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땅을 찾아서

선택받지 못한 자들의 땅, 요르단에서.. (중동 아시아 여행기 6)

권연자 세실리아 2010. 5. 13. 11:50

제라쉬의 유적1 <아르테미스 신전의 코린트식 석주>







 제라쉬의 유적2 <다미안 성당터의 바닥 모자이크









일찍부터 관광을 자원화 했던 요르단으로의 입국 절차는 간단했다.
국경 도시 '라못 길르앗'을 통과하자 험한 산악지대가 이어지고 있다. 요르단의 북쪽과 동쪽은 거의
사막에 가까운 고지대로 이루어져 있는데, 국토의 5분의 4가 사막과 불모의 산인 나라이다.

 수도 '암만'을 향해 구불구불 산길을 달리는데, 이곳이 바로 구약성경에도 나오는 '길르앗' 산간지대이다.
옛날에는 상수리나무가 울창했던 곳이었지만, 현재는 소나무와 향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고 그나마 예전

에 비하면 3분의 1밖에 남아있지 않은 형편이란다.
 이 길르앗 산간지대는 옛날 아모리족이 살던 지역이었다고 하는데, 산길을 구불구불 내려가다 가이드가,

옆의 골짜기에 '야뽁' 강이 흐르고 있다고 설명한다. 깜짝 반가워, 야곱이 천사와 밤새도록 싸워 환도 뼈를
다치면서까지 주님의 축복을 받아내고야 말았다는 기록을 알고 있기에, 그 이름도 반가운 '야뽁 강!' 마음
속으로 "어디어디?" 하면서 창 밖을 내다보며 강을 찾는다. 그러나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강 비슷한 것도
에 띄지 않는다.
"강이 어디 있어요?" 하고 물으니 차가 지나가는 길 옆 계곡에 졸졸 흐르는 물이 '야뽁' 강이란다!
시원한 물이 '철~철~'은 아니더라도 작은 시냇물 정도는 되겠지 했던 상상 속의 야뽁 강이 너무 허망하다.
그래도 이 물줄기가 요르단 제1의 물의 근원이라니, 워낙 물이 귀한 나라임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가 강의 발원지인지도 모를 일, 그래서 강의 모습이 저렇겠지, 이해하면서 평지로 내려가면 좀
더 강다운 야뽁 강을 보고 싶었다.
 요르단에서는 물이 워낙 귀하기 때문에 겨울 우기에 빗물을 받아 저장해 놓았다가 쓴다고 한다. 집집마다 
저장 탱크를 마련하고, 물 아껴쓰는 일이 습관화 되었다는 요르단의 현실이다.

 요르단은 지중해의 동남쪽, 아라비아 반도의 북서쪽에 위치한 조그만 나라이다(한반도의 2분의 1정도).
동쪽으로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 유역의 인류 문명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바빌론, 이라크)와 인접하여
있고, 서쪽으로는 고대 인류 문명이 번창했던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를 접하고 있기에 대륙의 주요 교통로를
영토 안에 두고 있는 나라이다.
 특히 세계 3대 유일신 종교인 유다교, 이슬람, 그리스도교가 비교적 평화롭게 지내고 있는 편이어서, 외부

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살벌하지 않고 평화롭다. 주요 종족은 아랍족의 베드윈과 팔레스타인 족이다.
언어는 아랍어(Arabic)와 영어를 주로 사용한다.

 야뽁 강을 따라 계곡을 내려가다보면 '제라시'의 유적지가 나타난다.

그 옛날 아모리 족이 살던 곳이었으나 모세에 의해 정복되어, 므낫세의 장남 '마길'에게 주었던 길르앗
땅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른 후 BC 200년경 알렉산더 대왕이 기초를 세웠던 이곳 '제라시'는
헬라 시대, 마카베오 시대, 로마 시대, 그리스도교 시대, 페르시아 시대, 그리고 아랍 지배를 거쳐서
현재의 유적지로 남아 있으니 역사적인 설명을 더 많이 해야하는 현장이다.
 AD 1-2 세기가 최고의 전성기였고, AD 6세기 경에는 14개의 교회가 있을 정도로 그리스도교가

융성했던 이다. 그후 AD 635년에 이슬람에 속하게 되었고, 지진에 의해 AD 726년에 폐허가 된 곳이다.
결국 로마제국의 멸망과 지진으로 인해 도시는 폐허가 되었지만, 최근에 발굴 작업에 의해 거의 원형이
복구되어 로마시대의 도시 흔적을 완벽하게 갖춘 유적으로서 유명해지고 있는 곳이다.
 마음 속으로 그 시대를 부르며, 느끼며, 도시 경내를 거닐어 본다.

비잔틴 시대의 교회 터를 비롯해 화려한 아르테미스 신전의 코린트식 석주를 올려다보니 황홀하다.
특히 다미안 성당 터의 바닥 모자이크는 선명한 색으로 아름답게 보존되어 있어서, 폐허가 된채 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다는 사실이 가슴 저리다.

 아득한 옛날 영화롭던 시절의 흔적을 따라 여기저기 거닐다가,
아! 놀랍게도 폐허 속에서 아름다운 야생 아네모네 꽃을 발견했다. 아무도 보아주고 가꾸는 이 없어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해마다 홀로 피고지고 했을 아름다운 아네모네! 너무 반갑고 사랑스러워 가슴이
찡해오는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다.
어느새 일행들이 멀리로 가버린 뒤까지 나는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폐허 속에 여기저기 피어있는 꽃들을
찾아 만나는 기쁨으로 한참이나 행복했다.

 평화스러움이 안개처럼 수도 '암만'에 내려앉은 아침, 마지막 날 다시 이곳에 올 예정이기에 일찍 서둘러
사해를 향해 떠났다.

멀리 예루살렘과 올리브 산이 보인다는 고지를 굽이돌아 모압 평지로 내려왔다.
이스라엘 쪽을 바라보니 무채색의 고지대로 이루어진 광야이다. 유일하게 푸른 곳이 보였는데 '예리고'였다.
'예리고'는 BC 7800년 경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던 곳이라니 그 기나긴 역사가 아득하고도 모질게

느껴진다.

 사해에서 수영하는 시간을 준다. 책에서 본대로, 이야기 듣던대로 바다에 누워 책을 읽는 체험을 하라는

시간이겠지만, 모두들 수영복으로 갈아 입고 바다에서 신기한 체험에 열중하는 시간에, 나는 물가에서
돌 하나 집어들고 그들과 멀리 떨어져 앉아 상념에 잠긴다.
 1990년 여름 이스라엘을 여행할 때, 이스라엘 쪽 사해에 와서 이편 요르단을 바라보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의 요르단은 자유롭게 올 수 없는 나라였고, 그저 사해를 가운데 두고 바라다 볼 뿐인 곳이었다.
그렇게 바라보던 느낌은 오늘의 그것과 너무 다른 것이었다.
 이곳의 역사를 잘 몰랐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때의 내 수준은 사해 건너편의 나라들을 마치 세계의
평화를 깨는 일을 일삼는 문제아들의 나라, 친구가 되기란 어려운 나라라는 느낌으로 두렵게(?)
바라보았던것 같다.
얼마나 무식했던가, 지금 나는 이들 요르단 지경에 사는 이들에게 미안하고 측은한 마음과 더불어

사과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하다.
  요르단은 우리 그리스도교인들이 깊이 생각해야 할 많은 사연들이 있는 곳임을 깨닫게 되었다. 감사하다.
'히브리'라면 떠도는 자, 강을 건너온 자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하비루'는 누구인가? 바로 강을 건너는데

실패한 사람들이라해야 할가, 혹은 '선택 받지 못한 자들' '버림받은 자식들'이 아닐까.
그들의 이름을 특별히 거론하지 않아도 우리는 알 수 있을 것이다. 구태어 말하기로 하자면,
아브라함에게 버림받은 이스마엘, 야곱에게 콩죽 한 사발에 장자권을 팔아버리고 아버지의 축복을
받아내지 못한 에사오, 그리고 모압과 암몬 등이다.
 이곳의 수도 암만이 암몬의 변형이라 할 수 있는데, 모압과 암몬 이들이 누구인가를 생각하면 그들의

슬픈 족보가 안타깝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그의 두 딸들과의 사이에서 낳아놓은 자식들이 모압과 암몬이 아니던가.

이들이 롯의 자식인가 손자인가를 따지기엔 마음이 너무나 무겁다. 어쨋거나 아버지와 딸들 사이에서
태어난 그들이 팔레스타인의 일원으로 오늘의 요르단에 모여 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처지가 참으로 불쌍하고 한스럽기조차 하다. 선택에서 제외된 자들의 후예들이 사는 이곳
요르단에서 그들이 한없이 애달프다.






 
제라쉬의 유적들


























 
 




사해 건너편 이스라엘 광야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