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 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 가는 길 36 / 한 발 떼어놓기가 너무 힘들었던 하루

권연자 세실리아 2013. 5. 18. 12:17

 

    2012년 11월 9일 / 36 일째

 

          뽀르또마린(Portomarin) → 빨라스 데 레이(Palas de Rei) / 25.5km

                (뽀르또마린→곤사르→리곤데→빨라스 데 레이)

 

 

 

       이상한 상태로 보낸 밤이었다.

       그런 상황이 되었던 발단은, 침대 아래층에 누웠던 남편이 잠이 들면서

       가늘게 코를 골기 시작했던 것이다.

       전에 코골이 수술을 한 후로 신통하게도 코를 고는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다른 날과 달리 하루 종일 몹시 힘들어하더니

       저녁 식사 때 피로를 풀어준다며 와인을 마시더니만

       급기야 코를 골기 시작한 것이다.

       침대 윗층에 누워있던 나는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옆 침대와 다정하게 붙여놓은 침대에서 자게 되었는데

       옆 사람이 잠 못들면 어쩌나 걱정과 불안한 마음으로 신경이 곤두섰다.

       마침 내 옆 침대는 비어있어서 내가 아래로 내려가야겠다 생각을 하고

       남편을 살며시 깨워 자리를 바꾸자고 했다.

       화들짝 놀라며 깨어난 남편을 위로 올려보내고 밑으로 내려온 나는 깜짝 놀랐다.

       옆 침대에 누워서 왕방울처럼 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얼굴이 크로즈업되어 보였던 것이다.

       당황한 나는 남편이 코를 골아서 위로 올려보냈노라고 변명처럼 말하고는

       순간, 어쩌지? 다른 침대로 갈까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는데,,,,,

       그러자면 수속이 복잡하다..... 침대보와 베게 커버를 벗겨내는 소동을 벌여야하고....

       어차피 혼숙인 판에 붙어있는 옆 침대에 남자가 있다고 도망가듯 옴겨가는 일이

       이 순례길에서 엄청 촌스럽기도 할 뿐더러 옆 사람에게 예의도 아닌 듯 하고.....

       에잇 모르겠다! 하고 침낭 속으로 얼굴까지 쏙 들여보내고 누워버렸다.

       어차피 세상만사 마음 먹기 달렸다고 하지 않던가?

       이렇게, 남편 때문에 생판 모르는 남자 옆에서 자게됬던 것이다^^.

       그런데 남편은 윗 침대로 올라가더니 조용히,

       코도 골지 않고 얌전하게 잠이 들었다는 것...ㅎ

 

      

       아침 일찍 숙소를 나오니 오늘도 안개가 자욱하다.

       안개 비가 내리는 듯 해서 어느 집 처마 밑에서 판쵸를 꺼내 입었다.

       어제 비를 맞으며 올라갔던 산길을 오르는데 얼마나 힘이 드는지....

       어제 한 번 올라갔던 길이라 쉽게 오를 줄 알았는데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한발 한발 떼어 놓기가 너무 힘들어 헐떡거리며 올라간다.

       오늘 하루의 여정이 무척 힘들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진통제까지 먹고 나왔는데 도대체 왜 이리 힘들까!

      

      ▼ 산 속 숲 길을 빠져 나오자 마을이 나타났지만

         건물 하나 이렇다 할 것 없는, 아주 보잘 것 없는 마을이다.   

         

 

 

 

 

 

 

       ▼ 갈리시아 지방은 목축업이 성한지,

          마을 길에서 소를 몰고가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따라서 길에는 소 배설물이 많았는데,

          비가 오니 소 배설물이 빗물에 섞여 길 바닥에 흐르고 있어서

          날마다 소똥물을 밟으며 걷는 일이 많았다.

          아래 마을의 길은 깨끗하지만.... 다른 동네는 ...^^

 

 

 

       ▼ 어느 마을의 공동 묘지.

 

 

 

        ▼ 어느 마을 공원의 조형물...      

 

 

 

 

        ▼ 가을이건만 우리나라에서 보던 수국이 어느 집 울타리를 장식하고 있어 반가웠다.

            우리나라에서는 수국이 5월경에 피는 것으로 기억되는데,

            여기서는 계절이 어찌 돌아가는지 가을에도 피고 있어서 신기했다.

 

 

 

        ▼ 다시 숲 길로 들어와 힘든 몸과 마음을 진정시켜 주고....

            오늘은 해발 700m를 넘는 고도의 길이어서 은근히 힘든 코스였다.

 

 

        ▼ 내리막을 내려가다 갑자기 나타난 성당 건물이다.

            갈리시아 지방에서는, 그간 지나왔던 길에서처럼 마을에 성당이 있어도

            어쩐 일인지 선명하게 부각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어떤 친절한 설명도 별로 없어서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이름도 모를 위의 성당을 지나 겨우 찾아낸 알베르게에 들어갔다(5유로).

        침대를 배정받아 이층으로 올라가니 어떤 남자가 '꼬레아' 냐고 묻기에

        맞다고 하니 반색을 하며 "포토! 포토!" 라고 외치면서

        나를 잡아 끌다시피 내 침대 번호로 안내해 준다.

        그런데 이 사람이 외친 "포토! 포토!"는 무슨 의미일까?

        나는 많이 지쳐있는데다가 그가 외친 의미를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침대에 주저 앉으며 어디서 왔느냐 물으니

        자기는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부터 걸어왔다는 것이다!!

        놀라워 하며 얼마나 걸렸냐고 물으니, 얼마나 걸렸다고 들었는데.....지금은 잊어버렸다.

        아무튼 그 당시 깜짝 놀랐었으니 상상할 수 없는 날들을 걸었음에 틀림없다.

        세상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음을 또 다시 깨닫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