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느끼며... 63

2022년,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해 지는 방 바로 코 앞에 있는 산너머로 지던 해가 겨울이 되니 멀찌기 떨어져 있는 산 너머로 빠져버리곤 한다. 기분 탓인가, 늘 보던 석양인데 2022년에 지는 해는 왜 이리 크게 보이는지...! 커다란 쟁반 만한 빨간 해가 신비롭고 놀랍다. 산 위에 잠시 올라 앉았구나 하는 순간 믿을 수 없을만큼 빠르게 산 너머로 내려가버리는 허무한 슬픔... 아~ 이런 순간에 나는 어린 왕자네 별로 재빨리 날아가고 싶다. ***(이상하네? 분명 빨간 해를 찍었는데 사진에 찍힌 해는 하얗고, 노을만 빨갛네...???)

어린 왕자

느닷없는 일 같지만,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읽고 있다. 이 책을 다시 읽게 된 게 얼마만인가. 마지막으로 읽었던게 언제였는지 가물거리는데 아마도 우리 아이들이 커버린 후엔 다시 읽지 않았지 싶다. 이 책을 다시 읽을 수 있게 된 건 정말 천행이라 생각된다. 이미 나는 늙어버렸지만 어린 왕자의 생각과 느낌들이 도무지 낯설지 않고 마치 내 느낌들 같아서 눈물이 고일 정도니까... 나의 '해 지는 방'에서 서산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는 느낌....! 해질 무렵을 좋아하는 어린 왕자의 얘기, "마음이 아주 슬플 때는 지는 해의 모습이 정말 좋아....." 어린 왕자가 사는 작은 별에서는 의자를 몇 발짝 뒤로 물러 놓기만 하면 얼마던지 황혼을 바라볼 수 있다지 않은가! 하루에 마흔세 번이나 본 날도 있었다니..

가슴 한켠에 켜질 따뜻한 등불을 기다리며..

어느새 대림시기가 왔다. 애들은 훌쩍 커서 둥지를 떠난지 오래지만, 노인 둘이 살고있는 집이라해도 기분내며 살자고 크리스마스 츄리를 만들어놓고 밤마다 반짝반짝.. 분위기를 내본다. 한달 전부터 크리스마스 마켙이 열려 북적거리던 독일의 고색창연한 광장이 그리워진다. 지금쯤 먼 나라들에선 크리스마스 준비로 한참 바쁠텐데... 밤마다 반짝거리는 크리스마스 츄리는 어둠 속에서 저 혼자 바쁘고 걷어내줄 이 아무도 없는 고요가 조용하게 내려앉은 우리집.. 어쨌거나 해마다 이맘때면 베란다 한 쪽을 지키며 별처럼 반짝이는 네가 있으니 우리도 가슴 한 켠에서 따뜻한 등불이 켜지겠지.

보석처럼 아름답던 너의 눈은..

얘야, 친구야! 보석처럼 아름답던 너의 새까만 눈은 어디로 갔니? 보고 또 보아도 아름답던 너의 모습이 온데간데 없구나.... 모진 시집살이와 의처증으로 불타던 남편의 학대가 빛나던 너의 아름다움을 처참하게도 뭉개놨구나! 이제 남편 세상 떠나고, 36년 만에 겨우 만난 너를 우리는 알아 볼 수가 없어. 여자의 한 생이 이럴 수도 있다니,,,, 무너지고 고부라진 너를 어루만지며 우리는 할 말을 잃은채 분하고 분한 눈물만 흐르는구나. 그리워하면서도 만나지 못하던 친구를 찾아가 친구들 중 제일 예뻤던 그녀의 변한 모습에 우리는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거나말거나... 가을 하늘은 야속할만큼 푸르렀다. -2018년 10월 순천에서-

11월은 가슴에서 바람소리가 난다

11월은 가슴 속에서 바람소리가 난다. 바람이 불지않아도 가슴속 깊은 곳에서 들리는 쓸쓸한 바람소리. 서러운 울음 닮은 숲이 우는 소리들으러 산길로 간다. 숲은 바람없이 고요한데 어깨를 툭, 치는 손 나를 위로하는 이 누군가 뒤돌아 보니 떡갈나무 잎 하나 깡마른 넓은 손바닥으로 어깨를 치며 떨어진다. 그래, 알겠다. 이제 사나운 바람 앞세우고 겨울이 오겠지... 우리 아파트 쉼터

가을이 늦게 오는 숲에서..

지난 해 봄, 산책하다 미끄러져 발목 부러진 친구 일년 넘게 다리에 철심 넣고 절뚝거리더니 드디어 이 가을에 철심 제거하는 수술을 했단다. 아무일 없이 살살 살아도 늙어가는판에 몸 안에 철심 집어넣고 침대에 눕다 일어나다 하루가 지나가는 삶이 얼마나 지겨웠으랴! 이래도 늙고 저래도 늙지만 친구야, 봄도 가고 여름도 가고 또 가을이 왔구나. 무심한 계절이 가는 사이 우리의 주름은 얼마나 깊어졌을까, 우리는 얼마나 농익었을까! 친구의 아픔을 헤아리며, 아파트를 나서서 가을을 확인하러 숲으로 갔다. 여름이 쉬이 떠나질 않더니 평지의 나무들은 가을 옷을 입기 시작했으나 산길 숲은 아직도 파란채 가을 맞이가 늦어지고 있다. 단풍은 들지않았어도 지는 해가 빨갛게 불을 지르고 있어 숲은 곱게 물들고 있었다. 아파트 ..

가을 호수에서..

우린 참 오래전에 만나 친구가 되었지. 가을 호수가에서 참으로 오래된 친구가 소녀들처럼 만났다. 단발 머리 십대 소녀일 때 친구되어 우리는 꿈을 이야기하고 만나면 까르르 웃어가며 서로 어깨에 손을 얹고 쓸데없는 사진도 많이 찍었지... 호수가를 걸으며, 8층 높은 찻집에서... 소녀를 닮은 할머니들은 할 말이, 주고 받을 추억이 너무 많다. ................. 애기 낳다가 풋풋한 서른살에 세상 떠난 친구,,, 엊그제 만난듯이 생생한 너의 모습 잊을 수 없는데 친구야,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있니. 우리가 너를 그리워하듯 모든 것 버려두고 황망히 떠난 이승을 그리워하진 않니? 훗날 우리 다시 만날 때 너는 늙어버린 우리를 몰라보지나 않을가, 추억 속에 있는 젊고 멋진 너를 생각하며 쓸데없는 걱정..

참을성 있게 수정 작업을 하면서..

몇 년 동안 방치(그래, 방치가 맞아)해 두었던 블로그를 새로운 스킨으로 변경했었다. 새로운 것이 좋아서 바꾼 것은 아니고, 오래된 버전이라 바꾸라는 메시지가 계속 떳는데 무시하고 그대로 사용했더니 지원되지 않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기에 정말 귀찮았지만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한 셈이었다. 그러나, 예전에 올린 글들이며 사진들이 그대로 옮겨왔겠지 했는데 우연히 카테고리에 있는 다른 방들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분명 내가 찍은 사진들을 올렸는데 모두 삭제된 것들이 수두룩했고(다른데서 모셔 온 것들은 물론 없어졌고) 글들도, 글자의 크기가 변화무쌍하게 크거나 작게 멋대로 변해버린 것이 많았다. 아, 이 노릇을 어쩐담! 이런식으로 제멋대로 헝크러놓다니...! 모른체 포기할가도 했지만, 페북을 떠났으니 블로그라도..

어느 가을날의 이야기..

가을이 가을답지 않은 요즘이다. 지금 쯤 단풍이 들기 시작할 무렵인데 늦 여름같은 날씨가 계속되고 있으니... 비까지 내리는 오늘 같은 날, 베란다 난간에 방울방울 맺힌 물방울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데, 문득 4년 전 추석 연휴에 아들이 우리를 일본 온천 여행으로 초대해 준 일이 떠오른다. 그때 남긴 글을 여기 올려본다. ********************************************** 2017년 10월 7일 아들 ; '누나야, 우리 참 재밋었지?' 누나 ; '머가?' 아들 ; '우리 꿈에서 자전거 타구 재밌게 놀았자나' 누나 ; '난 그런 꿈 안꿨어' 한 살 터울 누나와 동생이 대여섯살적, 아침 눈 뜨자마자의 대화다. 외할아버지 산소에 성묘하러 데려갔더니, '와~ 김일성이가 사람도 ..