

 

               ▼ 수비리(Zubiri)로 내려가는 내리막길....

                   비가 내리는 날이면 이 길은 완전 진흙길이 된다니...^^ ,  그저 감사할 뿐!

 

 

 

                ▼ 수비리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 수비리 마을로 들어가는 예쁜 돌다리.

              수비리 라는 마을 이름은 바스크어 '다리의 마을'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 마을이 아르가 강을 끼고있기 때문에 예전부터 다리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었을 것이라고....

 

 

 

 

 

 

 

                ▼ 다리를 건너면 이런 예쁜 집들이 있다.

 

 

 

         ▼ 우리가 들어간 사설 알베르게.

             길 건너편에 시립 알베르게가 있었으나, 사람들이 덜 붐비는 조용한 곳에서 자고싶어서

             사립 알베르게로 들어갔다(1인 12유로). 식당도 운영하는 곳이어서 저녁도 예약했다(12유로).

             침대 세개는 이층 침대가 아니었는데 오른쪽 두 곳에서 우리가 자고, 창가의 침대는

             카나다에서 온 한국교민 학생이 차지했다.

 

             이 알베르게에서 처음 만나게 된, 카나다로 가족이 이민갔다는 한국 청년....

             22살이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점잔코 신중한 성격의 학생이었다.

             이렇게 만난것도 인연이어서 제법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자신이 요아킴이라는 세례명을 가진 가톨릭 신자임을 밝혔다.

             마침 주일이어서 마을에 있는 성당으로 미사시간을 알아보러 나갔다가,

             새벽 6시 30분과 오전 11시 미사밖에 없다고 성당 문이 잠겨있더라는 말을 내가 했더니,

             자기는 어찌될지 몰라 대송을 하며왔다고 하는..... 

             피레네를 하루에 넘었는데 산 위에 있던 성모상 앞에서 많이 울었노라고,

             많은 눈물을 흘리며 그 앞에서 오래 기도했다고....

             거기서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던 나는 그 젊은이가 너무 기특했다.

             성직자가 될 수도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며 물어보니, 어렸을 때 그런 생각을 했었고 아버지도

             찬성을 하셨지만 엄마가 반대를 하셔서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신중하고 담담히 털어놓았다.

             지금 생각하니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놓았어야하는걸.... 아쉽다!

 

 

 

           저녁 식사시간,

           이 알베르게의 식당으로 가니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어제 론세스바예스에서 만났던 우리나라

           학생들도 모두 모였다. 모두 여섯명으로(남4, 여2) 각각 혼자 한국을 떠났었는데 생장으로 오는

           기차에서 처음 만난 친구들이라고 했다.

           알베르게에서 나를 보더니 동포(!)를 만나서인지 무척 반가워하며 침대 옆에 모여서서 혼자 오셨냐,

           아저씨는 여기 오시다 만난 분인지(ㅎㅎㅎㅎ...) 궁금한 것들을 물었었다.

           다시 만나니 반가웠는데, 그 학생들은 길 건너편 시립 알베르게에서 잔다고.

           결국 긴 식탁에 그 학생들과 우리 내외, 그리고 카나다에서 온 교포 학생 두명

           열 명이나 되는 한국 사람들의 식탁이 되어 함께 식사를 하며 우리 말로 실컷 얘기들을 나눴다.

           

           그런데!

           아직 방학도 아닌데 웬일이지? 학생들이 이렇게 많이 오다니....

           학교는 어쩌고 왔냐고 물으니 모두 휴학했단다.

           각각 무슨 이유들이 있어서 휴학을 했겠지만, 그 당시엔 조금 의아했었는데

           한국에 돌아온 후 알게됬다. 요즘 대학생들에게 휴학이 하나의 문화처럼 되었다는 것을.... 

           모두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서 어떠한 확신도 없기때문이겠지.

           우리 세대도 마찬가지였지만, 숨가쁘게 살아온 세월이었으나 이 지점에 서서 한 숨 돌리게 된 지금,

           불확실한 미래때문에 고민하는 젊음이 오히려 안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