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땅을 찾아서

슬픔에 젖은 베이루트 (중동 아시아 여행기 1)

권연자 세실리아 2010. 5. 6. 17:03

기행문은 신학원 성서교육과 1학년을 마친 겨울 방학,

그러니까 2005년 2월에 여행했던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중동 아시아)을

여행했던 기록이다.

지금은 내전 상태여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없는 시리아를 비롯해

극심한 내전을 치른 후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여서 아직은 불안한 상태였던 레바논,

그리고 구약시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취가 그리운 요르단까지...

이 성서의 땅들로 달려 갈 수 있었던 행운에 감사하면서,

여행 후 일년이 지난 2006년에야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이 기록을 다시 들추어 내는 이유는,

안타까운 시리아의 내전과

반겨주는 나라 없는 난민들의 처지가 안타까웠고

그 성서의 땅에서 끊임없는 분쟁이 종식되는 날은 정말 오지않을 것인가..

함께 기도해보고 싶어서이다. 

 

 

 

사진 1 : 하리사 산정에서 멀리, 지중해를 품고 있는 베이루트를 바라본다.
 

사진 2 : 삼엄한 경비로 인적이 드문 베이루트 시내.

 

  


그때를 떠올리면, 어느 먼 별에라도 다녀온 듯 신비롭기만하다.
어느듯 일년이 지났다. 뒤늦게나마 그 때의 느낌들을 추려내어 무언가를 기록해보고 싶은데,

기억 속의 느낌들이  살아나줄런지 별로 자신은 없다.

그날, 2005년 2월 16일 우리가 베이루트에 도착했을 때, 그곳의 분위기는 매우 어수선했다.

레바논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던 '하리리'총리가 자살폭탄 테러에 의해 그의 수행원
일곱명과 함께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는 15년 내전에 시달려온 조국 레바논의 중흥을 위해
힘써온 유능한 재상이었다고 한다.

시내는 전시상태처럼 군인들이 모든 길목들을 바리케이트로 차단하고 있었고, 상가들은

모두 철시한 채 행인들도 뜸했다. 평소에는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는다는 베이루트였으나,
국장을 치루기 전 '하리리'를 애도하는 기간이었으니 한산하고 살벌한 시내 분위기는 공포스
러울 정도였다. 마침, '하리리'총리와 친했다는 프랑스 대통령의 조문행렬이 지나간다.
 
이들의 슬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에머랄드 빛으로 출렁이는 지중해는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나 역시 이곳 베이루트에 도착하기 전 까지는 '하리리'라는 이름도, 잘 생긴 그의 얼굴조차

본 일이 없었지않은가.
내가 레바논에 대해 아는 지식이란, 주님께서 다니신 시돈과 띠로, 그리고 사렙다로 피신

하였던 엘리아가 그곳에서 한 과부의 아들을 살려주고 그 가정에 하느님의 축복이 내렸다는
이야기를 아는 정도이다.

그리고보니 그들은 3000여 년 전부터 바알 신앙으로 이스라엘의 유일신 야훼에 대한 신앙을

흔들고 괴롭혔었지. 솔로몬의 영광을 되찾으려하던 아합 왕이 이제벨을 왕비로 맞을 때,
이제벨이 품고 온 시돈의 바알 신상은 이스라엘을 이교의 우상숭배로 망치게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지금의 레바논은 어떤가.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 레바논의 '백향나무'(삼나무)를 구해다 썼다는 기록이 있지만

솔로몬의 혼을 빼았던, 레바논 산맥에 울창하던 그 나무들은 3000년 동안 베어내기만 했고
다시 심는 일을 하지 않아서 지금은 헐벗은 산일 뿐 레바논 산에서 백향목을 찾기는
어렵다고 한다.

레바논에 와서 '백향나무'가 어디 있는지 살펴보려던, 단순한 나의 호기심 저쪽에 가엾고도

불쌍한 레바논의 현실이 있었다.
1948년 이스라엘이 다시 일어서자, 아랍연합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시작하면서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집결지가 된 레바논이다. 인구가 400여 만 명이라지만 몇 년째 그 숫자에 변동이
없으니 정확한 인구는 알 수 없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아랍 22개 국가 중, 국민의 구성이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이 절반씩으로 되어 있는 
나라는 레바논 뿐이란다. 국민의 51%를 차지하고 있다는 레바논의 그리스도교는 '마론파'로
불리어지는 종파인데, 그 옛날 초대교회 이후 단성론과 양성론이 싸울 때 양성론을 주장하던
'마론'(2세기 후반의 인물)이 콘스탄티노플에서 시리아를 경유, 레바논 산맥을 넘어와 정착하여
세력을 확장한 그리스도교파라고 한다.

 
레바논의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은 1920년대 오스만 터키 제국의 해산 후, 프랑스의 위임 통치를
거쳐 정부를 수립할 때 5.5 : 4.5의 지분으로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공동 정권으로, 대통령은
마론파 그리스도교에서 선출되고, 수니파 회교도 중에서 총리, 그리고 시아파 회교도 중에서
국회의장이 선출된다고 한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세력이 끼어들어 정국은 늘 어지러움에 멀미를 앓고 있는 나라다.

각각 절반의 그리스도교인과 무슬림이 사는 나라 레바논, 아깝게 세상을 떠난 하리리는 국민의

기대와 존경을 한몸에 받으며 내전 15년의 상처를 다독이면서 나라를 바로 잡자고 앞장섰던
사람이다. 그의 죽음이 레바논의 앞날에 어떤 아픔을 또 가져오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들은 지금까지 치른 내전의 고통만으로도, 정신적으로, 문화적으로 극도로 피폐해졌고 그
찬란하던 문화유산은 간 곳 없이 사라져버렸다고하니, 민족간의 혹은 종교간의 분쟁은 진정
으로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터인데, 현재 지구촌의 상황은 종교인으로서 부끄러워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어쨋거나 베이루트 시민들이여, 슬픔 가득한 눈으로 낯선 이방인을 바라보는 그대들에게 우리는

너무 미안하구나! 끝없이 치밀어오르는 연민의 정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