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땅을 찾아서

부끄러운 역사를 슬퍼하며... (중동 아시아 여행기 3)

권연자 세실리아 2010. 5. 7. 14:27

 

 

엄청난 돌더미로 남아있는 '바알벡'의 유적지

 

 

십자군 시대 기사의 성채인 '크락데스 체발리에'

 

 

 

지중해안의 아름다운 도시 베이루트를 뒤로하고 시리아쪽을 향해 달리다보면, '베카 계곡'

(The bekaa Valley)으로 들어서게 된다. 골짜기라고 불리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산골짜기'를 생각

한다면, 얼토당토않은 골짜기임을 곧 알게 된다.
한쪽으로 레바논 산맥이 뻗어 있고, 다른 한쪽에 안티 레바논이라는 거대한 산맥 사이에 펼쳐진

평야가 바로 그 유명한 '베카 계곡'이다. 한눈에 보아도 비옥한 땅임을 알 수 있다.
농작물이 얼마나 풍작을 이루는지 로마인들의 지배를 받을 당시에는, 이곳에서 거두어들이는

밀이나 채소등으로 로마 시민을 다 먹여 살릴 수 있는 곡창지대여서, 로마인들의 '빵 공장'이라고

불리웠다한다.

레바논의 주요 관광 코스인 바알벡에 오른다.
베카 골짜기의 풍요를 보면서 짐작했던 바이지만, '바알'신을 섬기던 신전터의 어마어마한 규모를

보니 바알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었는지를 알겠는데, 그곳이 '바알 신앙'의 중심지였다.
양떼를 몰며 유일 신 야훼를 섬기던 이스라엘의 신앙을 흔들어대던 '바알'!
이스라엘의 변심을 노여워 진노하시던 야훼 하느님의 사랑이 애달프다.

그러나, 풍요와 다산의 신 바알의 터전은 이제 엄청난 돌무더기로 남아있을 뿐이다.
바알의 신전이 그 위용을 자랑하던 베알벡은, 그 전성기였던 바빌론의 지배 이후, 헬라 지배 시대에
제우스 신전으로 되었었고, 로마가 지배하던 시대에는 '쥬피터 신전'으로 변했었다한다.
세월의 힘은 강한 것,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
높다란 계단을 숨가쁘게 올라 제사를 지내던 제단과 희미하게 남아있는 바알의 흔적들, 제우스,
쥬피터 신들의 흔적들을 참을성있게 살펴본다.

레바논과 시리아의 국경이다.

레바논의 전 총리 하리리의 암살 배후로 의심받고 있는 시리아의 국경은 그 어떤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잠시 입국 절차를 밟고 있는 사이, 국경에 별다른 조짐이라도 보이지 않는지 여기저기를 살펴

본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함부로 널린 쓰레기들과 쓰레기처럼 그것들 사이에 죽은듯이 늘어져 자고

있는 개 두 마리가 보일 뿐이다.
시리아는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이지만, 회교 국가라는 특징을 가진 나라이다.

북한과는 친하게 지내고 있지만, 우리 나라와는 정식 국교 관계가 성립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경제 교류는 이루어지고 있어서 우리나라의 대 기업(삼성, 현대, LG 등)이 이곳에 진출해 있다고 하니

그나마 가슴 뿌듯한 일이다.

뻐스가 굽이굽이 높은 산을 오른다. 십자군 시대, 기사의 성채인 '크락데스 체발리에'를 보기 위해서다.
높은 산 위 전망 좋은 곳에 그림처럼 자리 잡고 있는 성채ㅡ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성의 안과 밖을 돌아다니며, 느낌은 참으로 복잡하다.
AD 1096년에서 1291년까지 200여 년간, 커다란 충격과 부끄러운 기록을 남긴 십자군 전쟁의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나의 이러한 기분을 이해할 줄 믿는다.
십자군과 이슬람의 싸움은 양측 모두가 '성전'(聖戰)이라고 우긴다.
아브라함을 아버지라 부르는 그의 자손들이여 제발!!
이 '크락데스 체발리에'를 보면서 파도처럼 밀려왔던 느낌들을 모조리 쓰고 싶은가 하면, 다른 한편으론
아무 것도 쓰고싶지 않다.

어쨋거나, 그 성 안에서도 세월이 바뀌어 놓은 것을 또 보았다.
컴컴한 성 안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는데, 그 옛날의 살기들은 느낄 수 없었고 적막감만 감돌고 있었다.
조그만 예배소를 만났다. 유럽의 오래된 성당에서 흔히 보았던 설교대까지 갖추어져 있다.
전쟁 틈틈이 이곳에서 예배를 드렸다니, 기도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가?!

전세가 바뀌어 이슬람 지배하에 들어가자, 그들 역시 이곳에 모여 기도를 했단다. 벽을 파서 이슬람 식의

기도 장소를 만든 곳이 보인다.
우리 일행을 따라 성안을 함께 다니던 시리아 소년이, 둥글게 파인 벽에 붙어서서 갑자기 목청을 돋우어
슬픈 가락으로 기도인지 무엇인지를(아마도 코란이겠지...) 외우기 시작한다.

성 안에 가득히 울려 퍼지는 그 울림이 가슴속으로 슬프게 스며든다.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는 서글픈 그

가락에 나는 왜 이렇게 슬퍼하는걸까! 도대체 그들의 신 알라에게 무슨 슬픈 사연을 고하기에 이토록 가슴이

아파질까? 무슨 이유일까, 눈물이 핑 돈다.

성을 나오며 소년이 내 옆에 왔을 때, 나는 엄지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그러자 소년은 내 귀에 소근거린다.
"원 딸라, 원 딸라!" 다시 한 번 가슴이 아프다.
내가 받은 감동과 슬픔, 그런 것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반응이었지만, 네가 나에게 준 그 보석같은 느낌이
어찌 '원 딸라'짜리 밖에 안될까보냐! 선뜻 소년의 손에 원 딸라를 쥐어주니 입이 귀에 닿을 듯 환하게 웃는다.
가난이 유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