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느끼며...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권연자 세실리아 2022. 6. 10. 12:29
어제가 어머니 기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글 한 줄도 쓸 수 없이 머리가 아팠다.
1994년, 6월 9일
고단했던 한 생을 마감하고
천국으로 떠나신 후 28년 째 되는 날...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하고
모든 것이 통제되고 압박받던 시절
미국 유학은 일년에 한 두명 정도 갈 수 있는 드문 일이었다고 한다.
나의 어머니는 그런 시기에
이화전문을 졸업하시고 장학금을받아
배를 타고 머나먼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셨다.
 
졸업 논문도 A를 받아
공부를 더 하고 가라는 총장님의 권유를
뒤로하고 귀국한 엄마....
촉망받던 젊은 날의 찬란했던 시간들은,
천재라는 칭송을 받으며
동경제대 법문학부를 나오신 아버지와
결혼하신 순간부터 모든 것은 허물어졌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혐오하고
숨어 살기를 원하는 아버지를 세상으로 끌어내려고
이런저런 방법으로 애쓰셨던 엄마의 노력은 헛수고였다.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청렴결백한 그런 성격,
한학에도 능통하고
수려한 글을 물흐르듯 써내려가시던 아버지를
존경하기도 했다는 엄마...
결국 세상의 잣대로
무능하기 짝이없는 아버지와 가족을 먹여살리느라
평생을 직장생활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어머니였다.
엄마의 한 생은 고달팠다.
극단의 이상주의 남편을 만난 덕분에.
 
그러나 끝까지,
젊은 날엔 죽을 병에 걸린 남편을 좋다는 약 모두 구해 살려내고
무능의 끝판이던 남편을 보살피고 인내하며 사셨던 나의 어머니...
지금 세상이면 열 번도 이혼하고 남았을,
고달프고 슬픈 세월을 견디며 사신
어머니를 나는 무한 존경한다.
 
기일인 어제,
어머니를 그리며 몇 줄이라도 쓰고싶었는데...
너무 심한 두통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코로나 백신 후유증으로
진통제를 보약처럼 먹고 있는
매일이 두렵다.
 
 
 
 
 
미국 유학 졸업식 날,
총장님과 함께.....
 
 

 

 

 

 

 

'살며, 느끼며...' 카테고리의 다른 글

tistory.com으로 이사 온 blog..  (0) 2022.09.23
창문을 열고...  (0) 2022.07.02
물푸레 마을에 살며...  (0) 2022.05.12
가곡 '동무 생각'에 얽힌 첫사랑 이야기  (0) 2022.04.29
기차는 8시에 떠나네  (0) 2022.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