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땅을 찾아서

시리아 사막 길을 가며.... (중동 아시아 여행기 4)

권연자 세실리아 2010. 5. 8. 15:50

 

 

끝없는 시리아 사막과 베드윈족의 양떼를 만나다...

 

 

 '사막의 꽃'이라 불리는 '팔미라' 유적

 

 

 

끝없는 사막을 달리며, 지금은 참으로 가난한 나라 시리아를 생각해 본다.

사회주의 국가이면서도, 종교를 거부하는 사회주의 원칙을 무시하고 유일신 알라를 신봉하는

특이한 이슬람 국가가 바로 시리아이다.

 시리아가 이슬람이 될 수 있었던 요인은, 아라비아의 이슬람이 대륙으로 진출해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리아 내의 종교 분포를 보면, 이슬람이 83%(수니파 72.6%, 시아파 10.4%), 그리스도교 13%,

두르즈교 3%이다. 놀라운 것은 시리아가 아랍 국가이면서, 더구나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많은 수의 크리스챤들이 그 나라의 구성원으로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AD 637년경부터 오늘날까지 이슬람의 지배를 받아왔음에도 그리스도교가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음을 보면서, 이슬람과 그리스도교와의 관계가 우호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는 미래를 꿈꾸어 본다.

 사막이 끝없이 이어지는 척박한 땅이 대부분인 시리아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오스만투르크 왕조가

무너진 이후 프랑스 치하에 있다가 1946년 독립했지만, 1967년에 있었던 이스라엘과 아랍국과의

중에 골란 고원을 이스라엘에게 빼앗겨 지금까지도 양측은 골란고원 반환에 대한 분쟁과

평화회담이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시리아에서 큰 도시에 속하는 '홈스'에서 사막 길로 나서자,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누런 색 외에

어떤 색갈의 변화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광야의 연속이다.

이런 곳을 준 사막이라 한다는데, 일년 강우량이 200mm를 넘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정말 나무 한

파릇한 풀 한 포기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신기루처럼 저 멀리 광야 한가운데 무엇이 보이기 시작한다. 점점 가까이 다가가니

한무리와 함께 사막의 귀족이라고들 하는 베드윈족 남자 한 사람이 보인다.

이런 곳에서 사람을 만나다니!

차를 세우고 일행들은 모두 밖으로 나가서 마치 오랫만에 만난 옛친구라도 되는양, 후리후리한

'베드윈'족 사내를 둘러싸고 가이드를 통해 질문을 하는 사람, 함께 사진을 찍는 사람, 모두들

예상치 못했던 만남으로 생기가 넘친다.

그럴 수 밖에!! 죽은 듯 정지해 있던 시야에 살아 움직이는 무엇이라도 발견하면 그냥 반가울텐데

말로만 들었던 '베드윈'족과 양떼라니...!

뻐스에 갇혀 축 늘어져 있던 사람들이 생기에 넘칠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있겠는가?!

그리고, 우리는 나그네를 대접하는 그들의 풍습대로, 자기들 천막에 가서 차를 마시고 가라는 초대를

다. 매우 아쉽지만 갈 길이 바쁜 나그네들이니 여유롭게 차 초대에 응할 시간이 없어, 미련과

호기을 다독거리며, 다시 사막길에 오른다.

 사막 한 가운데 갑자기 솟아 오른 환상의 도시 팔미라!!

지금은 발굴해 놓은 부서진 건축물과 조각들로 그 옛날의 아름다움을 상상해 볼 뿐이지만, 옛날 전성기

에는 사막의 오아시스로 오가는 이들에게 기쁨희망이었다는 팔미라-,

 한 때는 인구 10만명 정도가 살았던 아름다운 도시였다고 한다.

그 아름다움은 허물어진 신전(이곳 역시 바알의 신전이다), 엄청나게 큰 석주들이 열지어 있는 번화가,

다른 많은 건물들의 규모만 보아도 얼마나 화려하고 웅장한 도시였는지 짐작하고도 남을 정도다.
 로마 황제 아우렐리우스의 명령으로 파괴되기 전 까지, 로마와 극동지역을 연결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던 교역의 중심지였으나, 그 옛날의 영화는 간 곳 없이 사라지고 지금 이곳을 찾는 이들은 전성기 때의

아름다움을 상상해 볼 뿐이다.
그러나 팔미라는 아직도 사막의 아름다운 꽃으로 남아있다.

 이곳 팔미라에는 3세기 여걸 '제노비아'(Zenobia)의 자존심의 역사가 있다. 자존심 강한 그녀는 로마의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복종하기를 거부하다가, 결국 로마 황제에게 괴씸 죄에 걸려 전쟁을 하던

잡혀서 유프라테스강 근처에서 죽임을 당했다한다.

 옛날에는 시리아(수리아)를 아람 지방이라 했고 아람어를 사용했었지만, 현재 아람어를 쓰고 있는 곳은
중동 지방에서 유일하게 '말룰라'가 남아있다고 한다.
다마스커스를 향해 다시 사막을 달리던 중 '말룰라'에 들렸다.

아, 그곳에서 뜻밖에도 성녀 '테클라'를 만났다!
테클라는 바오로의 2차 전도 여행 때, 이코니온(콘야)에서 그리스도를 믿게 된 처녀이다.

그녀는 이미 약혼한 몸이었으나, 결혼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그 남편이나 아내를 기쁘게 할까를 생각

지만 시집, 장가 가지 않은 이들은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할까에 몰두한다는 내용의 바오로 설교를

듣게 되었다.

 그녀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순결을 지킬 것을 결심하고 파혼 선언을 하고말았다.

그녀의 부모는 노발대발하여 딸을 불 태워 죽이려했지만, 마침 하늘에서 비와 우박이 내려 그녀의 몸은

털끝 하나 타지 않았다. 다시 야수들에게 던져졌으나 짐승들은 입을 다물고 그녀를 해치지 않았다한다.

결국 부모에게 내쫓기고 버림받았으나 바오로로부터 주님의 말씀을 전파하라는 허락을 받은 후 이코니온

과 실리프케를 오가며 복음을 전하며 살았다.

실리프케(현재 터키)에 가면 테클라의 수녀원 동굴이 있다고 한다.
 말룰라에서 테클라를 만나 기뻤다. 험한 골짜기 같은 이곳은 초대 교회 신자들이 카타콤 생활을 했

곳이라는데, 테클라는 박해를 피해 수리아 땅 말룰라까지 와서 터를 잡고 수도 생활을 하며 병자들을

고치는 기적도 행하다가 순교를 당했다고 한다.
 성녀 테클라의 무덤에 들어가 촛불을 켜 놓고 이야기를 건넨다.

바오로 사도의 사랑스런 동역자 테클라여, 뜻밖에 당신을 만나 가슴이 기쁨으로 가득합니다. 당신을

조금이라도 닮을 수 있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세요.

 테클라 성녀의 묘지에서 나오니 어느듯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섭섭함과 말룰라 골짜기내리는 적막감 탓인가,

석양 무렵이면 공연히 슬퍼지는 오래된 병이 다시 도지고 있었다.....

 

 

 

 

 

시리아 사막에 있는 팔미라의 유적들

(이번 내전으로 대부분 파괴되었다니 가슴 아프다.)

 

 

 

 

 

 

 

 

 

 

 

 

 

 

 

 

 

 

 

 

 

 

 

 

 

 

 

 

 

 

 

 

                 성녀 테클라의무덤

 

 

 

 

 

 

 

                말룰라 골짜기의 수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