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일 / 29 일째
리에고 데 암브로스(Riego de Ambros) → 까까벨로스(Cacabelos) / 28km
(리에고 데 암브로스→몰리나세까→뽄페라다→꼴룸브리아노스→깜뽀나라야→까까벨로스)
산 속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마을 리에고 데 암브로스!
어제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이곳에 머물게 되긴 했지만, 정말 잘 한 일이었다.
하얀 펜션 창문으로 동화처럼 아름다운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깊이를 알 수 없는 골짜기가 마을 아래로 깊숙히 떨어져 내리던 곳....
어제, 이 예쁜 펜션에 들어 온 순례객은 우리말고도 또 한 명이 있었다.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노라니
빨간 상의를 입은 젊은 여인이 많이 지친 상태로 이 집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날은 저물고 있었는데, 하루 종일 혼자서 얼마나 외로운 고투를 했을까...
우리 옆 방에 든 모양이다.
가정 집에서 쉬는 것처럼 편안했다.
다른 날과 달리, 서두름 없이 천천히 준비를 마치고 할머니가 계시던 방 문을 두드렸다.
주인 할머니 뒤에는 역시 하얀 할머니도 서서 내다 보신다.
잘 자고 떠난다며 인사를 하니,
따뜻한 미소를 띄운 얼굴로 속삭이듯 "부엔 까미노!" 라고 하시며 손을 잡아주시는데
어인 일인지 울컥 눈물이 솟는다.
"아디오스!" 인사를 하고 행여 들킬세라 돌아서 계단을 내려오며 눈물을 감췄다.
왜지? 왜 눈물이 났을까?
하루밤 방을 빌려 잤을 뿐인데,,,,
어쩌면 그 할머니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축복의 인사에서
나는 우리 엄마의 따뜻한 미소를 떠올렸음이 분명하다.
훗날에도 그 할머니 생각이 나면
따뜻한 미소와 함께 항상 엄마가 함께 떠오르곤 했으니까...!
그런데.... 그 두 분의 관계는 친정 엄마와 딸일까,
아니면 고부간일까?
이 깊은 산 중에서 순례자를 하루밤 재워주는 일을 하며 살고 있는
그 두 할머니의 관계가 산을 내려오는 동안 내내 궁금했다^^.
그리고 가슴은 어이없게도 슬픈 기운으로 가득했었다.
다음에 온다면 꼭 다시 한 번 찾아뵙고 싶은데,
그 때까지 살아계시기나 할런지 모를 일이니...!
▼ 몰리나세까 까지는 이런 산 길을 4km 내려가야 했다.
싸늘한 아침 공기가 상쾌했고, 밤 나무 숲을 지나는 것도 기분이 좋았다.
어제 오후에 이 길을 내려갔더라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 산 골짜기는 가을이 물들어가고 있네....!
▼ 드디어 어제 밤에 잤어야 할 몰리나세까 가 보인다.
▼ 안구스띠아스 성모의 성소(Santuario de la Virgen de las Angustias)
18세기의 건축물로 이 성소의 문은 금속 덮개로 단단히 씌워져 있는데
그 이유는 중세의 순례자들이 이 성소의 나무 문에 돌을 던지면
순례 도중 행운이 따른다는 미신이 있었기에,
나무로 만든 현관을 순례자들이 던지는 돌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 산 니꼴라스 데 바리 교구 성당(Parroqia de San Nicolas de Ban)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이며,
14세기에 만들어진 아름다운 십자가 상이 있다고 한다.
▼ 몰리나세까 마을을 지나온 끝에 있는 순례자 상이다.
조그만 분수들 가운데서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데,
아마도 그 시선이 가는 끝에 산티아고가 있겠지....
▼ 8km정도 걸으면 큰 도시 폰페라다에 도착한다.
그러나 까미노 표시는 시내 중심부로 바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외곽으로 표시가 되었기에 내심 좋아 했었다.
복잡한 시내를 통과하지 않고 시골길로 연결되어
도시를 그대로 지나치는 줄 알고 좋아했는데...
속았다!! 길은 외곽을 돌아서 시내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자동차 도로를 따라 직접 시내로 들어갈걸....!
도대체 얼마나 돌아가는거야?!
▼ 비는 오락가락하고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
이런 시골 길 어느 bar에 들려 커피를 마시며 비도 피할겸..
아니, 왜 길을 이렇게 돌게 만든거야?
심지어 멀리 건너편 산을 보니 뚜렷하게 정상 쪽으로 올라가는 길까지 보였다.
'아니, 우리더러 저 산을 또 넘어가라고?'
어제의 악몽이 채 사라지지 않은 우리는 산길을 보며 정말 경악했었다^^.
▼ 길 옆의 포도밭은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우리는 정말 이런 시골 길을 걷고 싶다구요!! 도시는 싫어~!!!
▼ 다행히도, 우리가 보며 경악했던 산 길을 오르는 일은 없이
폰페라다 로 들어왔다.
성 안드레스 성당(Iglesia de San Andres)
중세에 세워진 성당이었으나 17세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되었다고 한다.
▼ 템플 기사단의 성(Castillo de los Templarios)
12~13세기에 지어진 템플 기사단의 요새이다.
이 성채는 폰페라다에서, 기사단의 전통과 함께 가장 커다란 유산으로 남아 있다.
당시 기사들은 세 겹의 성벽에서 세 번의 맹세를 해야했고,
성벽에 있는 열 두개의 탑은 별 자리를 의미하는 것이라 한다.
기사단의 가장 중요한 보물인 성배와 성궤에는 전통에 따라 후세의 기사들에게
전달하는 메지지가 숨겨져 있다고 전해진다.
또 템플 기사단의 기도문 속에는 이 두 보물의 위치를 알려주는 비밀스런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폰페라다에서는 매년 7월 중순 여름의 첫 번째 보름달이 뜰 때
중세의 템플 기사단을 기리며 밤을 보내는 축제를 벌인다고 한다.
중세식 복장을 한 사람들이 템쁠라리오 광장부터 성채까지 행진을 하고
템플 기사들에게 성배와 성궤를 헌납하는 모습을 재현한다고 한다.
▼ 지루하게 폼페라다 시내를 통과해서 겨우 시골 길에 서니
마음이 다시 평온해진다.
꼴룸브리아노스(Columbrianos) 라는 마을에 도착.
▼ 산 에스떼반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San Esteban)
18세기에 건축된 성당이다.
▼ 성당 옆에 중세 때의 것으로 보이는 유물 파편을 유리를 덮어 보여주고 있었다.
화살표로 보아 혹시 까미노를 가리키는 것은 아닐런지...!
이젠 화살표만 보아도 까미노와 연관지어 생각하게 되는구나...^^
▼ 산 블라스와 산 로께 성당(Ermitas de San Juan y San Blas)
어느 순례자가 성당 밖의 벽에 직접 그렸다는 성 야고보의 그림이다.
▼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무수히 많은 낡아 허물어져가는 빈 집들을 보았다.
없어져가던 마을들이 순례길 여파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증거인데,
이렇게 쓰러져가는 집 옆에는 말끔히 수리되어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 있었으니...
세월이라는 단어를 참 많이 생각케 하는 길이다.
▼ 깜뽀나라야(Camponaraya) 마을.
▼ 교구의 성모 승천성당이다.
폰페라다에서 부터 깜뽀나라야까지 계속 포장 도로를 걸어오게 되어
다른 날에 비해 훨씬 지쳤다.
물론 어제 고생한 여독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어제 걷기를 포기했던 4km까지 보태서 28km를 가야했기에
몸 상태는 최악이었고, 어쨋든 다리를 질질 끌며 걸었다는게 맞는 표현일게다.
그러나 이제부터 흙길이니 다시 기운을 내봐야지...!
▼ 와아~! 흙 냄새가 물씬 풍기지 않는가?!
아무래도 나는 시골 체질인 모양이다. 흙을 보니 기운이 다시 솟아오르는 느낌....!
▼ 양 쪽 모두 포도밭의 연속이다.
▼ 아름다운 포도밭 사잇길을 가며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이쪽 저쪽 카메라를 들이대며 셔터를 누르고 있는데...
갑자기 "올라!" 라는 소리에 깜짝 놀라 보니, 앞에 가는 저 청년이었다.
나도 "올라!" 대답하니, "어디서 왔어?"라고 한다.
"한국에서 왔어."라고 하자마자
"안녕!" 이라고 우리 말로 인사를 다시 한다.
엥? 깜짝 놀라 하하하하.... 웃었다.
"너는 어디서 왔어?"
"스페인..." 아~ 즈네 나라구나,,
그런데 이 청년 걸음 속도를 나에게 마추며, 자꾸 말을 건넨다^^.
내가 그 말을 다 받아 대답할 실력도 안되는데 ....
말 나온김에, "나는 오늘 28km를 걸어왔더니 너무 피곤해 죽겠다"고 했다.
내 말을 듣더니 이 청년 왈,
"오늘 밤에 샤워하고 와인 마시면 괞찮아질거야." 한다.
그래도 무슨 말을 더 하려는 눈치기에 나는 그만,
"부엔 까미노!" 해버렸다.
그제서야 "부엔 까미노!" 마주 인사를 하고 제 걸음 속도대로 떠나간다.
더 말을 계속하면 나는 어쩌라고! 짧은 언어 실력이 바닥이 나는 판이라
재빨리 인사를 하고 떠나보낸 것이다....^^;;
다음엔 정말 영어 공부를 잘해가지고 와야지...!
▼ 아~ 아름다운 풍경!
한 폭의 그림같은 이런 풍경 때문에 나는 다시 힘이 솟았다,
메세타에서의 그 어느 날처럼...!
양 쪽 모두 포도밭인데 추수는 이미 끝났으나
몇 알씩 남아 있는 포도 송이들이 많이 있었는데,
머루알처럼 작았지만 엄청 달았다.
▼ 이 사진을 내 친구에게 보냈더니,
'한 폭의 명화같다' 라는 답이 날라 온
가을 날의 아름다운 포도밭 풍경.....^^
▼ 이 자작나무 숲을 지나면 까까벨로스에 도착하게 된다.
▼ 오늘의 목적지 까까벨로스..
▼ 아름다운 무지개가 떴는데 이젠 별로 반갑지만은 않다.
그동안 무지개를 먼저 보고나서 비 때문에 고생한 경험이
몇 차례나 있던터라.....
▼ 산따 마리아 데 라 쁠라사 성당(Iglesia de Santa Maria de la Plaza)
우아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으로, 16세기에 재건되었다고 한다.
▼ 낀따 안구스띠아스 성당(Santuario de la Quinta Angustia)
신고전주의 건물로, 어린 예수가 성 안토니오와 함께
카드 놀이를 하고 있는 독특한 채색 부조가 있다고 한다.
낙천적이고 유머가 넘치는 마을 사람들이 카드 놀이를 즐기는데서
이러한 장식을 하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하지만....,
마을 출구에 있는 이 성당 옆 문으로 들어가면
마당에 가건물처럼 길게 알베르게를 지어놓았다.
▼ 이날 저녁 함께 식사를 한 스위스 부부.
알베르게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다는 식당을 호스피탈레로가 소개를 해서
주문을 받아 예약을 해 주었는데, 이 스위스 부부와 우리밖에 없었다.
처음 본 사람들이라 어색했지만, 이 또한 어쩌겠는가,
어색하게 만나 어색하게 식사를 하고 또 어색하게 헤어져버리는게
이 길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 아니던가!
마침 스위스가 독일어권이니, 독일어권인 남편과 이런저런 얘기가 오고갔다.
명함도 주더구만,,,, 잊어버렸다.
어차피 하루밤의 인연으로 끝난 사람들이니....^^
▼ 알베르게가 2인 1실(5 유로)이라 우리만 잘 수 있어서 자유스러웠으나
난방이 되지않아 옷 다 껴입고 담요까지 덮고 자니 그럭저럭 잘만했다.
원래 10월 말까지만 문을 연다더니,
웬 일인지 11월로 접어들었는데 문을 열고 있었다.
이런 방들이 수용소처럼 다닥다닥 연결이 되어 있는데다
천정은 하나의 공간으로 다 터져 있어서
옆 방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다 들릴 정도였다.
남편이 내일 아침 먹거리와 물 등을 사러 마트에 다녀오더니 너무 억울해 한다.
없는 게 없이 다 있더란다. 하다못해 일본 간장까지....
사실은, 오늘 저녁은 밥을 해 먹자고 기를 쓰고 여기까지 왔는데
알베르게에 부엌이 없으니 모든 꿈이 허사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다 가춰진 마트를 만나기 어려운데, 왜 알베르게에 부엌이 없느냐고..
밥 해먹을 좋은 기회를 놓친 일이 분하고 분해서(!) 한참이나 불평을 해댄다.
하마터면 간장을 살 번 했다고....ㅎㅎ
왜냐면 다른 곳에선 간장 파는 걸 못봤으니까...
모처럼 불고기랑 맛있게 해먹을 수 있었는데..^^
(그래도 간장 안사길 잘했어요, 있는 물건도 버리고 가는 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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