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2일 / 18 일째
까스뜨로헤리스(Castrojeriz) → 프로미스따(Fromista) / 25.5km
(까스뜨로헤리스→이떼로 델 까스띠요→이떼로 데 라 베가→보아디야 델 까미노→프로미스따)
메세타의 짖궂은 일면을 생생하게 경험했던 어제 일들이 꿈만 같다.
밤 사이에, 비에 젖었던 옷과 신발, 빨래까지 모두 말라서 기분 좋은 아침을 맞았다.
알베르게에서 잤으면 새벽같이 길 떠났을 시간인데, 오늘은 여유롭게 일어나 서두를 필요도 없이
아래층 bar에 내려가 따뜻한 커피와 바게트 샌드위치로 아침 식사를 했다.
이렇게 여유로운 아침을 맞는 것이 얼마만인가! 특별한 일도 아닌데 행복감이 밀려왔다.
나는 이 길을 걸으며 도대체 얼마나 단순해지고 있는지....!
머리속은 텅 비어 쓸만한 생각같은건 아예 남아있지 않은 듯 하고,
날마다 똑 같이 반복되는, 자고, 먹고, 배설하고, 무얼 먹어야 입맛이 돌아올까.... 그리고...
오늘은 어떤 곳에서 자게 될까, 침대 매트리스 때문에 허리가 아파지지 않았음 좋겠다...등,
그리고 하는 일이라곤 노란 화살표가 가리키는 쪽으로 걸어갈 뿐이다.
언제 이렇게 단순하게 살아본 일이 또 있었을까?
하루하루 이런 생활에 길들여지고 있는지, 떠돌이같은 이 생활이 어느 순간엔 견딜 수 없이
힘들다가도, 한편으로 가슴이 뿌듯하게 차오르는건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 모처럼 여유를 부리며 해가 뜬 후에 출발했다.
아침 빛갈이 신비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워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하늘은 푸르고 기분은 감당하기 힘들만큼 상쾌해서
등에 질머진 짐조차 너무 가볍게 느껴질 정도였다.
산타 마리아 델 만사노 부속 성당(Colegiata de Santa Maria del Manzano)
우리가 머문 Hostal 바로 옆에 있던 성당이다.
로마네스크에서 고딕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만들어진 건축물로 13세기의 현관과
15세기의 유리 세공품, 13세기의 돌로 만든 채색 성모상 등이 남아있다고 한다.
특히 까스뜨로헤리스는,
우리시대의 가장 사랑받는 브라질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극찬한 마을이라고 한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걷고난 후 「순례자」를 썼고
그 일을 계기로 작가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순례자'(1987년)는 그의 데뷔작이었는데, 지극히 '인간적'인 한 사람이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고난의 경험을 통해 기적과 같은 변화의 과정을 거쳐 깨달음에 이르는 여정을 담은 책이다.
그를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한 「연금술사」의 모태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파울로 코엘료는 '산티아고 가는 길'을 사랑해서 여러 번에 걸쳐 걸었다고 하는데,
이 마을이 마음에 들어 까스뜨로헤리스에 머물며 책을 쓰기도 했고
특히 이곳에서 보는 일몰을 극찬했다고 한다.
어제 비가 오는 관계로 일몰을 보지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어쩌겠는가! 이 길에서의 날씨 운이 따라주지 않은 것을.....ㅠ
까스뜨로헤리스는 메세타의 언덕 위에 중세 성곽의 흔적으로 둘러싸여 있는 마을이다.
마을은 산티아고 길을 따라서 길게 자리잡고 있는데,
얼마 남아있지 않은 성벽 안으로는
오래된 유적들과 수도원, 성당, 병원, 저택 등이 빽빽히 모여 있다.
허물어져가는 집들이 세월의 흐름을 대변해 주는 듯 하고,
오늘날까지 중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골목을 돌아나가자면
시간 여행을 하고있는 느낌이 드는 곳이다.
▼ 코엘료가 사랑한 마을이라하니 골목길도, 낡아 허물어져가는 집도, 모두
특별하게 보였다^^.
늦게 출발한 아침이지만, 이 골목 저 골목을 찬찬히 누비고 다녀보았다.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에 휘리릭 지나가기엔 너무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아서
밝은 시간에 마을을 돌아보려고, 작정하고 늦게 출발했으니까....
▼ 저 언덕 위, 로마인들이 지었던 성벽 위에 성을 추가로 올렸었는데
지금은 허물어진 유적지로 남아있으나
스페인의 중요한 중세의 유적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고 한다.
▼ 골목길을 누비다가 행여나 길을 잃을까, 까미노 표시는 충실하게 우리를 인도한다^^.
▼ 산 후안 성당(Iglesia de San Juan)
13세기의 고딕 양식 건물인데 회랑은 15세기 양식을 띄고 있다.
부벽을 두 겹으로 세운 독특한 건축법을 써서 성당이라기보다는 성처럼 보일 정도이다.
1990년 스페인 문화 자산으로 선정된 성당이다.
▼ 산또 도밍고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to Domingo)
13세기부터 내려오는 금과 은, 상아로 된 세공품들과 회화, 조각 작품들이 보관되어 있고
16세기의 아름다운 태피스트리를 감상할 수 있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 까스뜨로헤리스를 빠져나오면 모스뗄라레스 언덕의 오르막 길이 보인다.
멀리서도 가파른 오르막길이 선명하게 보여 순례자의 기를 죽인다~.
길을 가다 언덕이 나타나면 '저기를 또 넘어가란 말이야?!'
가슴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으며, 입 밖으로 나도 모르게 나오는 말이다^^.
까미노를 걷는 내내..........
▼ 모스뗄라레스 언덕 위에 올라 아침에 떠나온 까스뜨로헤리스 마을을 바라본다.
흐릿하게 안개가 깔린 마을과 성채가 있던 언덕...
정말 이쯤에서 일몰을 볼 수 있다면 장관임에 틀림이 없을 것 같다.
▼ 다시 내리막 길로 이어지는 메세타 평원...
▼ 산 니꼴라스 소성당(Ermita de San Nicolas)
이탈리아 페루자의 성야고보 형제회에서 운영하는 13세기의 건물이다.
▼ 이떼로 다리(Puente de Itero)
11개의 아치와 부벽으로 이루어져 있는, 까미노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중 하나라고 한다.
▼ 다리를 건너면서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 어떤 순례자의 모습이 함께 찍혔다.
ㅎ ㅎ... 저 분 왜 저러고 있을까..? 거기서 머하구 있어요~? ㅋ
▼ 이떼로 델 까스띠요 라는 작고 오래된 마을 옆에 있는 삐수에르가 강이다.
이 마을은 빨렌시아가 시작되는 마을이자, 중세 레온 왕국이 시작되는 마을이었으나
현재에는 화려했던 까스띠야 왕국의 국경 도시로서의 모습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 가도가도 아득하던 길이었다 ㅠㅠ...
아침에는 상쾌한 기분때문인지 그리도 가볍게 느껴지던 짐이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하고
허리도 아파오는데, 두 다리는 마비되어가는 듯 걸음이 앞으로 나가질 않는구나....!
▼ 깔딱 고개같던 저 언덕, 그 너머에 뭐가 있었지? 생각이 나질 않네~
▼ 아 아~ , 그렇게 힘들어 거의 인사불성(!)이 되어가던 오후,
갑자기 나타난 그림같은 풍경!!!
여기는 뜨거운 태양에 지치고, 메마른 흙먼지가 날려 괴롭다는 메세타가 아니었던가?
메세타는 절대로 사막같은 곳이 아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데 누가 메세타를 두려운 곳이라 하는가!
노랗게 물든 버드나무 길을 걸으며,
한창 아름답게 물들어가고 있을 고국의 가을을 떠올리니
여기가 우리나라인지 산티아고 가는 길인지, 혹은 스페인인지...
텅 비어버린 머리로 헷갈릴 정도였다^^.
▼ 오늘의 목적지 프로미스타가 왼쪽에 보이는데,
이 지도를 보자면 계속 강 옆으로 가나보네...?! 야호! 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로
힘이 불끈 솟는 지도구나...!
▼ 와아~~ 아름다운 풍경!!!
이 풍부한 물은 까스띠야 운하 라고 한다.
운하 공사는 18세기 중반에 시작해서 19세기 초반에 끝났고
운하 길이가 200km가 넘는다고 한다. 까스띠야 내륙 지방과 깐따브리아 해안 사이의
물류 이동을 담당했었다는데 현재는,
이 넓은 평야의 밀밭에 물을 대주는 농경수가 흐르는 운하로 사용되고 있는 모양이다.
어쨋거나 메세타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감격했던 곳이다.
오늘 오후는 메세타의 아름다운 가을 풍경에 취해서 정신이 나갔던 것 같다.
이 강가를, 벅찬 가슴으로 취한 듯 걸어가며 행복했었다^^.
이 행복감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 오늘의 목적지 프로미스타에 도착, 묻고 또 물으면서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아침식사 포함 9.5 유로)
마을 식당은 8시에 문을 연다니, 수퍼마켙에서 이것저것 사다가 알베르게 식당에서 저녁식사.
▼ 성 뻬드로 성당(Iglesia de San Pedro)
15세기에 만들어진 고딕 양식의 성당이다.
아름다운 현관과 성당 안에 봉헌화, 패널화 등이 있는데, 패널에는
스페인 플랑드르 양식으로 그린 종교화 29점이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 단순 소박한 내부가 친밀감이 든다.
▼ 산 마르띤 성당(Iglesia de San Martin)
11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인데, 가장 순수하고 완벽한 로마네스크 양식이라고 한다.
까미노를 걷는 순례자라면 반드시 가봐야 하는 성당으로 꼽고 있는 곳이다.
짙푸른 밤 하늘을 배경으로, 단순하면서도 무게감이 두드러지는 모습이 아름다워
이쪽 저쪽 돌아가며 찍어보았다.
▼ 성당 위, 밝은 달이 보석처럼 빛나는 밤...!!
성 마르틴 성당 옆에 치즈 박물관이 있는데, 이곳에서 만드는 치즈는 스페인에서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고 한다. 제품의 라벨에는 '왕가 공급 업체'라고 쓰여있다고.
밤이 되어 들어가보지는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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