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 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 가는 길 37 / 취한 듯 올라가고 내려가던 아름다운 산길..

권연자 세실리아 2013. 5. 21. 20:00

 

    2012년 11월 10일 / 37 일째

 

    빨라스 데 레이(Palas de Rei) → 리바디소 다 바이쇼(Ribadiso da Baixo) / 27km

       ( 빨라스 데 레이→까사노바→레보레이로→멜리데→리바디소 다 바이쇼)

 

 

 

       지난 밤은 완전 이상한 밤이었다.

       붙어있지는 않았지만 바로 우리 옆 침대에서 자던

       해적선 선장같은 느낌의 남자가 밤 새도록 코를 골았던 것이다.

       어제 이 남자는 우리 앞에서 절룩거리며(발병이 난게 틀림없어 보였다) 

       까미노를 걷고 있었는데, 등치도 크고 어쩐지 인상도 무서워서 저 사람과 제발

       멀리 떨어진 곳에 침대 배정을 받았으면 좋을텐데.. 라는 생각까지 잠간 했더랬다.

       그런데 절뚝거려도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고 게다가 바로 우리 옆 침대였다ㅠㅜ..

       이건 또 무슨 인연이냐 했는데,,,

       잘 때 옷을 다 벗고 팬티 하나만 입고 침낭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안보려해도 바로 옆에서 옷을 훌렁훌렁 벗고 수선을 떠니 

       무지막지하게 우람한 어깨며 팔에 새겨있는 문신까지 다~ 볼 수밖에 없었지....ㅠㅠ

       침낭 속으로 들어가자 조금 있더니 우렁차게 코를 골기 시작하는 것이다.

      

       잠은 다 잤구나 속으로 한탄을 하고 있는데, 이건 또 무슨....?

       어제 커플로 들어왔던 젊은 여자가 폐소 공포증이 있는지,

       방에 들어서자마자 창문부터 열어저치더니만 잘 때에도 문을 열어놓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추워서 닫아놓으면 좀 있다가 다시 살그머니 열어놓고.... 

       밤새도록 닫고 열고를 반복했던 것이다!

       어쨋거나 기막힌 밤이었다.

       옆에선 해적 선장 같은 남자의 계속되는 코골이,

       또 한 편에선 겨울 추위에 열심히 창문을 열어제치던 여자 ....  

       정말 어떤 불편한 상황도 이 길 위에서는 참고 견뎌야 한다는 걸 또 경험한 밤이었다.

 

 

       밤 새 잠을 설치고 6시도 되기 전에 일어나 살그머니 짐을 챙겨들고 나왔다.

       갈리시아 지방의 알베르게에서는 등록할 때 일회용 침대 시트와 베게 커버를 주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자기가 사용한 침대 시트와 커버를 벗겨 쓰레기 통에 버려야 한다.

       남들 다 자고 있는데 침대 정리까지 끝내고 나오느라 더 신경이 쓰였다.

       아래층에 내려오니 아무도 없고 우리가 일등이다.

       식당으로 들어가 아침 요기를 하고 있자니까 한 사람 두 사람 들어오기 시작한다.

       모두들 잘 잤는지, 우리만 잠을 설친것인지....?

 

       그나저나 밤새 비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새벽까지도 그치지 않는다.

       오늘 하루를 또 저 비와 싸워야 하는구나 생각하니 심난할 뿐이다.

       줄기차게 내리던 비가 8시 쯤 그치는 듯 싶기에 감사의 기도를 바치며 얼른 출발했다.

 

      ▼ ㅎㅎ.. 빨간 비옷을 입고 가는 저 남자...!

          오 세브레이로 산 꼭대기 가게에서 산 우비이다.

          빨간 색이니 여자용이겠다 싶은데 남자에게 딱 맞는 싸이즈니 남자 용인가 ㅎ...?

          우리집 남자 저걸 입고, 크기가 풍성한데다 가볍기까지 하니 완전 만족해 했었다^^.

 

 

 

        ▼ 갈리시아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것인데,

            처음엔 무슨 용도인지 궁금해서 포도주 저장고일까 추측도 해보았던 것.

            알고보니 곡물을 저장하는 창고 오레오 라고 하는 것이었다.

 

 

 

 

 

          ▼ 돌 벽에 매달아 놓은 제라늄 화분,

              그리고 벽을 기어오르며 빨갛게 물든 담쟁이 넝쿨.....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이 지방의 겨울은 춥지않은지 여러가지 꽃들이 그대로 피어있었다.

 

 

 

 

 

        ▼ 출발할 때 잠간 멈췄던 비는 우리의 바램을 저버리고

            하루 종일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했다.

            비옷을 벗으면 다시 내리기 시작하고, 서둘러 입고 걷다보면 다시 그치고....

            그러니 거추장스럽더라도 아예 입고 가는 게 편할 정도였다.

            비 오는 날 다 허물어진 집 옆을 지나가는 기분,

            쓸쓸하고 허무하고 ..... 온갖 우울한 감정들이 달려들었다.

 

 

 

 

      ▼ 오늘은 30km를 넘게 걸을 수도 있는 여정인데다

          여기저기 통증도 심하기에 진통제를 먹고 출발했지만,

          비 맞으며 올라가고 내려가야하는 산 길이 하루 종일 계속되어

          체력의 한계를 여지없이 흔들고 있었는데....

          다행인 것은 산 속 숲길이 너무 아름다워 그나마 기운을 받아가며 갈 수 있었다는 것.            

 

 

 

     ▼ 와아~ 드디어 싼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까지 60.5km가 남았단다!

        어느 세월에 그 길을 다 걸어왔는지 꿈만 같다.

        어느 고달픈 순례자가 자기의 옷으로 표지석에 너울을 만들어 씌워 놓았네....

        그 기분... 아마도 이 길을 걸어온 순례자라면 누구나 똑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될테지.

 

 

 

       ▼ 비가 내려 축축한 이 아름다운 산 길에 나는 완전 취해 있었다.

           활짝 개인 것보다 비에 젖은 숲이 더 깊은 맛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여기를 내려 갈 때 나의 가슴은 두근거리기조차 했었다.

           아름다움 앞에서 항상 취하게 되는 나... 술이 따로 필요 없다 ㅎㅎ...

 

 

 

 

 

         ▼ 숲 길을 내려가 어느 작은 마을에서 bar를 만나자 우리는 약속한 듯 들어갔다.

             까페 콘 레체를 한 잔씩 시키고 앉아 둘러보니 돌벽에 각 나라의 동전들이

             붙어 있었는데 인테리어의 한 몫을 하고 있어 재미있었다.

             주인 여자가 이것 보라며 우리나라 10원 짜리 동전 하나를 찾아서 가져온다.

            그것 말고 100원 짜리 동전도 눈에 띄었다. 500원 짜리도 놓아주고 싶었는데

            가지고 있는게 없어서..., 동전 한닢의 무게도 다 덜어 놓고 왔으니.....^^

 

 

 

 

 

        ▼ 어느 마을 길가에 있던 성당이다.

            갈리시아 지방에 들어서니 산길 숲길이 많은데다 비가 날마다 오니

            사진 찍는 일이 소홀해 질 수 밖에 없었다.

            잠시 비가 멈추면 카메라를 꺼내들고, 비가 내리면 다시 집어넣고 하다보니

            어느 마을, 어느 성당인지 그런 것들이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오로지 이 길을 걷는 일에만 열중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사진 찍는 일도 지겨워졌다고나 할까....!

 

 

 

         ▼ 그런데 이 성당 입구에 세요를 찍을 수 있다는 간판이 있고

             성당 문이 열려 있어서 들어갔다.

 

 

 

        ▼ 아무도 없고 스스로 스템프를 찍을 수 있게 준비되어 있어서

            순례자 여권을 꺼내 스템프를 찍고 있는 남편.....

 

 

 

        ▼ 그 사이에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니

            소박한 모습의 제대와 뒤 쪽에 성가대석 까지 있었다.

            작은 시골 마을에 있는 이런 성당이 너무 마음에 든다.

 

 

 

 

        ▼ 푸른 하늘이 보일 때 우리는 숲을 벗어나 돌집들이 있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이 마을은 2005년도에 이 길을 걸었던

           오마이 뉴스의 김남희 기자가 강추하던 알베르게가 있는 마을이라고 기억 된다.

           여기까지 27km를 걸어왔는데.... 사실은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3.5km 더 가면 알베르게도 여럿 있고 순례자에게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아르수아 라는 도시가 있는데.....

           아침에 출발할 때 생각으론 가능하면 그곳에서 머물며 밥도 해먹자고 했으나

           도저히 다시 산을 올라갈 힘이 없었다! (그곳은 긴 산 언덕을 올라가야 했었으니.)

           그러나... 알베르게가 아름답고 주변에 강도 있어 여름이라면 강물에 뛰어들어

           더위를 식힐 수도 있다고 강추하던 곳에 머물러 보는 것도 좋겠지!

           여름이 아니라 소용없는 얘기긴 하지만...^^

 

 

 

        ▼ 아닌게 아니라 여름이라면 완전 좋았을 곳이 틀림없다.

            저 물 속에서 몸을 식히는 순례자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구나...

 

 

 

 

 

 

        ▼ 이날 밤 이 마을에 머문 순례자는 우리 부부와 스페인 부부 한 커플이 더 있었다.

            우리가 먼저 도착해 스페인 말밖에 할 줄 모르는 호스피탈레로와

            소통하려고 여러나라의 아는 단어들을 총동원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을 때

            지난 밤 우리와 같은 방에서 잔 스페인 부부가 다 죽을 상을 하고 들어오더니

            뭐라뭐라 스페인 말로 사바사바를 하는 듯 보였다.

            결국 너무 쉽게 침대 세 개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순간 나는 약이 올랐다^^!

            그리고 말도 할 줄 모르면서, 김남희 기자가 강추한 아름다운 알베르게라는

            얘기를 하고 있었으니.... 아무리 말해도 알아듣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그런 얘기 하지않고 방으로 바로 들어갔더라면 저 침대 세개 있는 방으로

            우리가 들어갔을텐데...

            그 방이 뭐 그다지 좋은 방이여서가 아니라, 춥기도 하니 아늑하고 편하게

            우리끼리 자고 싶어서였을게다. 코고는 소리도 없는 곳에서 푹 자고 싶었겠지.

            그런데 그 스페인 부부가 쉽게 그 방으로 들어가는 걸 보니 약이 올랐던 것.

 

            그러나, 이층 침대 4개가 있던 이방에서 우리 두 사람만 잤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 마을을 지나쳐 갔다.

            하긴 알베르게만 있었지 마켓 하나도 없는 마을이었으니...

           

            우리는 젖은 옷들을 모두 여기저기 침대에 걸어 말리고

            샤워실이며 화장실이며 독차지하고 썼으니 최상급의 알베르게였다고 할 만 하다.

            (알베르게 요금; 8유로)

 

 

          알베르게 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레스또랑이 하나 있어서 그곳에서 저녁을 먹었다.

          며칠이나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 곳에서 머물다보니 한국 소식이 궁금해서

          들어서자마자 와이파이 문제부터 물었더니 역시 안된다는 것.

          대신 컴퓨터가 있으니 사용하라고 한다.

          있으면 뭐하노, 한글이 깔려있지 않으면 소용없지...

          실망하고 있는데 주인인 듯한 청년이 자기 휴대폰을 꺼내보이며

          똑 같은 것이라고 자랑이다^^.

 

          저 쪽에 스페인 부부가 먼저와 있었는데 아까 약이 올랐던 일로

          모른척 하고 눈길을 주지 않았다. 좀스럽기는....!!

          점심 때까지만 해도 만나면 인사를 했었는데...

          말을 할 줄 몰라 불이익(?)을 당했다는 생각으로 자존심이 상했던 것인가?

         

          어쨋거나, 순간적인 피해 의식이

          옹졸한 행동으로 이어진데 대한 부끄러움으로, 

          다음 날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했었다. 

          그게 뭐라고... 내가 왜 그렇게 옹졸한 생각을 했을까...?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먼저 해야지,,

          별렀지만 다시 만나지 못했고 마음의 빚(?)을 안고 걸어야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