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7일 / 34 일째
뜨리아까스떼야(Triacastela) → 사리아(Sarria) / 24.5km
(뜨리아까스떼야→사모스→사리아)
오늘의 목적지를 사리아로 정하고 볼 때
뜨리아까스떼야를 나서면 두 루트로 갈라지게 된다.
오른 쪽은, 도중에 산 실(San xil)이라는 마을을 거치게 되는 길인데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려야 하는 길이지만 19km만 걸으면 되는 길이고,
왼 쪽 길을 택해 걸으면, 까미노에서 중요한 유적지인 수도원을 만나게 되는
사모스를 통과하는 길인데 25km 정도를 걷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두 길이 모두 까미노 중 가장 아름다운 길에 속한다고 하니,
어느 길로 가든 하루 길이 에너지를 충분히 받을 수 있는 길일 것이라 기대했다.
우리는 유서 깊은 수도원을 볼겸, 멀다지만 왼 쪽 사모스 길을 택하기로 했다.
그러나...
사모스까지는 제대로 까미노의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걸었는데
사모스에서 점심을 먹고 난 후 부터 길을 잘못 들었다.
남편 왈, 자동차 도로로 가면 편하게 빨리 갈 수 있을거라고 하며
자동차 도로로 가자고 한다.
왈칵 거부감이 생겼으나, 지쳐가기 시작하던 나는 판단력도 흐려져 버렸는지
정통 까미노를 택하자고 우겨보지도 못하고 따라가고 있었다.
최대의 실수를 하고 말았다는 걸 한참이나 걷고나서야 깨닫게 되었는데
그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산길, 숲길로 이어지는 원래의 까미노와는 완전히 멀어져버렸고
그 길을 찾아갈 수도 없는 지점에 우리는 서 있었으니...
설상가상으로 기온은 뚝 떨어졌는데 바람까지 거세게 불어서
사실 내가 걷고 있는지 뭘하고 있는지조차 분간이 안될 정도로 체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짜증만 만발하고.... 오늘의 실수를 시시비비 할 기력도 없이
자동차 소리에 찌릿찌릿 신경을 곤두세우며 걷고 또 걸었던 끔찍한 하루였다.
▼ 뜨리아까스떼야의 돌담 길을 돌고 돌아
마을을 나가고 있는 중....
▼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작은 마을에 들어섰으나
순례자를 위한 어떤 서비스도 없는 마을이었는데
사람이 살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적막하고 괴괴한 분위기였다.
▼ 산 속에서 만나게 되는 작은 마을들은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낡고 허물어진 모습이었으나
주변의 숲으로 둘러싸인 경치는 마음이 푸근해지도록 아름다웠다.
▼ 밤 나무 숲으로 들어서서 끝없이 이어지는 오솔길을 걸었다.
발 밑에는 주워가는 이 아무도 없는 밤 알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는데,
우리는 걷는 일도 힘들어 죽을지경이니 몇 알 주워 볼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다면 저런 밤알들이 남아 있을까를 생각해보며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할 뿐......
▼ 언제든, 우리나라 아줌마들 데리고 가서 저것들을 줏어보고 싶은 마음....^^
▼ 훌리안 이 바실리사 왕립 수도원(Real Abadia de los San Julian y Basilisa)
사모스 수도원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수도원의 기원은 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재 남아 있는 수도원 건물은 16, 18세기에 건축 된 것이라고 한다.
워낙 울창한 산 속에 파뭍혀 있는 수도원이기에,
하늘의 별을 보려면 수직으로 올려다 보아야만 별을 볼 수 있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로
은둔하기에 적당한 곳이라고 알려져 있는 곳이다.
▼ 사모스의 중심가.
이 근처 어느 bar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 하루 종일 순례자들을 만나지 못했는데
점심 먹던 바르에서 한 명을 보았을 뿐이다. 다 어디로들 갔지...?
▼ 아유~ 도토리 묵이 생각나는 저것들....^^
▼ 저 위에 숲을 지나 자동차 전용 도로로 나선 뒤 부터는 사진이 없다.
유난히 힘든 오후였다.
다리를 끌며 간신히 도착한 사리아..
제법 큰 도시여서, 또 신경이 날카로워졌었는데
알베르게 선전 문구들이 여기 저기 보였으나 기를 쓰고
언덕 꼭대기 성당 옆으로 올라가서
제일 처음 보이는 알베르게로 들어갔더니 사립이었다(10유로).
▼ 성당 담벼락에 누군가가 그린 순례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우리는 성당 바로 앞에 있는 알베르게에 들어갔다.
▼ 사리아에 사람이 살았던 것은 로마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도시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길이 활성화 된
이후 부터라고 한다.
12세기 후반에 알폰소 9세가 이 마을을 세웠다고 전해진다는데
알폰소 9세는 산티아고 순례 도중에 창궐했던 전염병 때문에
사리아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그의 순례를 기리기 위해서 그의 영묘는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대성당에 안치되었다고 한다.
▼ 알베르게의 우리가 자던 방에서 내다 본 성당의 야경이다.
10유로나 주고 들어간 알베르게인데 밤에 어찌나 춥던지....
방은 여러개가 있어서 우리는 세 명이 잘 수 있는 방으로 들어가서
신경 안쓰고 편하게 잤다.
경험 해 보니 확실히 큰 도시에서는 공립 알베르게가 좋은 듯 했다.
값도 저렴하면서 어디서든 따뜻하게 잤었다는 기억이 난다.
사립 알베르게는 전기를 아끼느라 대체로 난방을 초저녁에만
해 주는 듯 밤에는 몹시 추웠다는 기억이다.
어쨋거나, 창으로 내다보이는 불 빛 환하게 밝힌 성당이 마음을 위로해주기도 했다.
어떻게 내가 여기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는지....
온전히 내 두 발로 걸어 온 머나먼 길...,기적처럼 생각되는 이 현실에
다시 감사의 기도가 저절로 나오던 잊을 수 없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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