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땅을 찾아서

'페트라'에서 '아카바'만 까지- (중동 아시아 여행기 7)

권연자 세실리아 2010. 5. 16. 20:53

 

 

페트라의 유적 1

 

 

페트라의 유적 2

 

 

 

 '에돔'과 '모압'의 접경지역에 '페트라'의 유적이 있다. 바위라는 뜻의 이름으로, BC 1400-1200년

기간 중에는 '쉘라'로 알려졌던 곳이다.

그 옛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던 때, '에사오'의 후손인 에돔 족이 이곳에

살고 있었는데, 그때 '모세' 일행은 이곳을 통과하여 가려고 했으나, 에돔 왕의 통행 허가를 받지 못하여

멀리로 우회하여 북쪽 '느보'산으로 갔다고 한다.
 

 에돔 족은 이스라엘에게 길을 내주지 않았다. 그들의 조상 '에사오'와 '야곱'은 친형제, 그것도 쌍둥이

형제였으니 그들은 더 이상 가까울 수 없는 친척간이었지만, 에돔 족은 이스라엘에게 맺힌 한이 있었음

이 분명하다.

 성경에서 전해주는 대로 이해하자면, 야곱의 속임수로 아버지의 축복을 놓치고 선택에서

밀려나게 된 에사오의 후손들의 한과 비애가 느껴진다.

이처럼 출애급과 관련된 역사적 사연이 있는 곳이기에, 이 근처에는 '모세'가 지나갔다고하여

'무사와디'(모세의 계곡)라고 불리는 곳이 있고, '모세의 샘'이라고 전해지는 우물도 여러 곳에 있어

순례객들의 걸음을 멈추게하는 곳이기도 하다.

 '페트라'로 가는 도중에, "저기가 '아론'의 무덤이 있는 '호르' 산"이라고 가이드가 지목하는 산을 올려

다보며 산길을 오르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더니, 어느 마을에서는 차에서 모두 내려 '모세의 샘'을 보

기도 했다. 제법 넉넉한 물이 계속 솟아 나오고 있어 그곳에 모여 사는 사람들에게 생명수가 되고 있었다.
신기하기도 하여 샘물을 한참이나 보고 있으려니, 광야에서 모세에게 물 투정을 하며 와글거리는 이스라

엘 백성의 모습이 선하게 떠오른다. 요르단 길을 가노라면, 성서 속의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보며 가는

듯한 착각이 들 때도 있다.

 페트라로 가기 위해서는, '사해 길'을 벗어나 '왕의 대로'를 이용하게 된다. 요르단에는 중심이 되는 세 도

로가 있는데,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요르단을 거쳐 시리아, 이라크에 이르는 중요한 산업 도로인 '사막 대로'

가 있고, 이 길 좌우로 '사해 길'과 '왕의 대로'가 있다.

 

 '사막 대로'는 '메카'로의 성지순례를 위해 이용하는 길이기도 하지만, 기름을 실어나르는 차들이 쉴 사이
없이 오가고 있었다.
 우리가 달리고 있는 '왕의 대로'는, 창세기 14장에 최초로 이 길을 이용한 기록이 나온다는데 왕들이
전쟁을 하기 위해 수없이 많이 출정했던 그 당시의 국제 도로였다고 한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은 '에돔' 족의 거절로 이 길을 지나가지 못했다지만, 우리는 아무도 막는 이 없으니

무 쉽게 잘도 가고 있는데, 나는 또 어쩌자고 그 옛날 노여움에 차서 길을 막던 '에사오'의 후손들이

그리워진다.

지금은 모두 어디서 숨죽어 살고 있기에 우리가 가는 길을 막지도 못하는지! 옛날처럼 기세등등하게

우리의 길도 한번쯤 막는 모습이 보고싶구나.

따지고 보면 우리도 '아브라함'과 '이사악', 그리고 에사오가 싫어하던 '야곱'을 신앙의 조상으로하고

있으니 우리가 가는 길을 막을 수도 있으련만, 이곳에서 자취 없이 사라진 그들이 애처롭고 그립다!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 틈새를 한참 걷다보면 갑자기 붉으스레한 아름답고 웅장한 건물의
정면과 마주치게 된다. 바위산을 파서 만든 이 건물의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보면, 신전이나 왕의 무덤이

아닐까 추측을 하게 된다.

레니즘 양식의 건물인데, 암벽을 파서 지은 건물이기에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고 남아있었던 것 같다.
 '페트라'에 살던 에돔 족들은 후에 나바테안 족에게 밀려나게 되었고, 이들에 의해 건설된 이 도시는

실크로드의 길목으로 수많은 대상들이 들렸다 가는 상업의 요충지로 한 때 크게 번창했었다고 한다.

 

 BC 1세기에서 AD 1-2세기까지 전성기였으나, AD 106년에 로마군에 의해 점령되었고, 그후 로마제국의

멸망과 수자원의 고갈로 도시는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로마 시대에 지어졌던 건물들은 8세기 지진으로 모두 파괴되어 없어지고, 현재 남아 있는 건물들은

'나바테아' 인들에 의해 건설되었던 것으로 암벽을 파서 만들었다는 특이함 때문에 고대의 유령 도시처럼

남아 있었다.

바위를 파서 만든 극장과 온수 목욕탕, 상수도 시설마저 잘 갖추어진 현대 도시 못지않은 시설을 갖춘 도시

였음을 알 수 있으나, 지금은 바위에 파인 주거용으로 쓰였던 구멍들이 적막감만 더해 주고 있다.

 폐허가 되어 멸망한 도시들이 대개 그렇듯이, 페트라도 기록만 남아있었을 뿐 여러 세기동안 그 위치도 잊

혀졌었다고 한다.

그러나 1812년 스위스의 한 젊은 탐험가에 의해 신비스럽고 웅장한 이 유적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최근에는 영화 '인디아나 죤스/최후의 성전'의 촬영 장소로 더 유명해졌다고 한다.

 

 그보다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롭고 중요한 정보가 있는 곳이다.

사도 바오로가 다마스커스에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후, 수년동안 잠적하여(갈라 1,17) 자기 수련의

과정을 가졌던 곳이 바로 이곳 '페트라'라고 알려지고 있다(당시 이곳은 아라비아로 불리기도 했다고....).
오랜동안 사람들의 관심에서 잊혀졌던 곳이지만, 구약과 신약성경의 역사가 있는 곳임을 알게 되니 

령 도시같은 이 폐허에 새로운 정이 느껴진다.

 

 이른 새벽, 호텔에서 내려다보는 페트라 주변의 모습은 첩첩 바위산으로 이루어진 절경임을 알 수 있었다.
단 몇일 만이라도 이 곳에서 '깊게' 머물고싶은 마음 간절하다.

 '아카바' 만으로 간다.
 호텔을 떠나 버스는 산길을 오르내리며 '왕의 대로'를 간다.

오른 쪽으로 내려다보이는 곳이 '아라바' 광야란다. 저 광야 어디쯤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에돔족을

피해가려고 먼길로 돌아가야 했을 때, 또 다시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며 대들었다.

그러자 야훼께서 불 뱀을 보내셔서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물려 죽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의 잘못을 빌고, 모세는 하느님의 지시대로 구리 뱀을 만들어 기둥에 매달아 놓고
뱀에게 물린 사람들이 쳐다보면 죽지 않도록 했다는 곳, '아라바' 광야가 낯설지 않게 내려다보인다.
산악지대를 벗어나 평지로 내려오니, 길 양쪽 광야에 멀리 혹은 가까이로 기기묘묘한 돌산들이 끊임없이 나

타나고 사라져간다. 요르단의 사막은 참으로 변화가 많은 모습을 보여주어 지루할 틈이 없다.

 아카바 만에서 배를 타고 홍해 바다로 나갔다. 왼쪽으로 사우디 아라비아, 오른쪽으로 시나이 반도를 바라

본다. 이 바다를 통해 저 멀리 보이는 이집트까지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잠시 마음이 설레인다.

'아카바'와 인접해 있는 이스라엘의 항구도 잡힐듯이 가깝다.
 여기가 요르단의 끝이니,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땅을 챙겨본다.

계속 분쟁 중에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물론이려니와, 이번에 여행한 레바논과, 북쪽 '홈스' 윗쪽의

시리아까지, 그리고 요르단, 또 요르단의 동쪽으로 이라크의 일부, 남쪽으로 네겝 사막까지도

모두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땅이었다 하지않는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이 땅들을 터전으로하여 한 나라를 세워야 함이 아브라함의 꿈이었다면,

현재 여러 갈래로 갈라져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끊임없는 불화속에 조용할 날이 없는 그의 후손들을

볼 때  '아브라함의 꿈'은 아직도 먼 후일을 기약해야 할까?!

 

 

 

 

 

 

 

 

 

 

 

 

 

 

 

 

 

 

 

 

 

 

 

 

 

 

 

 

 

 

 

 

 

 

 아카바만. 이스라엘의 항구가 멀리 보인다.

 

 

바다 속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