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 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 가는 길 39 / 까미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권연자 세실리아 2013. 5. 30. 14:23

 

    2012년 11월 12일 / 39 일째

 

    뻬드로우소(Pedrouzo) →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Santiago de Compostela) / 20.5km

       (뻬드로우소→라바꼬야→몬떼 도 고소→산띠아고 데 꼼뽀스뗄아)

 

 

 

      하늘의 축복!

      파아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날이다.

      까까벨로스에서부터 하루 정도 빼곤 날마다 내리던 비였는데

      오늘 산티아고로 입성하는 날,

      우리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던 비가 드디어 개였다.

      주님의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고,

      역시 주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는 느낌이 팍팍 드는 아침이다^^.  

      

      지긋지긋하게 추운 밤을 지샌 펜숀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 서둘러 나왔다.

      차라리 밖이 더 따뜻할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기에....

      어제 저녁 식사를 했던 레스또랑은

      우리가 잤던 펜션과 함께 운영되는 곳이었는데, 9시에 문을 연다고 했었다.

      레스또랑 앞으로 내려오니 와이파이가 되는 구역이어서 메세지 오는 소리가 들린다.

      딸이 보낸, 오늘 마지막 하루 화이팅 하시라는 격려의 메세지였다.

      추운 새벽에 문 닫친 레스또랑 앞에 서서 기쁘기도 하고 벅찬 마음으로

      메세지 답장을 보냈다.

      정말 오늘이 마지막인가? 실감이 전혀 나질 않았었는데...

      딸에게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점차로 '오늘'이라는 현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 내가 정말 2000리 길을 두 발로 걸어왔구나!

      그 거친 땅을.... 산을 넘고 강을 건너 걷고 또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니.....

      지나온 날들이 꿈이 아닐까...

      꿈이라면, 고통스러웠어도 깨고싶지 않은 꿈이다.

      그 길에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어떻게 되었을까...?

 

      초반에 우리나라 사람들을 더러 만나기도 했었는데,

      뜨리아까스떼야를 마지막으로, 그 이후로는 한 명도 볼 수 없었다.

      모두들 포기하지 않고 완주했기를 바랄 뿐....

 

      자동차 길이 한가운데로 길게 뻗어 있던 마을로 들어가 

      아침 일찍 문을 연 bar를 찾아 들어갔다.

      따끈한 커피와 빵 한 개로 아침 식사를 하니 얼었던 몸과 마음까지 녹는 것 같다.

      

 

        ▼ 어제 마을 입구에서 들어갈 뻔 했던 유칼립투스 숲으로 들어가려고

            마을 안 쪽에서 까미노 표시인 노란 화살표를 찾아보았지만 눈에 띄질 않는다.

            이른 아침이라 길을 물어 볼 사람들이 보이질 않아

            지나가는 차를 세우고 물어서 겨우 제대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마을 끝부분에서 찾아 들어간 길은 어제의 칙칙한 숲을 다 지나온 지점인 듯

            안개가 살포시 스민 어린 나무 숲 옆으로 길이 나있다.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안개 속으로 스며들어와 신비스러웠다.

 

 

 

 

 

 

       ▼ 이런 풍경도 오늘이 마지막이려니 싶은 생각이 들어

           한 순간순간이 모두 소중하게 다가왔고 머리 속에 또렷이 각인시키려고

           자주 멈추고 풍경들을 둘러보곤 했다^^.

          

           불가사의한 일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저질 체력으로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말인지,

           집으로 돌아가서, "내 두 발로 걸었다"고 사람들에게 말했을 때

           믿어주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나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적같은 일이다 보니....

           평소의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설명 할 방법이 따로 없다는게 정답이다.

           "나를 이끌어 주시는 어떤 분에게 이끌려 매일매일을 걸었노라"고,

            나는 그렇게 말 할 수밖에 없다. 

 

 

 

          ▼ 작품 사진처럼 멋진 풍경....ㅎ

 

 

 

       ▼ 등짐 진 내 모습도 마지막이니 찍어 두기로 했지...ㅋ,

 

 

 

 

         ▼ 어제까지 매일 몸서리치게 내리던 비가

             산티아고 여정의 마지막 날인 오늘 이렇듯 화창하게 개이다니...

             아무리 무심하려해도 이건 하느님의 축복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야고보 성인이 산티아고에서 우리를 환영해 주시는거라고...

             애들처럼 들뜬 마음을 주체할 길 없었다.

 

 

 

 

 

 

 

 

       ▼ 오늘은 라바꼬야 국제공항(산띠아고 공항)이 있는 근처로 지나오게 되어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소리를 들어야했다.

           오랫만에 듣는 비행기 소리.... 아직은 듣고 싶지 않은 소리다.

           나의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저 냇물에 발이라도 담그고 아무 생각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숲길과 초원이 있는 농촌 풍경에서 벗어나기가 싫었다.

           오늘의 목적지, 그리고 나의 이번 여정의 최종 목적지에 오늘은

           어김없이 도착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이 어이없게도 나를 우울하게 했다.

           이 길에 대한 애착과 미련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겠지....! 

 

 

 

 

 

 

 

 

             어느 아름다운 마을 bar에서

             까미노의 마지막 점심 식사를 했다.

             다행히 아름다운 bar였고, 다른 날과는 달리 천천히 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식사 메뉴며 바르를 사진에 남기지는 않았지만,

             내 머리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시골 마을의 아름다운 bar.....

             사실 이제는 사진 찍는 일이 시들해지고 별 의미가 느껴지지도 않아서

             많은 풍경들을 그냥 흘려보내기도 하고, 무념의 상태에서 지나친 때도 많았다.

            

 

 

 

      ▼ 이쯤 부터는 농촌 풍경을 벗어나 점점 도시화 되어가는 마을들을 지나갔다.

          지루한 기분에서 벗어나려고, 마시고 싶지도 않은 커피를 마시러

          bar에 들어가기도 하고....

          그렇게 이 길에서의 시간을 지연시키려고 무던히 애를 쓴 듯 싶다^^.

 

 

 

       ▼ 어쩌다 보니 상상했던 산티아고가 아닌 이상한(?) 도시에 도착했는데,

           어쨋거나 그 도시가 산티아고였다.

           신시가지를 다 지나가야 구시가지로 갈 수 있는데, 가도가도 끝이 없었다.

           몸이 지치기도 했지만, 그처럼 길고 긴 도시는 처음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산티아고에 다 왔다고 하는데, 별빛 쏟아지는 들판에 세워졌다는

           대성당이 있는 목적지(?)는 보이지 않고 이렇게나 지루하게 걸어야하다니...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었을까,

           산티아고는 아담하고 작은 중세 마을의 모습일거라는....

           그러나 실제의 산티아고는 무척이나 큰 도시였다.

           대성당이 있는 구시가지만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는 아니였으니까....

           인간의 제멋대로의 고정관념이 문제가 될 때가 많긴 하지....^^

 

 

 

 

 

       ▼ 마침내 구시가지로 들어와 골목길을 걷고 있으니, 좀 있으면 꿈에도 그리던

           산띠아고 대성당에 도착할텐데 웬 일인지 무덤덤해졌다.

           몸이 힘들어서일까...?

           그간의 고생스럽던 나날을 생각한다면 눈물이라도 쏟아낼 듯 한데

           정말 이상하게도 그냥 무덤덤하니 내 마음 나도 모르겠다.

 

           그런 상태로 어느 골목길에서 언듯 대성당의 첨탑이 보였는데

           순간 울컥 했다.

           눈물인지, 기쁨인지, 행복감인지,.. 도대체 가늠할 수 없던 그 무엇이...

 

 

 

        ▼ 저 앞의 아치를 지나자 갑자기 대성당 광장이 나타났고,

           우리는 대성당 앞 광장에 멍~하니, 어리둥절 한 모습으로 서 있게 되었다.

 

 

 

        ▼ 깨끗하게 세수를 한 듯, 말끔한 대성당의 모습이다.

            TV에서, 사진에서 보던대로,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뽑내 듯 서 있는

            대성당을 한동안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정말 이제 모두 끝이난 것인가?

 

  

 

        ▼ 우리가 일찍 도착해서인지,

            오브라도이로 광장(Praza do Obradoiro)은 한산했다.

           

            근 40 여일 가까이 오로지 이곳을 향하여 걷고 또 걸어 왔었는데

            드디어 도착한 지금, 이렇게 마음이 차분할 줄은 정말 예상 밖이었다.

            어떤 이들은 모르는 사람끼리도 얼싸안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는 둥,

            광장 한 가운데서 등 짐 질머진채로 절을 하는 사진도 보았었고....

            그런데 나는 왜 이 모양이냐...?

            그 길을 걸어오며 모든 걸 내려놓다 못해,

            희노애락 등 최소한의 감정까지도 모조리 내려놓아버린 것일가?

            아무튼 무덤덤하게 대성당을 찬찬히 바라보고....

            그 앞에서 기념 사진 한 컷 남기는 게 도착 세리머니의 전부였다^^.

 

 

          

          

           ▼  대성당 오른 쪽으로 돌아 골목으로 들어간 곳에 순례자 사무실이 있었다.

               이 사무실에서 그동안 찍어왔던 순례자 여권의 스템프들을 심사받은 후,

               순례를 마쳤음을 증명하는 순례인증 증서(Compostela)를 받게 된다.

               이 증서를 받는 순간, 830 여 km의 머나먼 길을 걸어온

               순례자로서의 순례는 마침표를 찍게 되는 것이다.    

 

     

 

        ▼ 나의 순례자 여권 속의 스템프들....

           걸어오는 동안, 알베르게와 레스또랑, 혹은 bar에서 받은 스템프들이다. 

 

              

 

         ▼ 순례자 사무실에서 발급한

             나의 순례인증증서 Compostela이다.

 

                    

 

 

         ▼ 순례자 사무실 앞에 있는 Pension에 짐을 풀었다.

             이 근처에 알베르게도 여러개 있는 모양이지만 그동안의 긴장을 풀고

             수고가 많았던 몸도 편히 쉬게 해 줄겸, 알베르게보다 편한 곳으로 들어갔다.

             짐도 내려 놓고, 순례자 사무실에서 인증증서도 받아 놓았으니...

             분명히 우리는 이제 이 길을 걷는 일을 끝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 무사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항상 함께 해 주셨고

             힘든 고비 때 마다 힘을 주시고 이끌어 주신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그분, 야고보 성인의 발자취를 따라 온 우리가 아닌가,,,

             제대 뒤로 올라가서, 중앙 제대에 있는 야고버 성인의 어깨를 끌어 안아보았다.

             감사하고 행복한 기분이 되어 무어라고 성인께 얘기를 하자, 비로소 눈물이 핑 돈다.

             제대 밑으로 내려가 창살 저 쪽, 

             별 아래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담긴 관을 보았다.

             주님의 말씀 따라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러 오셨던 분....

             그분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존경심이 솟구쳐오르면서,

             나도 그분의 믿음을 비슷하게라도 닮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내일 순례자를 위한 정오 미사에 참례하기로 했는데

             그때 보타푸메이로 예식이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어쨌거나 내일 다시 성당 안을 돌아보고 사진도 찍기로 하고 밖으로 나왔다.

             산티아고 구시가지도 내일 돌아보기로 하고...

             (성당 내부 사진, 등등의 포스팅은 다음날로 미루겠다)

             오늘은 오로지 쉬는 날이다. 

               

             다시 대성당 앞으로 나와 관광객처럼 느긋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다.

 

 

 

         ▼ 그동안 잘 먹지도 못하며 걸어온 덕분에 이 남자도 살이 많이 빠졌다.

             심지어 뱃살까지 모두 빠져버려서(ㅎㅎ 잘됬지,,) 홀쭉하게 됬다.

             산티아고에서 애 하나 낳고 왔다고, 후에 내가 두고두고 놀려댔지....

            

             처음에 이 길을 걷겠다고 결심했을 때 나는 혼자서라도 떠나려고 했었다.

             그러나 나의 보디가드 역할을 자처하고 함께 따라와 주었든 이 남자...

             이 사람이 얼마나 큰 힘이 되어 주었는지 말로는 다 할 수 없다.

             내가 하룻 길을 걷고나서 아프고 지쳐 침대에 쓰러져버릴 수 밖에 없을 때

             이 남자는 마트에 가서 먹거리 장을 봐 오는 등,

             자질구레한 모든 처리를 다 해주며 힘이 되어 주었다.

             나 혼자 왔더라면 엄청 서러웠을 나날들이었는데(초반에 10일 정도 많이 아팠기에)

             남편은 이번 순례길에서 진정한 나의 동반자임을 증명하고도 남았다^^.

             감사하다는 마음을 표하고 싶다.

 

 

                                    

 

 

           ▼ 펜션이 있던 골목.

             'MONTES' 라는 조그만 간판이 붙어 있는 고풍스런 건물이다.

 

 

 

 

        ▼ 발코니가 있는 깨끗하고 아담한 방이다.

           그동안 많은 순례자들과 함께 자는 알베르게를 이용해왔는데,

           이렇게 쾌적하고 조용한 방이 너무 호화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 대성당 광장에서 들어오는 길에 수퍼마켙에 들려 먹고 싶은 것들을 잔뜩 사왔다.

 캔맥주를 들고 그동안 수고했다고 서로 치하하며 악수를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진다.

  대성당 앞에 처음 도착했을 때도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없었는데,

서로의 손을 잡고 수고했다는 말을 하면서 울음이 터져나온 것이다.

 그동안에 겪었던 고통을 한꺼번에 쏟아내듯

한동안 눈물을 쏟아냈다.

 

 

 

          ▼ 발코니에서 내려다본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조그만 광장이다.

             그리고 산티아고 대성당 부근의 고색 창연한 아름다운 건물의 지붕들이 보였다.

 

 

 

            ▼ 저녁 노을 빛을 받은 첨탑이 아름답다.

                와이파이가 연결되는 곳이라 휴대폰이 휘파람을 자주 불어서 기뻣는데,...

                연결시키자마자 아들과 며느리의

                무사히 완주하심을 축하한다는 메세지가 도착했다.

                아직 도착했다는 얘기도 안보냈는데....

                시간으로 보아 지금쯤 도착했으리라 추측하고 보냈겠지 싶다.

                어쨋거나 눈물이 흐른다.

                지구 반대 편에서 날아온 축하의 메세지가 왜 나를 울리는지....^^

 

          

 

 

          ▼ 그동안 일출의 노을은 많이 보았지만, 일몰의 노을을 보기는 어려웠는데,

                  이유는 너무 피곤해서 일몰을 보러 나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발코니에서 산티아고의 일몰과 노을을 오래오래 지켜보았다.

 

 

           

 

아~ 감사하고 행복한 이 기분....

이 행복한 기분이 꿈이 아니기를 바란다.

내일 아침 또 다시 짐을 꾸려 둘러메고

어디론가 길을 떠나야하지 않을가...

이런 느낌은 한동안 계속될 것 같기도 해서,

자다가 갑자기 깨어나면 무의식 상태에서 짐을 꾸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 나의 산티아고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나의 생이 끝나는 날까지, 아마도 수 없이

마음 속으로 짐을 꾸려 떠나고

다시 홀가분해져 돌아오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