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 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 가는 길 32 / 진눈깨비 휘날리는 산 속 작은 마을에서 무한한 감사를 드린 날..

권연자 세실리아 2013. 5. 2. 16:27

 

    2012년 11월 5일 / 32 일째

 

 베가 데 발까르세(Vega de Valcarce) → 오스삐딸 다 꼰데사(Hospital da Condesa) / 19.5km

  (베가 데 발까르세→루이뗄란→라스 에레리아스→라 파바→라구나 데 까스띠야→오 세브레이로

       오스삐딸 다 꼰데사)

 

 

 

           바람 불고 추운 아침이다.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드리워져 오늘 하루의 까미노 여정을 불안케 한다.

           새벽에 카나다 교민 모녀가 어제 남은 밥으로 죽을 끓였다고 먹자고 한다.

           알뜰살뜰한 모녀 덕분에,  뜨거운 죽으로 요기를 하고 나서니

           한결 몸에 따스한 기운이 도는 듯...

          

           길을 나서자 마자 비가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비옷으로 무장을 단단히하고, 사진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모녀와 헤어져 걷다가 생각해보니,

           어제 매운탕을 끓일 때 고춧가루를 부러워 했었는데....

           다시 만나게 되면 닭도리탕을 해드리겠다고 하면서^^.

           왜냐면, 남편이 닭도리탕을 한 번 해먹어야겠다는 말에

           자기가 끓여드리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이 길에선 헤어지고 만남이 계획대로 되진 않기에

           오늘 헤어짐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다시 못 만난다는 전제하에 생각난 일을 하기로 하고

           어느 마을에서 bar에 들어가 모녀를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린 다음, 지나가는 모녀를 발견하고 bar로 불러들였다.

           커피 마시고 가라고 한 잔씩 사주고

           가방을 어렵사리 풀어서 고춧가루 병을 찾아내어 나누어 주었다.

           너무 고마워하며 자기가 꼭 닭도리탕을 만들어드리겠노라고 다시 말하고 있지만,

           그 딸이 발에 물집이 심하게 잡혀서 걷는 속도가 무척 느렸기에

           우리가 생각하기엔 다시 만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 두 번째 마을에서였을까..

             목장이 마을 주변을 감싸고 소들이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다.

             사실은 비도 오락가락하는 이런 날엔 사진 찍는 일이 엄청 귀찮아진다.

             그래도 워낙 좋아하는 풍경이라 사진기를 꺼내어 몇 컷 찍었다^^.  

 

 

 

 

       ▼ 얘는 사진기를 들이대는 나의 행동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오랫동안 눈을 마추고 포즈를 취해준다 ㅎ...

           고맙다~~ 부디 잘 살아라~^^

 

 

 

 

         ▼ 잠시 파란 하늘이 보이고 해가 나니 이럴 때는

             비옷을 벗어 던지고 물기로 폭 젖은 옷에 바람을 쏘인다.

             비옷을 입으면 옷이 젖지 않을 것 같은데,

             땀이 배출되지 못하니 옷도 젖고 비옷 안쪽도 물 투성이가 되어

             이러나 저러나 불쾌한 상황이 되긴 마찬가지다. 

 

 

 

      ▼ 오늘은 까미노 여정에서 순례자에게 마지막 고통과 환희를 선사하는 루트라고 한다.

          숨을 헐떡이며 가파르게 산을 올라서 뒤를 돌아보면

          마지막 레온 지방의 환상적인 풍경을 내려다 볼 수 있고

          날씨만 행운이 따라준다면 저 멀리,

          엊그제 죽을동살동 넘어 온 철십자가가  있는 이라고 산이 멀리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비구름이 오락가락 하다 살짝 걷힌 순간에

          레온의 산들을 바라볼 행운을 얻기는 했으나

          아쉽게도 철십자가를 찾아내진 못했다.

          이나마도 우리는 행운이라고 좋아했었다.

          이 산도 변화무쌍한 기후에 얼마나 바람이 심한지...

 

 

 

 

 

        ▼ 마지막 고비인 듯 한데 또 비옷을 입어야 했다.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들리는 듯 하고,,,

           

 

 

 

 

         ▼ 오 세브레이로 있는 산 위에 올라서 '고생 끝!'이라는 듯한 얼굴이다.

             이제부터는 레온 지방을 넘어섰고 갈리시아 지방으로 들어왔다.

             목적지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까지 152.5km가 남았음을 알려주는

             까미노 표지석도 있었다.

             그러나 숫자가 줄어들 수록 가슴이 허전해지는 건 무슨 조화인지,

             고생이 끝난다는데 왜 이렇게 아쉽고 조바심이 생기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사진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레스또랑에 들어가 점심을 먹고 또 내리기 시작하는 비를 내다보다가

             남편은 같은 집에서 운영하는 가게에서 비옷을 새로 샀다.

             레온에서 산 비옷이 너무 짧은데다 무겁기까지 해서 고역을 치루며 왔는데

             비는 날마다 오고 더우기 갈리시아 지방은 비가 많다고 하니

             가격이 좀 비쌌지만 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ㅎㅎ... 새빨간 색이다!

             여자용인가...? 길이도 길고 짐을 메고 입는 비옷이라 공간이 아주 넉넉해서

             대만족이었지만 색갈이 어째....^^

             나는 여자용이라고 꺼림칙했는데, 남편은 매일 너무 고생스러웠나보다.

             무슨 상관이냐며 가볍고 너무 좋다고 망서림없이 샀다.

             지금까지 입고 온 비옷은(사진에 팔에 걸쳐있는) 멀쩡한 새 옷이니

             누구든 필요한 사람이 쓰라고 레스또랑 의자에 걸쳐놓고 나왔다.

 

              사실은 오 세브레이로에서 자기로 일정을 짜고 왔었다.

              산이 경사가 급하고 매우 힘들다고해서

              거리는 짧아도 자는 것이 좋을거라 생각했는데...

              조금 더 걸을 수 있는 상태기에 6km 가야되는 다음 마을로 떠났다.

            

 

 

        ▼ 산 로께 언덕(Alto de San Roque)에 있는 유명한 순례자 조각상이다.

            해발 1270m의 이 산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바람이 심하기는 마찬가지였던 듯...

            조각상의 순례자도 바람을 뚫고 걸어가느라 옷이 휘날리고

            모자가 날아갈가봐 한 손으로 모자를 눌러 잡고 가고 있다.

            우리의 모양과 똑 같은 형상이라고 생각되어 

            감격스러운 심정으로 한참을 이리보고 저리보고 했다.

            계곡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바람과 맞서 걸어가는 거대한 조각상이

            너무 멋졌다.

            한 겨울에 계곡이며 산봉우리들이 눈에 덮여 어디가 어딘지 구분하기 어려운 때에도

            순례자들에게 이정표 역할을 해주는 고마운 조각상이라고 한다.

 

 

 

             산 로께 언덕에서 얼마 걸리지 않은 곳에

             다음 마을인 오스삐딸 다 꼰데사 가 있었다.

             지금은 자취도 없으나 9세기 경에는 어느 백작 부인이 만든

             순례자를 위한 병원이 있었다는데, 그 인연으로 마을 이름에

             꼰데사(Condesa; 백작)라는 말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에 알베르게가 있으나 18명이 잘 수 있는 아주 작은 곳이었다.

             좀 더 걸어보자고 무작정 왔던 곳인데 늦게 도착했더라면

             잘 곳이 없어 별 수없이 다음 마을로 갈 뻔하지 않았나!

             그러나 이날 밤 18개의 잠자리도 다 채우지 못하고 빈 침대가 많았다.

             날씨가 추워지는지 바람결에 진눈깨비가 마구 휘날리고 있어서

             산간 벽지임을 다시 실감케 했다.

 

             남편이 마을에 나갔다오더니, 형편없이 작은 마을이라

             마트도 없고 자그마한 bar가 하나 있을 뿐이라고 했다.

             어차피 부엌은 있으나 그릇이 하나도 없으니 음식을 해먹을 수도 없었다.

             bar에서 저녁과 아침에 먹을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사왔는데,

             그나마 이런 것이라도 살 수 있는 곳이 있음을 감사했다.

 

             알베르게는 깨끗하고 만족스러웠다.

             뜨거운 물이 시원스럽게 나와 샤워하기에 불편도 없었고

             침대 매트리스도 새것으로 교체했는지 너무 편안해서

             아픈 허리를 하루밤 잘 쉴 수 있었다.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은,

             부엌도 깔끔하게 단장이 되어 있고 전기 렌지도 성능이 아주 좋았는데

             그릇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갈리시아 지방에서는 부엌이 있어도 그릇이 없어서

             음식을 해먹을 수 없다더니, 사실이 그랬다.

             이런 소문을 듣고, 먹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편은

             작은 캠핑용 그릇들을 몇개 사기도 했었는데 가방 무게 때문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다가 결국은 탈락시킨 그릇들이 집에 남아있다ㅎㅎ.

             어쨋거나 오늘부터 갈리시아 지방으로 들어왔으니

             밥 해먹기는 다 틀린 것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