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 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 가는 길 22 / 비에 흠뻑 젖으며 메세타를 걷던 날, 작은 친절도 눈물겹더라...

권연자 세실리아 2013. 3. 26. 12:27

 

    2012년 10월 26일 / 22 일째

      

          사아군(Sahagun) → 엘 부르고 라네로(El Burgo Ranero) / 19km

         (사아군→깔사다 델 꼬또→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까미노→엘 부르고 라네로)

 

 

 

        잠 자리에 누워 편안한 자세로, 한 시간 삼십분 동안이나 합창 연습하는 소리를 들었던 

        지난 밤.... 그런 상황이 별로 짜증이 난다거나 나쁘지만은 않았다.

        덕분에 떠들던 젊은이들이 조용해져서 다행이었고,

        합창 소리는 음악회에 온 셈 치면 되니까... 프로 합창단은 아니겠지만,

        소리가 들어줄만 하게 좋았기에 전혀 지루한 느낌은 없었고... 오히려 합창 음악을 즐겼다^^. 

 

        새벽녘에 창문으로 올려다 보니 샛별처럼 빛나는 별이 하나 보이기에 비는 오지 않는구나 하며

        안심했다. 밖은 캄캄한데 출발.

        그런데 어찌 이런 일이! 출발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아~.

        난감한 심정이었지만.... 비 때문에 하루를 포기할 수는 없지.

        길가에서 비옷을 꺼내 둘러쓰고 가로등 불 빛을 받아 번들거리는,

        빗물에 젖은 사아군의 까미노를 처량한 기분으로 걸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인가 강아지 한 마리가 계속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비를 홈빡 맞으며 얘는 왜 우리와 같이 걷고 있을까, 그것도 캄캄한 새벽길을...

         사아군을 다 빠져나올 때 까지, 앞섰다가도 뒤돌아 서서 우리를 기다려 주는 듯 서 있고

         우리가 앞서가면 또 다시 졸졸 따라오고...

         비 때문에 마음이 심난했는데 이상한 강아지로 인해 우리는 웃으며 걸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걱정이 되어 "얘, 그만 집에 가~!"

         몇 번이나 가라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이런, 우리 말을 못 알아듣는거구나!

         드디어 사아군과 작별하는 넓은 자동차 도로까지 왔을 때, 다시 한 번 돌아가라고 타이르고

         길을 건넜는데, 쌩쌩 지나가는 큰 차들이 무서웠던지 그 강아지는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아서

         마음을 놓았다.

         마치 우리를 배웅해준 것 같아 고맙기도 했고, 비를 맞으며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이상하게 마음이 서글퍼졌었다.

 

 

       

     ▼ 비를 맞으며 걷다보니 여기까지 사진이 한 장도 없다.

        그런데...... 부르고스에서 샀던 남편의 비옷이 목 부분에서부터 찢어지고 있었다ㅠ.ㅠ.

        목을 타고 비가 스며들어 이 상태로 오래 걷다간 옷이 많이 젖을거라 걱정하던 차에

        다행히 첫 마을에 도착, bar를 찾아 마을 안으로 들어가 기웃거리며 돌아다녔다.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나 '바르'가 어디 있냐고 물으니 이리저러 돌아서 bar 앞까지 데려다 주신다.

        고마운 할아버지...^^

         

        커피 마시면서, 이 마을에 판쵸를 파는 곳이 있냐고 저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가게가 없단다.

        어쩌면 좋을까!  찢어진 판쵸를 보여주며 난감해 하는 우리를 보더니

        기다리라며 어디로 나갔다가, 잠시 후에 까만 테이프를 들고 들어온다!

        탁자 위에 판쵸를 펴놓고 찢어진 부분을 정성스럽게 테이프로 붙여 주는 아주머니....흑

        생각지도 못했던 이런 작은 친절이 눈물겹도록 고마워지는 시골 마을 까미노 인심이다.

 

 

 

시골 bar의 아주머니가 그리도 정성스레 붙여준 까만 테이프는,

다시 비를 맞으며 걷기 시작하자 떨어져버렸다.

그러나 그 친절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오전 내내 우리를 괴롭히던 비는 오후가 되면서 다행히 그쳤다.

파란 하늘이 보이자 기분도 좋아지고....

오늘의 목적지까지 주욱, 자동차 도로 옆으로 난 이런 길로 걸었다.

멋도 없는 길....옛날 도로인지 지나다니는 차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 오늘의 목적지 엘 부르고 라네로(El Burgo Ranero)

           이 마을은 인구가 300명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다.

             그러나 순례자를 위한 각종 편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작고 소박한 마을이었다.

 

 

 

       ▼ 이 작은 마을에서 매년 성 베드로 축일 전날이 되면,

           마을의 젊은이들이 혼기가 찬 처녀들의 창문 아래 나뭇가지를 걸어 놓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마을의 젊은이들과 어린이들이 큰 모닥불을 피워 놓고 밤 늦도록 축제를 즐긴다고 한다.

           역시 스페인은 축제의 나라이며, 그 축제들은 모조리 그리스도교와 관계된 것들이었다.

 

 

 

       ▼ 산 뻬드로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 Pedro)

         매우 소박한 모습의 이 성당에 예전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름다운 성모상이 있었다는데,

          현재 그 성모상은 레온의 대성당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위의 사진이 성당의 앞 모습이고, 아래는 낡고 초라해진 뒷 모습이다)

 

 

 

       ▼ 이 조그맣고 아담한 건물이 우리가 머문 Municipal Domenico Laffi 알베르게이다.

           이곳은 기부제이기 때문에, 다음 날 떠날 때 준비되어 있는 기부함에 돈을 넣고 떠나면 된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무니씨팔(ㅎㅎ발음도 야릇하다) 알베르게가 5 유로 정도 받기 때문에

           그 정도 넣으면 좋고, 좀 넉넉하게 기부하고 나간다면 더 좋을 것이다^^.

 

 

       마을은 작지만 마트도 있고, 알베르게엔 부엌이 있어서 장을 보아다가 밥을 지어 먹었다.

       부지런한 한국인의 기질을 누가 말리랴!

       제일 먼저 밥을 해서, 제일 먼저 식사를 끝냈다아~ 만세!!

       밥을 지어 먹는 날엔 우연이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몇 명이라도 있으면 함께 먹었는데,

       오늘은 우리 둘만의 만찬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두어진 다음에야 식사를 하던데,... 우리가 너무 일찍 먹고 있으니

       호스피탈레로가 와서 하는 말이, 밤에 또 한 번 식사를 할거냐고 묻는다..ㅎㅎ

 

       작은 알베르게였지만 아담하고 깨끗해서 마음에 들었고,

       메세타를 걷는 동안 거의 같은 알베르게에 머물면서 마음으로 친해진

       퀘벡 부부도 이곳으로 들어와 옆 자리에서 자게되어 반가웠다.         

       

       혹시나 해서 와이파이가 되느냐고 물으니 집 안에서는 안되고,

       밖으로 나가 열 걸음 쯤 떨어진 길가에서 된다고 하기에

       길에 서서 덜덜 떨며 카톡으로 온 문자 확인하고 답글 쓰고....^^

       그렇게라도 되는게 얼마나 좋은가, 횡재라도 한 느낌으로 부지런히 쓰고 보내고 했다.

       내 옆에 와서 핸폰으로 문자를 보내고 있던 호스피탈레로가 자기 휴대폰을 보이며

       내 것과 똑 같다며 자랑이다.

       이 길을 걷는 동안 내가 휴대폰(갤럭시S 3)으로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을 때면

       가끔 외국인들이 다가와 반가워하며 자기도 똑 같은 것을 쓰고 있다며 휴대폰을 꺼내보인곤 했는데,

       그럴때 마다 우리나라의 제품들이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되어

       가슴이 뿌듯해지고 자랑스러웠다.  

       그뿐이 아니라, 우리나라 제품인 TV, 승용차도 심심찮게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었다.

       외국에 나오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지만.... 어쨋거나 극동에 있는 쪼그만 나라,

       그 나라가 눈물이 날 정도로 사랑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호스피탈레로가 나를 붙잡고 질문이 한창이다.

       내 핸폰 시작화면에 나열되어 있는 아이콘들을 어떻게 올려놨냐는거다.

       자기는 휑~하니 비어 있는데.... 방법을 알려달라고...

       그야 어렵지 않다고, 손가락으로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알려주니 너무 신기해하며,

       복습을 해야한다고 다시 모두 내려버리고 자기가 해보더니 완벽하게 습득이 된 모양...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갤럭시S 3'의 종주국(?)에서 온 나도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