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 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 가는 길 21 / 천사들의 합창 소리가 들리던 사아군의 밤..

권연자 세실리아 2013. 3. 19. 15:51

 

    2012년 10월 25일 / 21 일째

      

       레디고스(Ledigos) → 사아군(Sahagun) / 17km

   (레디고스→떼라디요스 데 로스 뗌쁠라리오스→모라띠노스→산 니꼴라스 델 레알 까미노→사아군)

 

 

 

     밤과 낮의 기온 차가 심해져서 아침에 출발할 때는 금방 겨울이 올 것 같은 느낌이든다.

     지난 밤에 잠자리도 불편한데다가 너무 추워서 잠을 설치고 일어나 탈출하듯 숙소를 나섰다.

     길에 나서니 춥기는 하지만 차라리 마음은 편해지니, 어느새 이 길에 적응이 잘 되어가나보다.

     오늘 아침은 안개가 내려앉아서 뒤를 돌아보아도 아름다운 해돋이는 볼 수 없었지만,

     걸어온 길이 안개 속에 신비스럽게 꼬리를 감춘다.

 

     오늘도 걷기에 좋은 날씨다.

     날씨만 받쳐준다면, 아무리 메세타라 한들 걱정할게 무어랴!

     게다가 오늘은, 그동안 날마다 걸어온 길에 비하면 가장 적게 걷는 날이 될 것이다.

     특히 오늘은 빨렌시아 마지막 까미노를 걷게 되고,

     레온 지방으로 들어서게 되어 레온의 첫 까미노를 걷게되는 여정이다.    

 

 

 

 

       ▼ 그동안 수 많은 포도밭을 지나왔지만, 오늘 만나는 포도밭들은 조금 다른 모양새였다.

           키가 완전 작아서 얘들이 어린 나무인지, 아니면 원래 키가 작은 종류인지 가늠 할 수가 없다.

           어쨋거나 단풍이 너무 예쁘게 들어서, 메세타는 또 새로운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리 메세타가 지루하고 외로움에 시달려야하는 곳이라고들 하지만,

           나에게는 메세타만큼 날마다 다양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던 곳도 드물었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산 속의 숲길은 아니었으나,

           메세타의 끝없이 황량한 벌판에서 느꼈던 고요와 평화는

           그 어느 곳에서도 쉽사리 느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바람 소리만 들리는 이 황야의 적막이 싫어서였을까,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던 우리나라 젊은애들은 모두 버스를 타고

           큰 도시 레온으로 갔댄다. '메세타는 재미가 없다고...' 하면서....

           "재미가 없다"는 말을 듣는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그래...! 이런 길에서 재미를 찾을 수는 없겠지.

           그 어떤 문명의 이기도 찾아볼 수 없는 곳, 수다를 떨 친구도 없는 곳....

           노란 화살표를 따라 묵묵히 걸어야 하고, 그렇게 걷다가 끝내는 머리 속이 터엉 비어버려

           바보처럼 단순하게 되어버리는 이 곳!

           이런 곳에서 도시형 재미를 기대한다면 누구든 헛 수고를 할 뿐이다.

           그런 마음 자세로 이곳에 왔다면.... 버스타고 잘 갔다 얘들아!!

            

 

 

          ▼ 얼마나 아름다운가!

              단풍 든 포도나무 동산 너머, 지평선과 맞닿은 하늘이 안개 속에서 신비스러운 곳.....

              넋을 놓아버리고 싶은 풍경이었다.

 

 

 

 

 

 

 

        ▼ 밭에 내려앉아 무언가 쪼아먹고 있는 비둘기 떼...

 

 

       ▼ 산 니꼴라스 델 레알 까미노(San Nicolas de Real Camino)

         이 마을은 빨렌시아 지방의 마지막 마을로, 1183년에 만들어진 마을이라고 한다.

           중세에 이 마을에는 나병에 걸린 순례자들을 위한 병원이 있었다고 하는데,

           산띠아고까지 더 이상 갈 수 없는 중환자들이 이 마을에 머물었다고 한다.

 

 

 

       ▼ 산 니꼴라스 주교 성당(Iglesia de San Nicolas Obispo)

          무데하르 양식 벽돌로 지어진 성당으로 내부에는 고딕 양식의 아름다운 성모상과

            바로크 양식의 봉헌화가 있다고 한다.

            무데하르 양식이란, 스페인의 유일한 독자적 건축양식인데

            이슬람 사원의 미나레트(첨탑)의 장식과 구조를 그리스도교 성당의 기능에 맞추어 건축한

            12세기에서 15세기에 이르는 시기의 건축 양식을 말한다.

            즉 스페인에서 발달한 이슬람풍의 그리스도교 건축 양식을 말하는 것이다.

            에스파냐를 이슬람이 점령하여 꽃피운 문화에, 다시 그리스도교가 이슬람을 몰아내었으니

            한참 동안 이슬람 양식과 그리스도교 양식이 혼합되어진 것은,

            역사의 변천이 만들어낸 어쩔 수 없는 한 시기의 양식이라고 이해 된다.

 

            (말굽 모양의 아치와 둥근 천장이 특징인 무데하르 양식은 톨레도, 코르도바, 세비야, 빨렌시아

            등지의 성당과 궁전 건축물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 빨렌시아 지방의 마지막 표지석인 듯 하다.

            선명한 까미노 화살표로 이 지방을 떠나 레온 지방으로 들어가게 되는 순례자들에게

            마지막 친절(?)을 베플고 있는 듯.....^^

 

 

 

 

       ▼ 나도 보라빛 돌멩이 하나를 주어 표지석 위에 올려놓았다.

           지금까지 잘 걸어왔듯이 남은 여정도 주님의 보살핌 속에 무사히 걸어가기를 기도하며....

 

 

 

     ▼ 저 앞에 보이는 두 사람이 카나다 퀘벡에서 온 부부이다.

         지난 밤 같은 집에서 잔 것 같은데 우리가 2인실을 쓰는 바람에 알베르게에서 보지는 못했는데,

         걷고 있노라니 뒤에서 갑자기 나타나기에 서로 "올라!" 인사를 하고....

         걸음 속도에 따라 멀어져 간다.

         저 부부의 걷는 속도는 내외가 비슷해서 언제나 나란히 걸어가곤 했었다. 우리와는 딴 판...

         그래도 이상한 것은 도착해보면 항상 우리가 먼저 도착했다는 것!

         어디서 한참씩 쉬다 오는 건지?

         정말 미스테리한 일이지만...., 우리를 앞질러 갔음에도 왜 늦게 도착하지?

         

 

 

       ▼ 빨렌시아레온 지방을 거쳐서 흐르는 발데라두에이 강 지나는 다리를 건너게 되면

          사아군 까지 약 3km가 남은 지점이라는 곳에 조그만 성당이 보인다.

 

 

 

     ▼ 노란 화살표, 까미노를 가리키는 표시대로 돌다리를 건넌다. 

 

 

 

       ▼ 뿌엔떼 성모 성당(Ermita de La Virgen del Puente)

           13세기 무데하르 양식의 성당이다.

 

 

 

       ▼ 뿌엔떼 성모 성당 안에는 성모상이 있는데 여러 번에 걸쳐 기적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 이야기들 중 하나는, 사아군에서 악당으로 악명 높은 히네스라는 사람이 죄를 지어

          사형을 선고 받았다고 하는데, 그는 감옥에서 깊이 회개하고 성모님께 도움을 청하자

          기적이 일어나 살아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후 히네스는 산띠아고까지 순례를 한 뒤, 사아군에 남아서 순례자들을 도와주며 

          살았다는 이야기....^^

  

 

 

        ▼ 어린이 놀이터처럼 생긴 순례자 쉼터.

 

 

        ▼ 오늘의 목적지 사아군에 도착. 짧은 거리여서 12시 30분 쯤 도착했다.

            알베르게 앞에 철로 만든 순례자 조형물이 이채롭다.

 

 

 

       ▼ 이 건물은 13세기에 지어진 건물 위에,

          16~17세기에 지어진 삼위일체 성당(Iglesia de la Trinidad)인데

           현재는 건물 안을 개조하여 순례자 숙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 알베르게의 천정 부분은 마치 전쟁을 치르고 임시로 복구한 듯 을시년스러웠지만,

          양 쪽으로 나뉘어있는 칸 마다 이층 침대 4개씩 배열해 놓은 잠 자리는 훌륭했다.

          매트리스도 탄탄했고 베갯잇을 각자 나누어주어 청결감을 더해주는 알베르게였다.

          그런데 저 자주색 휘장 뒤에서 한 밤중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이때는 상상도 못했기에

          제일 안 쪽인 휘장 옆에 자리를 잡았다가 어쩐지 그 쪽에서 바람이 스며들어

          밤에 추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한 칸 앞으로 자리를 잡았다.

          

 

 

         ▼ 일층은 접수를 받고있는 홀이었고, 이 계단으로 올라오면 부엌, 그리고 침실이 같은 공간에

             이어져있는 이상하고도 단순한 구조였다.

 

 

 

 

        ▼ 일찍 도착해서 레스또랑을 찾아나가 점심을 먹고 들어오니,

            그 사이 순례자들이 많이 도착한 듯 침대에 올려놓은 침낭들이 많이 보인다.

            순례자들이 알베르게에 도착하여 수속을 하면, 접수대에서 침대 번호를 지정해 주는 곳도 있고

            먼저 도착한 순서대로 마음에 드는 곳을 차지하는 알베르게도 있다.

            침대가 정해지면, 침낭을 꺼내어 침대에 펴 놓고 나가는데 그 침대는 임자가 있다는 표시로

            새로 도착한 사람들은 빈 침대를 찾게 된다.

           

            우리가 나간 사이에 퀘벡 부부가 우리 앞 자리에 짐을 풀어놓은 것이 보인다.

            우리를 앞질러갔던 퀘벡 부부를 사아군이 코 앞인 지점에서 다시 만났는데, 

            배낭을 내려놓으며 "브레이크 타임!" 하고 외치기에

            우리는 그냥 간다면서 지나쳐왔는데...., 도착한 모양이다.

            용케 우리 옆을 잘 찾아왔네...^^

            앞에 보이는 자주색 침낭이 그 남편, 아래가 부인.....

            그 옆에 보이는 침낭은 우리나라 자매의.....ㅎ

 

             까리온에서 만나 오늘까지 사흘 째 같은 숙소에서 만나게 된 우리나라 자매...

             둘이 모두 직장에 휴직계를 내고 이 길을 걷고 있다고 했다.

             동생은 발 병이 단단히 나서 고생하는 중이었고, 언니가 엄마처럼 동생을 돌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언니가 고맙게도 자기가 저녁을 할테니 함께 먹자고 초대를 한다.

             열흘간 복용한 감기약 후유증으로 입맛이 돌아오질 않아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날 위해,

             누군가 비상시에 쓰라고 주었다는 라면 스프 두 개 중 하나 남았던 것을 끓였다고

             국처럼 밥을 말아 먹으라고 한다. 맛을 보니 정말 우리나라 맛이었다!

             우리나라에 있을 때 쳐다보지도 않던 라면 스프조차 여기선 귀하디귀한 것이구나!!   

  

 

 

       ▼ 누우면 올려다 보이던 저 창문....

           다음 날 새벽녘에 유난히 반짝이는 별 하나가 창을 통해 보이기에,

           날씨가 맑을 징조라며 좋아했었는데....

 

 

 

      ▼ 우리의 침대 위로 보이는 을시년스런 천정의 모습....

          필경 아름다웠을 저 기둥들의 머리부분과 거대한 위용을 자랑했을 지붕은 어찌된걸까?

          궁금증이 점점 더 피어오르지만,....

          아픈 역사가 서리서리 괴어있을 것만 같은,

          이름도 거창한 '삼위일체 성당'의 현재는 너무 초라해서 슬프기조차 하다!

         

 

      침대가 좋으니, 지난 밤에 설친 잠까지 푸욱 잘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일찍 잠 자리에 들었다.

      헌데 부엌이 같은 공간 안에 있더니, 늦게 무언가 만들어 먹으며 떠들어대는 젊은이들 때문에

      도저히 일찍 잠들기는 틀렸다고 속이 상하던 중....

     

      갑자기, 낮에 보았던 자주색 휘장 저 편에서 아름다운 합창의 화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건 뭐지? 순례자를 위한 서비스인가? 오만 생각이 지나가면서 한 순간에,

      시끄럽게 떠들던 젊은이들의 소리도 조용해지고,.... 모두들 숨죽이며 아름다운 합창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합창이 끝나자 모두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그러나 ㅎㅎㅎ, 그게 끝이 아니었으니..... 합창은 계속 이어지고 끝낼 생각이 없는 듯 했다.

      간간이 지휘자인 듯한 사람의 소리도 들리고...

      가만히 들어보니, 귀에 익숙한 라틴어가 들리는걸 보니 아마도 미사곡인 듯 했다.

      아~하! 성가대의 연습 시간인 모양이다......^^!

      

      휘장 하나 사이로 이쪽 편에서는 순례자들이 고단한 하루를 끝내고 잠을 청하는 중인데

      저 쪽에선 합창 연습이라니....!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상황이지만,

      이 또한 어쩌겠는가, 천사들의 음악 소리 쯤으로 생각하고 즐기는 수 밖에.

      그렇게 즐기다(?) 보니, 9시 30분에 시작된 연습이 11시에야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