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땅을 찾아서

와디럼! 그 붉은 사막에서 불러보던 이름은.... (중동 아시아 여행기 8)

권연자 세실리아 2018. 4. 7. 11:18

 

 

          붉은 사막 와디럼                                                 

 

 

            저런 고물차를 타고 사막을 내달렸다

 

 

 

 

 '와디럼'.., 그 검붉은 사막 와디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막 '와디럼'이 거기 있었다. 나는 사막이 그토록 아름다운 곳이라는

사실알았다! 죽음의 공포가 항상 도사리고 있는 곳이 '사막'이라는 기존 의 관념이

한 순간에 변하게 된 것이다.
 아카바에서 동쪽으로 아라비아를 향해 달려가면, 아라비아 사막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짚차를

타고 붉고 아름다운 사막 '와디럼'으로 들어갔다.
짚차를 타고 출발할 때 차가 보기 드문 고물이었기에, '이 고물 차를 타고 사막에 나갔다가

차가 고장나면 오도가도 못하고 어떡하지?' 사막 사파리도 좋지만 약간 걱정이 됬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베드족 기사는, 전선(電線) 두개를 부딫쳐서 스파크를 일으켜 우렁찬 소리를

내며 시동을 걸더니, 우려와는 달리 사막질풍(?)처럼 달린다.
사막 한 가운데 차를 세우고 내리니, 동서남북 어디를 보아도 숨이 막히는 절경이었다.

래와, 오랜 세월 모래바람에 깎인 바위들은, 저마다 기묘한 형상으로  보는이의 넋을 빼고

있었다. 이런 절경을 놓칠리가 있나,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이 사막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이런 사막에도 사람이 살아있었다는 흔적이 있었다. 나바티안 족의 공동묘지가 옹기종한 곳에

었다. 그저 작은 돌 하나씩을 놓아 표시해 놓았을 뿐인 소박한 묘지였지만, 이미 페트라에서

문명의 유적을 보았고 어느정도 나바티안 족에대한 예비지식이 있었기에, 마치 잘 알고

지내던 사람들무덤을 찾아온 것처럼 지의 주인들에게 마음 속으로 인사를 건넨다.

 이상한 취미인가, 여행을 하다가 공동묘지를 만나면 반드시 묘지들 가운데로 들어가곤 한다.

하기야, 유럽쪽에서는 작은 옛 도시일수록 시내 한가운데 공동묘지가 있어 살아는 사람들과 함께

있었고, 더 작중세의 도시는 성 밖에 묘지가 있는데, 얼마나 름답게 가꾸고 있는지 공원과

다름없었다. 봉분이 아닌 분으로, 죽은 사람의 사진박힌 비석과 아름다운 조각들로 꾸미고,

앞에는 여러가지 아름다운 꽃들을 어놓고 마다 물을 주려고 그 가족이나 후손들이 무덤을

찾아온다. 곳곳에 수도시설과 물주는 롱까지 갖추어 놓았고, 살아있는 가족이나 후손들은 공원에

오듯 날마다 찾아와 꽃물을 주면서 먼저 세상 떠난 이들과 끊임없는 교류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 부부만 자유롭게 다니는 여행을 할 때면, 시간도 넉넉하니 공동묘지 안에 있는 벤취에 앉아

기도 하고, 직 물주지 못한 묘지가 보이면 수도가에서 물을 길어다 꽃에 흠뻑 물을 주노라면

마음이 한없이 화로워졌었다.

'말이 없는 죽은 이들' 가운데 앉아서 아늑한 편안함을 즐기는것이다.

 그 아름다운 기억들 중에 유난히 잊히지 않는 일이 있다.

알프스의 한 연봉인 '마터호른'이라는 산밑'쩨마트'라는 마을이 있다. 정말 작고 그림같은

마을 끝에 공동묘지가 있기에, 또 그곳에 들어가 죽은 이들의 비석에 적힌 이름도 읽어보고

언제 죽었는지, 또 얼굴은 어떻게 생겼었나 살피며 돌아다녔는데, 곳에는 '마터호른'산에 오르다

실패하고 죽은이들의 무덤들도  눈에 띄었다. 그들이 잡고 오르던 쟈일이니 등산 도구들을 비석 옆에

조각으로 남겨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죽은 이들의 사연을 알아보고 다니던 중에, 묘지 옆에 있는 작은 성당에서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흘나오기에 누구에겐가 이끌려 들어가듯 성당으로 들어갔다. 오르간 소리나는 곳

으니 이층 성가대 석이었다. 이런저런 생각할 사이 없이 이층으로 올라갔다.

순간 오르간을 연주하던 새파란(!) 젊은이가 깜짝 놀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선다. 웬 동양여자가

자기 타났으니 놀라기도 했겠지. 아름다운 선율만 따라 무심히 올라갔던 나 역시 깜짝 놀라

서로 바라보다가, 무슨 말이든 먼저 해야할 사람은 나라는 생각이 들어 다짜고짜 '고맙다, 감사하다'를

연발하며, 연주가 너무 좋았다는 표현을 어떻게든 전달하려고 애를 썼던 기억이 갑자기 떠오른다.

 사막에서 난데없이 묘지를 만나니, 옛 기억이 떠올라 잠시 전혀 다른 환경의 묘지를 생각했다.

그러나 이곳은 꽃은커녕 마른 풀 한 포기도 없는 사막 한 가운데의 묘지인데, 그래도 말없이 누워있는

이 미이라가 됬을지도 모르겠구나 생각하면서, 마치 친구의 무덤에라도 찾아온 것처럼 편안한

음으로 펴본다. 어느 바위에는 그들이 새겨놓은 암각화도 있었다.

아득한 옛날부터 인류는 저런 식으로 자기들살았던 흔적남기곤 했었지...

 겨울동안의 우기를 거쳐서인지 파란 잎새를 달고 있는 나무 하나를 발견했다.

이제 곧 라버릴테지만, 이사막에서 잎을 피우는 최고의 순간을 맞고있는 이름모를 나무에

축하를 보냈다. 바위 옆앙상하게 마른 나무는 언제쯤 푸르른 절정을 맞았을까?  

그리고 마른 풀 포기들... 이들에게 어느다정한 눈길 한 번 보내준 일이라도 있었을까?!

아무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말없이 세상 한켠을 지키고 있었던 이름 모를 그들에게 너무 미안하구나!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마치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듯한 사막 한 가운데 서서,

속으로 불러보는 이름이 있다. 그 이름은 '이스마엘'!
이번 여행한 나라들이 대부분 이슬람 국가였고, 현재 여행 중인 요르단 역시 회교 90%(수니파),

그리스도10%인 나라이다.

그래서라기 보다는 어느 순간, 창세기 21장의 건들이 슬프고 안타깝게 다가왔다.

나의,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과 그 어미를 막에 내다버

을 쉽게 이해하기 싫고, 이 사막에 오니 그 모자의 신세가 한스럽고 슬퍼서 눈물을 머금게 된다.
참 이상한 일이다. 지금까지 창세기를 읽으면서 21장에서, 아브라함에게 버림받는 하과 이스마엘

여러번 보았지만 슬프다는 느낌만 들었을 뿐, 그런 말도 안되는 사연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 나는 이번 여행에서 '이스마엘'을 만나게 되었고, 그가 아브라함 가문에서 과소평가 할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브라함은 자식 없음을 한탄하며, 가문의 대를 이을 사람이라고는 다마스커스 사람 엘에젤 밖에

없다고 하느님께 하소연했던 사람이 아니던가.

그가 86세 늙은 나이에 장남 스마엘을 얻고 얼마나 기쁘고 행복던가. 그 행복과 기쁨이 100살에

얻은 아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두 여인에게서 각각 아들한 명씩 얻게 되었지만, 그는 정말 한 명의 아들을 버렸어야 했는지 안타깝다.
브엘세바 사막에 내다버린 하갈과 이스마엘, 창세기 21장에서 그들은 하느님의 도움을 는다.

그리고 큰 족을 이루리라고... 하셨다.
이슬람 측의 주장에 이런 내용이 있다고 한다. 사라는 하느님과 한 번도 만난 일이 없으하갈은

번씩하느님의 인도를 받았다고(16장, 21장)ㅡ.
창세기가 이사악의 후손 히브리인들의 창작품이라고 하는 것을 기억한다면, 창세기에하갈과

스마엘이야기 비중이 크다고 하는 점이 이래저래 맘에 걸린다.

 결국은 아브라함 가문에서 쫒겨난 이스마엘의 '이슬람', 그리고 이사악의 후손을 통해 아가

나온다고 으나 세상에 오신 메시아를 놓쳐버린 유다교,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으로 일컬어지는 그리스교,....

현재 지구상의 인구 60억명 중에 30억이 넘는 사람들슬람, 유다교, 그리스도교를 믿고 있으며,

그들이 모두 셈족 계열 아브라함의 후손아니던가.

그리고 이 3대 종교는 지금까지도 계속 '성전'을 부르짖으며 싸우고 있는 현실이 기막뿐이다.

어쩌다 이지경이 되었는가?

 그 시발점을 창세기 21장에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창세기 21장에족,

두 세계뉘고 말았다는 말이다. 그 원인 제공자가 '아브라함'과 '사라'라고 보는 견해이다.
아브라함의 가정사가 확대되어 현대의 세계는 조용할 날이 없다고, 나머지 절반의 세계이 비난

한다말이 없다.

 황혼이 내리기 시작하는 사막 한 가운데 서서, 나는 어디선가 이스마엘의 큰 울음 소리들릴 듯 하

방을 살피며 귀기울인다. 그러나 적막감만 더해갈 뿐...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막을 둘러보다가 문득, 나는 이 막막하고 아름다운 사막에서,

시인의 말처럼 차라리 길을 잃고 헤매고싶었다.

 마음은 붉은 사막 '와디럼'에 남겨두고, 요르단의 수도 암만을 향해 고속도로를 달린다.
지평선으로 막 넘어간 태양이 싯누런 광야와 하늘을 붉게 물들여 놓은 모습을 차창으로 라보면서,

할 수 없는 서글픔이 치밀어 올라 자꾸만 눈이 젖는다.
하늘에 거의 여문 달이 둥글게 떴다. 내일쯤이 정월 대보름이던가....

 

 

(성서의 땅을 찾아서....  끝)

 

 

 

와디럼의 신비한 풍경들.....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멀리 느보산이 보인다.

          구약성서에 따르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한지

          40 년 만에 이곳에 도착하여 가나안 땅을 바라본 곳이며,

          이곳에서 120세에 죽었다고 한다. (민수 27,12-14. 신명 32,48-52. 34,1-8)

 

          

  

십여년 전에 올렸던 여행기인데,

사진을 두 장씩만 올린것이 섭섭해서

수정해서 다시 올렸더니 오늘 날자로 올라가버렸다.

그러나 여행하고, 기행문을 기록한 시점은 2005~2006년 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