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 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 가는 길 23 / 파란 하늘도 시원한 바람도... 끝없는 사랑의 확신으로 다가오던 날

권연자 세실리아 2013. 3. 31. 16:49

 

    2012년 10월 27일 / 23 일째

 

    엘 부르고 라네로(El Burgo Ranero) →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Mansilla de las Mulas) / 19.5km

       (엘 부르고 라네로→렐리에고스→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   

 

 

 

         작고 아담한 알베르게에서 조용하고 편안한 밤을 보냈다.

         오늘은 모처럼 날이 밝은 후에 떠나자고, 서두르지도 않고 천천히 준비를 마쳤다.

         어제 저녁에, "밤에 또 한 번 식사를 할거야?"라고 웃으면서 묻던 호스피탈레로가

         '부엔 까미노' 인사를 하며 포옹을 해준다.

         어쩐지 이 깨끗하고 작은 알베르게와 친절한 봉사자를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숙소를 나서니 지난 밤에 비가 와서 몹시 추웠다. 

         요즘들어 부쩍 아침 길에 나서면 겨울 추위를 느끼게 되니

         아직은 가을이 한창인데, 겨울이 금방 닥칠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추위를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관계로...ㅠ)

         그래도 한참 걷다보면 옷 속에서는 땀이 나곤 하니까 별 염려없이 걷는다.

  

 

      ▼ 오늘은 하루 종일 따분할 정도로 길이 단조로웠다.

          드넓은 평야에 지평선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나간 길...

          자동차 도로와 나란히 가면서 양 쪽의 풍경이 가끔 바뀔 뿐 지극히 인위적인 냄새가 나는

          길인데, 그래도 옛날부터 순례자들이 걸었던 정통 까미노라니 그냥 갈 수 밖에...

                   

          사실은 사아군을 떠날 때 길이 두 코스로 갈라졌었는데,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은

          정통 프란세스 길이지만 후대로 내려오며 옆으로 자동차 길이 생겨서 피곤한 길이 되어버렸다.

          그런 불편을 피해 한적한 우회 도로를 만들어놓아서, 더 고요하게 걷고자 하는 사람들은

          새롭게 만든 길로 간다고 한다.

          그러나 두 코스의 길은 오늘의 목적지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데,

          새로 만든 길은 거리도 훨씬 멀뿐 아니라 도중에 마을이 없으니 bar도 없고

          물도 구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 이유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멋없고 지루한 길이지만 정통 프란세스 길을 걷고 있다.

          

          우리는 이번의 순례를, 야고보 성인과 옛날 순례자들이 걸었던 길로만 걷자고 했기에

          길의 환경이 조금 나빠졌다해도 정통 프란세스 길로만 가고 있다. 

 

 

 

 

          ▼ 가끔 순례자들이 쉴 수 있도록 길가에 의자를 만들어 놓았다.

 

 

 

 

 

 

 

 

 

 

 

 

 

 

 

      ▼ 13km를 걸은 후 오늘의 여정 중 단 하나인 마을 렐리에고스(Reliegos)에 도착.

          점심 식사와 커피를 마시러 이 bar에 들어왔다.

          들어서자 처음엔 약간 주춤했었다.

          벽에 빈 틈 없이 낙서가 가득했고 심지어 대들보에도...^^

          낙서들 때문에 지저분해서 앉을 자리도 없을거라는 느낌이었는데, 

          다행히 지저분한건 낙서 가득한 벽일 뿐이고

          의자들은 깨끗했기에 앉을 자리를 찾아 앉았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낙서 중엔 한글도 꽤 있었다.

          어이그~! 얼마나들 외롭고 힘들었으면 여기다 푸념들을 풀어놓았을구....!

          낙서 몇 줄 써 놓고 외롭고 허기졌던 가슴이 위안을 받았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이랴!!

          저 털보 아저씨 마음씨가 한없이 넓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Mansilla de las Mulas)

       어제 오늘 걸어온 재미없고 단조로운 길에서 벗어날 수 있는,

        포도밭과 온갖 종류의 과수원이 넓게 펼쳐져 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는 곳이다.

        이 마을은 레온 왕국과 까스띠야 왕국 사이에 자리잡고 있었기에 중세 시대까지는

        방어 도시의 역할을 했던 곳이라 한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의 유산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하는데, 단지 돌로 포장된 거리와 

        중세풍의 아름다운 발코니가 있는 집들이 남아있어 당시의 풍요로움을 엿보게 해주는 곳이다. 

 

        피로에 지친 순례자 조각상이 우리를 반기고 있다^^.

 

 

 

 

 

       ▼ 산타 마리아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ta Maria)

         17세기 건물로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운 제단화가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에서는 7월 마지막 주에 중세식 축제가 벌어진다고 하는데,

          이 축제 기간 동안에는 마을 전체가 옛날로 돌아가 중세식 의상을 입고 전통 음식을 먹으며

          중세 기사들의 결투를 재현한다고 한다.

          그리고 8월의 마지막 주에는 산 페르민 축제 함께 스페인을 대표하는

          '토마토 축제'도 열린다고 한다.

          그러나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토마토 축제(La Tomatina)빨렌시아의 작은 마을인

          부뇰(Bunol)이 더 유명하지만, 만시야 델 라스 물라스 토마토 축제에서도

          토마토를 이용한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고 토마토 싸움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 오늘은 날씨도 좋았고, 그동안 걷는 속도도 빨라져서 일찍 알베르게에 도착했다.(5유로)

        방이 여러개여서 그중 이층 침대가 세개인 방으로 들어와 창가에 있는 침대에 짐을 풀었다.

 

 

 

 

        ▼ 창문으로 내려다보니 ㅁ자형 건물 가운데 있는 마당에 식탁들을 놓았고,

            건물 벽을 장식한 꽃 화분들이 아름다웠다. 벽을 화분으로 장식한 아이디어가 돋보였고

            피곤한 순례자의 눈을 즐겁게 했다. 

 

 

 

      ▼ 게다가, 와이파이까지 되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훌륭한 알베르게다......^^         

  

 

        ▼ 메세타를 걷는 동안 거의 같은 알베르게에서 머물었던 카나다 퀘벡 부부이다.

            나는 항상 침대 이층을 사용했는데, 이유인즉 침대에 앉아서 인터넷도 이용해야 하고

            일기도 써야하고 책도 봐야되고....

            도착하면 침대에 앉아 할 일이 많은데 아래층 침대를 사용하면 머리를 숙여야하는

            불편때문에, 위험하지만 이층 침대를 기어오르고 내리는 불편은 감수해야 했다.

            저집 남편도 항상 이층에서 잤는데.., 가끔 나보고 농담을 건넨다.

            "언제나 우리는 내가 윗층, 너희는 언제나 네가 윗층"이라며 웃곤 했었다.

           

            이 알베르게에서는 퀘벡 부부도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우리는 마트에서 생선을 사다가 매운탕을 끓여 먹었는데(부르고스에서 다 버리고

            고춧가루만 지니고 다녔다), 

            저들보고 매운탕 맛을 보겠냐니까 냄비를 들여다보더니

            '이게 물고기냐?'고 묻더니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그들은 비빔밥처럼 여러가지를 섞어 버무린 그들의 요리를 먹고,

             우리는 밥에 생선 매운탕을 먹으니.... 같은 식탁에 나란히 앉아서 먹는데 

             각각 자기네 입맛대로 먹었다.

 

             아래 사진은 다음 날 아침, 밖은 아직 캄캄한데 든든히 먹고 떠나려고

             어제 장 봐온 것들 꺼내놓고 먹고 있는 모습을 모처럼 사진으로 남겼다.

             인물 사진 잘 안 찍는데, 이 부부와는 정이 들어서 순간적으로 찍고싶은 생각이 들었기에....

             그렇게 찍어놓길 잘했지. 

             이날 레온이라는 큰 도시로 들어가는데,

             자기들은 레온에서 볼 것이 많으니 이틀 밤 자려고 한다며

             우리 계획은 어떠냐고 묻기에, 나는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도시가 지겨운 우리는 레온에서 하루 밤만 자고 떠나버렸고,

             알베르게도 많은 도시여서 아마도 서로 다른 알베르게를 이용했던지,

             다시 만나지 못하고 인사도 못한채 헤어지게 됬다.

             가끔 생각나며 보고싶어지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