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 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 가는 길 30 / 비로 인한 '브레이크 타임',,감사를 느끼며 행복했던 날..

권연자 세실리아 2013. 4. 29. 11:32

 

    2012년 11월 3일 / 30 일째

 

       까까벨로스(Cacabelos) → 비야프랑까 델 비에르소(Villafranca del Bierzo) / 7.5km

            (까까벨로스→비야프랑까 델 비에르소)

 

          밤에 비 내리는 소리가 들려 심난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한 여름 장맛비처럼 제법 많은 비가 내리고 있다.

          수용소 같은 알베르게에서 한밤에 화장실 가는 일도 무서웠고

          아침에 세수하러 가는 일도 춥고 어설퍼서 정이 붙지 않는 알베르게였다.

 

          이 길에서 비가 온다고 멈출 수는 없는 일이기에

          망설임 없이 떠날 준비를 하고 우의를 입고 길을 나섰다.

          자동차 전용도로로 한동안 걸어가노라니 점점 정신과 육신이 함께 고달파온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가 예사롭지 않다.

          드디어 포도밭 언덕길로 접어들었지만, 옷이 아랫 부분부터 점점 젖기 시작한다.

          바지가 흠뻑 젖으니 물이 신발로 스며들어 양말도 젖고,,,

          속옷까지 몽땅 젖어 이렇게 하루를 걸을 생각을 하니 아득한 심정이었는데...

         

          빗 속에서 바라본 포도밭 풍경은 어제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지만

          어쩔 수도 없는 상황에서 한참 바라보며 가슴에 담았다.

 

         

      까까벨로스의 알베르게 모습이다.

          2인 1실(1인 5유로)니, 하룻밤 머물고 떠나기에 부담없는 곳이었지만

          아직 갈리시아 지방도 아닌데 부엌이 없어 아쉬웠다.          

 

 

 

 

 

         중간에 아주 작은 마을이 하나 있었지만 알베르게가 없다보니 지도에도 없는 곳이었고

          7.5km를 갔을 때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 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우리는 오늘의 여정을 여기까지로 정하고 원래의 목적지를 포기했다.

          속옷이며 신발까지 다 젖은 상황에서 더 걷는다는게 무모하게 생각됬기 때문이다.

          다시 감기라도 걸린다면 아직 걸어야 할 길이 끝나지 않았는데 고생이 심할게 뻔하니

          오늘 이 지점에서 아쉽지만 숙소를 찾기로 했던 것이다.

 

          젖은 옷들을 말리려면 알베르게 보다는 Hostal에 머무는게 좋을 것 같아

          길 모퉁이에 있던 아담하고 예쁜 Hostal로 들어왔다.

          빗 물이 뚝뚝 떨어지는 비옷을 입은 채 주인 아저씨를 따라 

          깨끗한 나무 계단을 따라 이층으로 오르다보니 미안했다.

          그러나 순례자들의 꼴이 아무리 형편없어도 싫은 내색을 하지않는게

          그들의 예의인지... 너무 고마웠다. 

 

 

 

       ▼ 맘에 드는 방, 샤워실, 돌로 마무리한 벽 모두가 맘에 들었다.

           몹시 춥다고, 그리고 따뜻한 물이 나오냐고 물었더니 모두 OK.

           따뜻한 물로 언 몸을 녹이니 더 이상 바랄게 없다.

           와이파이까지 되는 곳이니 더 바랄게 무어랴!

           그동안 밀린 카톡 메세지들 답장 보내고....^^

           비 때문에 우울할 뻔한 날이었는데, 오후 내내 행복한 기분이었다.

 

 

 

 

       ▼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하러 내려간 식당.

           8시에 문 연다했는데,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 식당 창가에서 밖을 내다보니, 웬 성채같은 건물이 보인다.

           어제 비온다고 밖에 나가질 않았는데...

           깨끗한 호스텔 식당에 앉아 달콤하고 부드러운 검은 빵을 먹으며

           고색창연한 성채를 내다보는 이 아침,, 너무 행복한 기분이다.

 

 

 

        ▼ 우리가 머문 집...

            겉모습도 예쁘고 내부도 예뻤던 집...^^

 

 

         점점 산티아고가 가까워지고 있다.

         며칠있으면 끝나니 후련하다는 느낌보다는

         끝이 보인다는게 웬지 아쉬워서 조바심마져 생기고 있다.

         힘들다고 상대도 없이 혼자 투정을 하면서도 날마다 뿌듯했던 날들...

         그러나 이제 최후의 목적지가 다가온다는 생각이 갑자기 드니

         서운한 마음이 너무 크게 다가온다.

         어쩌지?

         이렇게 한 평생 떠돌이처럼 산다면 내내 행복할 수 있을까?

         이런 심정 때문일까, 어떤 사람들은 이 길을 열 몇 번째 걷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오늘이다.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내면서 나의 행복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여기까지 무사하게 올 수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는 주님의 힘이 나를 끌어 주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내 힘 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건 자타가 공인하던 일이 아니던가?

         며칠 걸으면 병이 나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 내 친구들을 비롯해서

         남편 조차도, 내가 완주하리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길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고,

         때로는 신들린 사람처럼 걷고 있으니, 누군가 나를 잡아 끌고 간다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다.

         다른이들은 몰라도 나에게는 기적같은 일처럼 생각될 뿐이다.

         그러니 주님께 감사할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